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눈을 가리우고 한 눈을 뜨고
. 구원을 확실히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모르는 형제 자매님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구원을 받았는지 아닌지 확인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는데, 그것은 범죄를 했을 때 입니다. 누구나 구원을 받기 전에, 혹은 받은 후에도 우리 마음에 문제가 될만한 범죄를 할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습관성이 되어서 참 이기기 힘든 죄가 있죠? 구원 받아도 죄를 지을 수가 있기 때문에 그 죄를 지었을 때 우리 마음 상태를 보면 구원 받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건 아무도 모르고 스스로만 아는 것인데, 죄를 지어서 죄책감에 고통스러워 지는 마음에서 해방 받는지 아닌지 우리 마음을 점검해 보면 됩니다. 예를들어, `아유, 구원 받고 난 이게 뭐야? 나 구원 받은 것 맞아? 구원 받았는데 왜 난 '간음','술','담배','음란'해?` 이런 마음이 들어서 마음이 참 괴로워집니다. 그럴 때 구원을 받지 못한 형제 자매님이라면 그 마음이 정죄로 계속 이어져 갑니다. 복음이 생각은 나는데 여전히 마음에 정죄에서 벗어나 지지 않고 자기 모습만 보입니다. 여기까지는 구원을 받은 형제 자매도 똑같은데, 구원을 받으셨다면 마음 속에서 구원 받으 셨을 때 받은 말씀이 떠오릅니다. 절망에 빠져서 내 모습을 정확히 보면서도, 말씀이 떠오르면서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는 기억치 아니하리라`(혹은 다른 성경구절)이 생각이 나면서 그 말씀이 자연스럽게 마음에 믿어집니다. 또 생각이 떠오릅니다. `하나님이 정말 이 죄까지 용서해 주셨을까? 하나님이 내가 구원 받고 나서도 이런 죄를 지을 줄 아셨을까? 하나님이 구원 받은 후에 이렇게 내가 살 줄을 아셨을까? 하나님이 오늘 내가 죄를 지을 줄 아셨을까? 하나님이 정말 이런 나를 아시고 구원해 주신 걸까?` 마음 속에 또 고민이 됩니다. 그러다가 마음에 확실히 말씀이 믿어지면서, 그 죄책감에서 정죄에서 마음으로부터 해방이 됩니다. 말씀이 믿어지면, 아무리 나에게 정죄가 와서 나를 죄로 묶어 두려도 해도 마음으로부터 죄에서 해방이 됩니다. 자유롭습니다. 이런 나를 구원하신 주님께 오히려 감사합니다(마음에서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구원 받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믿어 지는지 아닌지가 중요합니다) 다만 마음이 정말 자유로운지 아닌지는 다른 사람이 알 수 없고 혼자만 알기 때문에, 스스로 마음 속에 조금이라도 거리낌이 있는지 없는지는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른 형제 자매님들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마음에서 복음이 떠오를 때마다 저에게 일어나는 모든 정죄가 그 말씀으로 정리가 되고 마음 속에서 하나님이 내 죄를 사해주셔서 내가 온전한 것이 믿어 졌습니다. 내 행위가 아니라 말씀을 믿음으로 의를 받았기 때문에 지금 내 행위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함아 나를 용서해 주신 사실이 마음으로 믿어 집니다. 내 마음 속에 나를 정죄할 만한 것이 눈꼽만큼이라도 있는가? 확인해 보면 전혀 없습니다. 내 마음 속에 나를 정죄할 것이 있는가? 내 마음 속에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것이 하나라도 있는가? 내 마음 속에 하나님이 날 도와주실 수 없는 조건이 있는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온전히 해 주셨다는 것이 믿어집니다. 이건 저의 개인적인 상황이고, 실제로는 말씀이 믿어지는가? 아닌가로 모든 것이 결정 됩니다. 반대로, 육신에 사로잡혀 있을 때, 똑같은 제가 어떻게 변하냐면, 내가 죄를 지은 것이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나를 책망하실 것 같습니다. 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내 자신이 하는 걸 바라보고 하나님이 날 도와 주실 것 같지 않다고 느낍니다. 내가 너무 육신적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마음이 멀기 때문에 하나님이 날 버리실 것만 같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를 입혀 주시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단은 말씀을 보는 눈을 가리우고 `나`를 바라보게 하는 눈을 띄워 놓았기 때문에 우리가 계속 우리 자신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사단은 어떻게든 형편을 보게 하고 내 자신을 보게 하는 일을 계속합니다. 말씀을 생각나게 할 틈도 없이 집요하게 공격하기 때문에 우리는 시험에 들 수 밖에 없습니다. 마치 장기에 훈수를 두는 사람은 장기가 보이는 것과 같이, 우리가 시험에 들었을 때 교회에 있는 사역자님들이나 하나님이 세우신 분들이 우리의 마음을 알면 말씀을 바라보게 하는 일을 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옆에서 보면 너무 쉬운데 당사자는 사단이 눈을 가리워 놔서 말씀을 전혀 보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종종 볼 것입니다. 우리가 확실히 구원을 받았다면, 우리 마음 속에 죄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 눈꼽만큼도 우리 마음에 죄가 없이,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 죄가 눈보다 희게 사함을 받았다는 그 사실이 믿겨집니다. 신앙도 그와 똑같습니다. 만일 우리 생활에 어려움이 찾아 오면, 마치 범죄한 때와 같이 마음에 고통이 됩니다. 어려움이 됩니다. 그런 어려움에 마음이 낮아지게 됨은, 마치 죄를 지었을 때 마음에 고통함으로서 마음이 낮아지게 됨가 같습니다. 또한 이런 마음 상태에서 복음이 떠올라서(말씀) 내 마음의 죄책감을 이겨줌과 같이, 반드시 이 과정을 지나친 후에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게 됩니다. `그래, 내 생각은 이런데, 말씀은 뭐라고 하셨지?` 하면서 성경을 펴 보면 너무나 명확하게 답이 나와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면서 어떤 문제와 하나님의 말씀과 정확히 부딛히지 않고 내 자신을 보고 형편을 보고, 또 내 하는 꼴을 보고 형편을 보고, 말씀도 보고 기도도 하지만 형편도 본다면, 절대로 하나님이 일하실 수가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신앙이란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그 아들 독생자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기 때문에, 예수님 당시에는 예수님을 찾아오는 사람마다 다 고침을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현재도 예수님은 말씀이시고 살아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을 찾아가 말씀을 바라보면 예수님 당시와 똑같이 예수님이 우리를 고쳐주시고 말씀으로 형편을 이겨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먼저지, 예수님께 고침을 받는 것이 먼저가 아닙니다. 신앙이란 것은, 말씀만을 믿는 것입니다. 형편이 어떠하던지 간에 말씀을 세우는 것입니다. 초식동물은 풀만 먹듯이, 또 육식 동물은 고기만 먹듯이, 어떤 상황에도 그리스도인은 말씀만 먹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함아 살리라, 함과 같이 우리는 오직 말씀(믿음)으로 말미함아 삽니다. 그래서 어떠한 형편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는 뭐라고 기록되어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고, `말씀에는 이렇게 되어 있네. 아!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고 되어 있네! 그럼 나는 온전하네! 하나님이 나를 도와 주시겠네! 그럼 이 문제도 하나님이 해결해 주셨네! 아멘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해결해 주신 것을 믿습니다` 하고 답변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럼 사단은 와서 우리의 목소리로 우리 자신의 머리 안에서 어떤 생각을 넣냐면, `근데 언제 하나님이 기도를 응답해 주실까?` 하면서 `결과`를 기대하게 만듭니다.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질문 같지만, 사단은 우리에게 `질문`과 `스스로 답변함`으로 인해 우리를 속이기 때문에 사단의 질문에 우리는 순진하게 넘어갑니다. 마치 하와에게 다가온 뱀이 `하나님이 정녕 너희더러 동산에 있는 모든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 하면서 질문으로 우리 마음을 뒤 흔든 것 같이, 우리 안에서 우리 자신이 시시 때때로 `스스로에게`(사실 사단이 우리에게 질문하게 하는 것입니다만) 질문하는 것을 우리가 하나 하나 발견하게 되면, 질문 자체가 가장 우리를 혼란하게 만들기 쉬운 방법이란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언제쯤 하나님이 내 기도를 응답해 주실까?` `하나님이 내 기도를 정말 받으실까?` `내가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하나님이 정말 이것을 기뻐하실까?(좋은 질문이지만 말씀을 의심해서 물어 볼 때에)` 이런 질문에 우리는 `아마도 한달 후에. 그럴지도 몰라. 한 내일 모레쯤? 안 기뻐하실지도 몰라` 하면서 `스스로` 답변을 합니다. 금송아지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언제해 주실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요? 말씀 자체가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 눈에 나타나 보여지는 결과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말씀 자체를 신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씀 자체가 보여주는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실제로 우리가 고려해야 할 대상도 아닙니다. 말씀 자체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우리가 마음에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을 사단은 자꾸 잃어버리게 합니다. 말씀을 잃어 버리게 되면 어떤 그리스도인도(거듭난 우리 형제 자매님을 말합니다) 다시 행위로 돌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우리 선교회 안에 들어와서 신앙 생활을 한 1년 정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고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또 형제 자매님들이 생활하는 것이나, 사역자님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생활하는 것을 보게 되고, 어떤 생각이 드냐면, `나도 저렇게 일찍 일어나서 성경을 보고 기도하면 참 좋겠다` 하는 막연한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면서 `나도 내일부터 한 번 5시에 일어나 볼까?` 하는 `의지`가 생기게 됩니다. 이 `나도 x뭐뭐뭐x 할까?`라는 이 `질문`, 내가 무엇을 해야지 하는 그 질문 자체를 사단이 넣어 줍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생각에 대해서 무엇과 연결 시키는 훈련이 부족하냐면, `기록되었으되`와 연결 시키는 훈련이 부족합니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함아 살리라`라는 것은, 우리 생활과 모든 마음과 생각이 모두 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부분`과 연결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단이 와서 우리에게 질문도 하고 시험도 한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되면, 사단에게 속지 않으려고 결심도 하고 각오도 합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말씀`을 믿지 못하게 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다 허락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믿게 하십니다.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행위, 즉 율법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가만히 놔두면 다 율법으로 갑니다. `내일 5시에 일어나서 새벽기도 가야지` 라는 법, 처음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가도 그 것이 어느 순간 법으로 바뀝니다. `이야, 우리 교회 강 형제 보면 매일 새벽기도 나오데?` 이런 말을 듣게 되면 강 형제님은 매일 새벽기도 나오는 것이 흐뭇한 마음이 들게 되고 `아 나는 새벽기도를 잘 나와` 하면서 어느 순간 부터 '나'는 새벽기도를 잘 나가는 사람 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의 은혜에서 떠나가면 새벽기도 나오는 것이 힘이 듭니다. 그렇게 되면 `의지`로 새벽기도를 나오게 되고 그것이 강 형제님에게는 이제 마음이 아니라 법이 되어버립니다. `어 이상하다?` 할 때 이미 새벽기도 나가는 것이 힘이 들게 되고 이제 빠지게 되고 어느 순간 안 나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서 `어? 내가 왜 이러지? 내일부터 다시 나가야지. 하나님과 마음을 가까이 해야지`하면서 노력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가 복음을 계속 듣고 또 들어야 하는 이유는, 구원을 받기가 참 쉽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받기가 참 쉬운 것은 `죄`란 것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마음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눈으로 보고 확인하지 않아도 `말씀에는 우리가 죄 없다 하신다`는 것을 `보지 않고`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보지 않아도 믿는 것`이 참 복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앙 생활 할 때 어려운 것이 `보이는 것`을 사람들이 참 원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게 문제가 있습니다.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합니다. 그 기도가 이루어 지는가 아닌가를 확인해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까? 아닙니다. 그 문제가 정말 해결 되는지 아닌지 알고 싶다면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한 후에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말씀이 뭐라고 기록되어 있는가? 말씀에는 하나님이 뭐라고 하셨는가? 형편은 무시하고 말씀에 이 문제가 해결 된다고 했나? 안했나? 말씀이 이렇게 되어 있네. 그럼 말씀이 맞아, 아니면 내 형편이 맞아? 말씀이 맞지! 하나님이 옳지! 그럼 내 생각은 이렇지만 말씀을 믿어야지... 이것이 확인입니다. 기도가 이루어 졌습니다. 기도가 이루어 진 것은 말씀이 어떻게 적혀 있는가? 그 말씀이 정확한가? 이 두가지로 확인 하는 것이지, 결과가 나타났는가 아닌가는 우리가 생각하거나 고려할 문제가 아닙니다. 안 되면 어쩌지? 라고 고민하시는 분이 있는데 의심에서 나오는 불신입니다. 버려야 할 대상이지 끙끙 앓아야 할 게 아니죠. 말씀을 보고 말씀 이외의 것들을 쳐내는 것, 그 과정 자체가 믿음인 것입니다. 말씀이 없다면 어떻게 합니까? 당연히 말씀을 받아야죠. 말씀을 어떻게 받죠? 1.성경으로 2.종이나 교회의 교제로 3.설교로 4.깨달음으로 등등이 있습니다. 성경을 잘 모르신다면, 말씀을 받기 가장 쉬운 방법은 하나님의 종 앞에 나아가서 `이런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하나님의 말씀에는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이렇게 물어 보면 됩니다. 성경을 잘 아시는 분이라도 마음에 성경 말씀을 확실히 믿기 위해서는 기도를 하셔서 하나님께 계속 구하고 물어 보아야 하는 것이, 어떤 말씀을 딱 받아서 믿음으로 가지고 있다가도, 형편이 계속 나빠지면 `어? 이 말씀이 아닌가? 내가 잘못 받았나? 딴 말씀 받아야 하나?` 하면서 말씀을 다시 바꾸고 바꾸고 하면서 말씀을 마치 전철 바꿔 타듯이, 버스 바꿔 타듯이 갈아타는(?) 형제 자매님들이 있습니다. 말씀을 받은 것이 아니라 생각을 받아서 그렇습니다. `이 말씀일꺼야` `이렇게 하면 될꺼야`하는 자신감에서 나온 착각입니다. 여러분이 정말 모든 기도가 응답 받고, 시험에 들지도 않는 사람이 `아니라면` 보통 그냥 일반 성도시라면,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에게서 나오는 생각과 말씀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실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 사실을 정확히 발견하면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에게서 나오는(?) 말씀을 가지고 신앙 생활 할려고 하지 않습니다. 흘려 받으려고 합니다. 도와줄 사람을 구하게 됩니다. `누가 나를 이 사망에 몸에서 건져 낼꼬?`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어`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 하면서 눈이 `나`에게서 `다른 누군가`에게로 돌아 갑니다. 불의한 청지기를 아십니까? 누가복음 16: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이제 자신에게서 나오는 방법으로는 안되겠다, 나는 안되는 구나, 나는 망했구나, 나는 말쓰믈 붙잡을 수 없구나, 나는 말씀을 받을 수 없구나, 나는 기도를 못하는구나, 나는 계속 노력으로 행위로 돌아 가는 구나, 나는 의지가 너무 강하구나, 나는 믿어도 응답이 잘 안오네? `그러면` 이제 내가 늘 무시했던 사람들,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사역자님에게, 또 형제님에게 은혜를 입자. 그 분들에게서 나오는 말씀을 들어보자. 그래서 말씀을 받자. 하면서 말씀을 자연스럽게 흘려 받으려는 마음으로 변합니다. 마치 복음을 내가 스스로 깨달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서 흘려 받아서 그 사실을 그대로 믿었듯이,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는 것도 내가 스스로 깨닫는 것이 아니라, `난 안돼. 누군가 날 도와줘야 해`하는 마음으로 자신에게서 기대를 끊어야 시작이 됩니다. 이것을 우리 교회에서는 `회개`라고 합니다. 정확한 회개가 이루어 지면, 믿음을 가지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보통 교회를 너무 시들하게 여기고, 사역자분들을 너무 무시하기 때문에, 또 교회에서 직분을 주신 분들을, 장년회장이나 어떤 리더들을 너무 깔보기 때문에 교만한 그 마음이 말씀을 받는 것을 굉장히 방해합니다. 하나님을 가장 슬프게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을 받는 때를 `겸손한 마음`으로 정해 두셨습니다. 그 마음을 받으려면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잘났다, 괜찮다, 이런 마음을 가지면 절대로 절대로 안 됩니다. 하나님은 그 보물을 낮은 곳, 허리를 굽혀야 하는 곳에 숨겨 두셨습니다. 여태까지 여러분이 무시하셨던 분, 성격이 괴팍하다고 생각해서 가까이 하지 않으셨던 분, 혹은 여태까지 읽지 않았던 성경, 혹은 여러분이 개인적으로 싫어했던 사역자님의 설교, 혹은 교회 어린 아이들, 혹은 직장에서 여러분이 무시했던 상사, 혹은 부모님, 혹은 여러분의 자녀들, 이 모든 환경에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 당신의 말씀, 당신의 보물을 두셨습니다. 그 보물을 우리가 발견해서 얻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지금 가지고 있는 그 마음의 상태로는 얻을 수 없습니다. 마음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쉬운 것 부터 하나 하나 얻으시려면, 여러분이 교회에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나아가서 물어보아야 합니다. 내가 가진 믿음을 점검해 보시고, 그 말씀에 문제가 없다면, 그 말씀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형편이 어찌되던지 해결 되던지 안 되던지 전혀 관계 없이 말씀을 바라보고 말씀을 기억하고 말씀만이 길이 되면 반드시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뭔가 할려고 노력하는 것(율법)은 말씀을 믿지 않는 데에서 나오게 됩니다. 율법과 믿음을 정확하게 구분하게 되면,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해야지`라는 행위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말씀에는 뭐라고 되어 있지? 어떻게 기록되어 있지?` 하는 믿음으로 자라나게 됩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하늘에 별을 보여주시면서 `네 자손이 이와 같이 되리라`고 하셨을 때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실 것을 마음에 믿었습니다. 보이지 않았지만, 보이는 결과가 없어도 `말씀`을 믿었습니다. 실제로 그 말씀은 아브라함이 죽기까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죽기까지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믿었습니다. 내 `눈`이 아니라, 그 자손을 보고 믿은 것이 아니라 `약속`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말씀대로 우리 선교회를 세우시고 우리를 구원 받게 하셔서 지금까지 일하는 것을 봅니다. 정말 놀라우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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