7월 7일 영상교제 말씀

"주님이 내게 일하실 수 있는 기회"



마가복음 5장 35절, 36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가로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근래에 저희들이 복음을 전하면서 전도자들의 마음의 자세를 보면, 옛날에 저희들이 어려웠을 때보다도 참 여러 가지로 좋고 편리한 것은 많지만, 마음의 자세가 옛날 같지 않은 것을 종종 볼 때, 내 마음에 참 염려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난 뒤에, 우리는 주님을 의지하는 것보다 인간적인 방법이 훨씬 더 익숙하기 때문에, 정말 인간의 방법으로 할 수 있는 어떤 한계가 오기 전까지는 어쨌든 내 방법이나 경험으로 일을 처리하려고 하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을 당면하기 전까지는 주를 믿는 믿음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옛날에 제가 구원을 받은 후에 거창에 있을 때나 김천에 있을 때, 그리고 또 대구에서 일을 하면서 참 많은 어려움과 막막한 일을 겪은 적이 많습니다. 그러나 내가 당한 어려움은 하나도 어려움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게 축복이 되었고 하나님을 경험한 좋은 기회가 되었다는 거지요.

우리가 요한복음 11장에서 나사로가 병들었을 때 예수님이 오셨다면 병든 나사로를 고치는 것을 볼 수는 있지만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건 경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요한 복음 11장을 읽어보면, 예수님이 일부러 나사로가 죽으실 때까지 지체하고 있는 모습을 우리가 발견할 수가 있는데, 오늘 여기 똑같은 이야기지요.

야이로가 자기 딸이 아파 죽어가게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께 나와서 죽어가는 자기 딸을 고쳐달라고 간절히 애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곧장 간 것이 아니라 열두 해 혈루증 걸린 여자를 만나고, 이런 저런 어려움을 겪는 동안에 야이로의 딸이 죽는 위치까지 도달했다는 거지요. 왜? 야이로의 딸이 죽지 않으면 주님이 죽은 딸을 살리는 그 능력을 경험해볼 수 없기 때문에.

그럼 나사로의 집에서나 야이로의 딸에게 일어난 일과 똑같이 우리 동역자의 삶 속에서도 주님이 일찍 오셔서 우리를 도우실 수가 있는데, 사랑하는 주님이 때때로 우리가 이해가 안 가는 방법으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늦게 응답하시고 선하게 도우시는 게 아니라 어렵게 하실 때가 참 많이 있다는 거지요.

왜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런 어려움을 주십니까? 왜 우리에게 고통을 주십니까? 왜 우리에게 아픔을 주십니까? 그것은 우리와 주님 사이에 익숙해져서 영적으로 주님이 우리 속에 역사하는 일에,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는데 정말 익숙하게 하기 위한 그런 기회를 주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시길 원하신다는 거지요.

우리가 배부르게 먹고 감사하게 지내면 처음에는 그냥 감사하게 느껴질는지 몰라도 어느 정도 지나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어요. 배부르게 먹고 마시고 자면, 처음에는 감사할지 몰라도 오히려 불평할 때가 많습니다.

주님은 우리 속에 좋은 것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믿음으로 이끌기 위하여 때때로 주님이 내가 기도해도 응답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고, 내가 하나님을 의지해도 하나님이 나를 돕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일을 하실 때가 참 많다는 거지요.

여러분 우리 선교회 안에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우리 동역자들이 일하는 가운데도 뭐 비자 문제나 그 나라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병이 드는 일들, 왜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일을 하시는지 그게 이해가 안 갈 때가 있어요.

그러나 제가 복음 안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뒤 지금 와서 보면, 그 때 내가 당했던 어려움이 하나도 어려움으로 끝난 것이 아니고, 그걸 통해 하나님이 내게 믿음을 가지고 주님이 내게 역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셨다고 하는 거죠.

사랑하는 주님이 여러분 스스로 잘 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여러분은 주를 의지하는 것보다 여러분의 방법으로 살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주님이 여러분에게 일하실 수 있는 기회를 만드신다는 거지요. 그래서 때때로 사역에 어려움도 주시고, 고통도 주시고, 아픔도 주십니다.

왜 하나님이 내게 이런 어려움을 주시는가? 왜 하나님이 내게 이런 슬픔을 주시는가? 왜 내게 낙심할 이런 일을 주시는가? 그렇지 아니하면 주를 의지하고 주님이 내게 일하실 수 없기 때문에, 주님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을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주를 바라보고 주를 의지하게 하고, 그 때 사랑하는 주님이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주님이 정말 우리 속에 살아계신 것을 더 강하게 느끼고 우리 마음을 가깝게 하려고 하신다는 거지요.

사랑하는 주님이 야이로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야이로의 딸이 죽어있는데, 주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울지 마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니까 사람들이 비웃고 그랬지요. 죽은 것을 아는 고로. 그런데 결국 주님이 그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어요. `달리다굼`하고 일으키셨어요.

이게 결과고 중간을 보면 주님이 우리 속에 역사하지 않는 것 같고, 주님이 계셔도 우리 속에 절망이 오는 것 같고, 아픔이 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부다 복음을 위해서, 주님의 역사를 위해서 주어지는 것이지, 결코 아픔이 아니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오늘 사역하는 여러분의 선교지 속에서, 여러분의 사역지에서 여러분이 감당하기 어렵고 절망적인 어려움이 올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마음을 다해 주님을 의지하지 않는데, 어떤 어려움이 와도 내 방법으로 달려가려고 하는데, 내 방법으로 안 되는 그런 일을 당했을 때, 나를 이끄신다는 거지요.

이 야이로의 이야기와 열두 해 혈루증 걸린 여자의 이야기가 똑같이 연결이 되는데, 열두 해 혈루증 걸린 여자는 자기 방법이 다 끝나고 안 되어서 이제 믿음이 생겼고, 야이로는 아직까지 자기 방법이 있는데, 그 방법을 의지하려고 하다가 이제 마지막으로 딸이 죽어버리니까 모든 것이 다 무너져 버렸어요.

주님은 야이로에게 믿음을 가르치기 위해 그러한 방법으로 이끄는 것처럼, 오늘 우리도 사랑하는 주님이 그러한 방법으로 이끄셔서 주님을 의지하고, 주를 믿는 믿음으로 행하게 하신다는 것을 깨달으시고 여러분 속에 닥치는 어려움으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슬퍼하거나 염려하지 말고 주를 믿는 믿음으로 담대하게 행해서 하나님이 여러분 속에 힘있게 나타나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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