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5일 영상교제 말씀
에스더 3장 1절 그 후에 아하수에로왕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의 지위를 높이 올려 모든 함께 있는 대신 위에 두니 에스더의 가장 핵심은 뭐냐하면 하만과 모르드개의 싸움입니다. 하만이 왕 다음에 제일 높은 위치에 올라와서 모르드개를 대적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다 죽이기로 결정하고 치열한 싸움이 일어나는 그 모양을 봅니다. 우리가 이런 일들을 보면 ‘도대체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왜 하만을 세우셨을까? 왜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이런 일들을 하게 하실까?’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하면서 중요한 부분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그 중의 하나가 뭐냐하면 세상 사람들은 집이 없이 살다가 집을 사면 ‘아 이제 이사 안 다녀도 되겠다. 이제 샛집 살이 안하니 편안하겠다.’ 또 아들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병이 나으면 ‘잘 됐다. 이제는 평화롭게 살겠다.’ 그러면서 세상 사람들이 인생을 살면서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에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 그 뒤에 오는 평안, 그 뒤에 오는 기쁨, 거기서 기쁨을 누리고 행복하게 살려고 하는 그런 마음을 대부분 사람들은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보면 신앙생활은 그것하고 좀 다른 것이 ‘내가 이 문제를 해결했으니까 내가 좀 안일하게 쉬자.’ 하고 안일하게 쉬려고 하면 하나님 또 다른 어려운 문제를 주시고 또 그 문제를 해결하면 ‘아 이 문제 해결했으니까 이제 좀 안일하게 쉴 수 있겠다.’ 생각하면 또 다른 문제를 주시고 늘 그렇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어려움을 당할 때 신앙의 세계는 어떠냐 하면 그 문제를 아름답게 이끌어줄 주님을 소망하는 사람은 늘 소망 가운데 있는 거예요. ‘현재 내가 당하는 이 어려움이 어려움이지만 주님은 이걸 좋게 바꾸실 거야. 복으로 바꾸실 거야. 이걸 해결할 거야.’ 소망가운데 살고 반대로 소망이 없는 사람들은 이제 어려움 가운데 있다가 문제가 해결되면 참 좋지만 ‘아이구 또 문제 생길건데 뭐’ 그러면서 좋을 때도 어려움 속에 절망 속에 사는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사는 신앙은 어떤 신앙이었느냐 하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이야 이젠 됐다. 내 좀 안일하게 살만하다.’ 그런 기회를 주님이 제게 주시지 않았어요. 늘 어려운 문제가 닥치고 어려운 일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내가 이제 구원받았으니까 됐다. 이제 내가 선교학교 왔으니까 됐다. 목사 되었으니까 됐다. 이제 이 문제 해결됐다.’ 그런 생각들이 내 마음 안에 들어와서 나를 끌면 ‘됐다.’는 마음이 들기 때문에 주를 바라는 마음도 없고 태만해지면서 금방 타락의 길로 들어서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시지만 하나님께 소망을 가지고 있으면 그걸 이길만한 믿음을 주시고 이길만한 소망가운데서 하나님이 살도록 하시고 ‘항상 문제가 내게 있지만 내게는 주님이 계셔. 이 문제 내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의 문제야. 예수님께서 이 문제를 너무 아름답게 해결해 주실 수 있어.’ 그런 믿음과 소망가운데 사는 사람들은 늘 주님으로 기뻐하며 소망가운데 살 수가 있는 거지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베드로나 바울이 하나님의 능력을 행할 때에 문제가 없어서 능력을 행하는 게 아니고 항상 어려운 문제가 있고 핍박이 있고 사단의 역사가 있는데도 주님은 그런 가운데도 여전히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시고 하나님 뜻대로 역사하시고 이루시는 그 일을 주님은 계속해 오신다는 거지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하고 문제가 닥친다고 해서 두려워해야할 게 아니라 실제로 그 문제를 해결하는 주님이 함께 계시니까 문제가 안 된다는 거지요. 우리가 에스더를 읽습니다.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이 왕이 지위를 높여 제일 높은 위치에 있을 때 모르드개가 그에게 절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르드개가 유대인인걸 알고 모르드개만 죽이는 게 경하다 하면서 모든 유대인을 다 죽이기로 하고 이제 왕이 거기에 조인을 찍어서 어느 누구도 그 법을 변개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유대인은 다 죽는 거지요. 제가 어느 날 출애굽기에서 모세에 관한 글을 읽었습니다. 모세의 부모가 모세를 나일강에 던졌습니다. 그런데 바로의 공주가 그때 목욕을 하러왔다가 모세를 건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출애굽기를 읽어보면 모세가 태어나서 모세가 80살이 되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거든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건져나올 때 63,550명의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오더라는 거지요. 63,550명은 20세 이상 된 남자들만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면 바로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들을 낳으면 나일강에 던지라 그랬지요? 그러면 63,550명이 나일강에 던져져야할 사람인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들이 살아서 애굽에서 나가더라는 거지요. 우리가 알기로 거기서 건짐을 받은 이야기는 모세 이야기 하나밖에 없어요. 하나님은 모세를 건져냈는데 모세에게만 역사한 게 아니고 63,550명에게 역사해서 그들을 건져내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거지요. 예를 들어서 38년 된 병자 하나가 병에서 나음을 받았는데 성경에는그 하나지만 예수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병에서 나음을 입을 수가 있고 베드로 한 사람이 어떻게 어부에서 하나님 능력으로 종으로 자라는 그 모양을 자세히 보는데 성경에 그 베드로 이야기 하나를 기록했지만 수많은 하나님의 일군들이 능력있는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라가는 그 과정을 성경은 예를 들어 하나를 이야기했지만 그렇게 우리를 이끌고 계신다는 거지요. 모세를 그 나일강에서 건졌던 것처럼 하나님 63,550명을 건지셔서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도록 일을 하신 거예요. 여러분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바로 왕이 나일강에 빠뜨려 죽이라고 했는데 거기서 살아난 게 얼마나 놀랍고 대단한 일인지 말로 다할 수가 없다는 거지요.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항상 하만같은 사람이 일어나 유대인을 핍박하고 그때 보면 유대인 다 죽는 것처럼 돼있습니다. 유대인을 전부다 멸하기로 하고 왕이 어인을 찍어서 결정이 되고 아달월 13일에 모든 유대인을 전멸하기로 되어있는데 유대인이 구원을 받잖아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게 믿음의 세계입니다. 저도 여러번 ‘아 이제 나는 죽었다. 난 이제 끝장이다. 내가 어떻게 복음 전도를 해? 난 여기서 끝장이야. 더 못해.’ 그런 일들이 내게 참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지내놓고 보면 내가 꼭 죽을 것 같았는데 하나님의 손길이 나를 건지시고 지키시고 인도하는 걸 볼 때 얼마나 놀라운지 말로다 할 수가 없다는 거지요. 자 여러분 우리가 주를 믿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때로 하만이 높임을 받아 유대인을 다 멸하는 그런 어려움이 있지만 우리가 그럴 때 주를 바라보지 언제 주를 바라봅니까? 하만을 세워서 유대인을 멸하게 하신 하나님이라면 그보다 더 큰 하나님 유대인을 구원하는 능력의 하나님도 살아계시고 하만 속에 역사하는 힘보다 하나님 우리 속에 역사하는 힘이 크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어려운 일이 닥치면 승리하는데 그 승리를 바라보고 사는 사람하고 승리가 올 때 죽었다고 절망하며 사는 사람 그게 차이가 난다는 거지요. 우리 모두 현재 형편을 보지 말고 우리를 구원하는 주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사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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