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루에 빠져 있을 때
. 행위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행위나 현재의 모습을 보지 않고 말씀을 기억함으로서 죄책감에서 해방됩니다. 죄를 짓는 행위가 저희들에게 안 좋은 것이 범죄를 하게 되면 (분명히 복음은 아는데) 그 범죄한 행위가 자꾸 나를 정죄하려고 덤비기 때문입니다. 범죄를 해도 실제로 그 범죄한 것까지 이미 죄의 값은 지불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범죄한 기억이 또렷한데, 그 기억을 가지고 죄책감으로 우리를 덮어 씌우게 되면 실제로 복음보다 그 기억이나 행위에 마음이 가버려서 실제로 끝나버린 죄가 우리를 다시 지배하는 조건이 훨씬 더 유리하게 됩니다. 실제로 죄가, 법을 사용해서(구원 받았으니까 일찍 일어나서 성경 읽어야지, 기도해야지 등등) 우리에게 느낌이나 기분, 즉 육신의 것으로 우리에게 범죄를 시킬 때가 많습니다. 구원을 받았다고 해도 우리가 범죄를 할 기회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구원을 받았거나 받지 않았거나 우리는 항상 범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이후에는 복음의 힘, 즉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복음을 통해 받은 그 믿음이, 우리를 실제로 범죄하는 데서 지켜 주는 믿음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임마누엘, 이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계속 범죄하게 되면 '에이, 이미 버린 몸'이런 마음이 들면서 범죄를 계속 행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우리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에 그 행위에 매일 필요가 없고, 그 범죄하려는 생각, 느낌, 기분을 따라갈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절대로 없습니다. 육신은 우리에게 계속 범죄를 요구하나, 우리는 영에 속한 자이기 때문에(이 말씀을 정확히 기억한다면) 육신에 따라갈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럼 나는 왜 계속 범죄하지?'하면서 의문을 가지시는 분이 많은데, 실제로 우리가 범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죄가 우리 안에서 우리를 죄를 짓도록 끌어 가는 것입니다. 죄에 끌려 간다는 것은 육신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즉, 육신의 행위 안에 매여 있어서, 이제 구원을 받았으니 경건하게 살아야지, 하는 법이 들어 오거나, 육신의 욕구를 전혀 제어하지 않고 나오는 그대로 다 받아 주어서 육신이 우리 안에 욕구를 넣어 주면 그대로 따라 가는 것이지요. 마치 아기 코끼리를 어릴 때 부터 단단한 철을 사용해서 다리를 매어 두면, 엄청나게 큰 코끼리가 되어도 여전히 자신을 알지 못하고 여전히 나무에 박아 놓은 철도 아닌 그냥 노끈에 매여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실제로 우리를 매어 두었던 죄책감이라는 그 단단한 철 수갑에서 빠져나왔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과 같습니다. 진실로, 우리는 이미 죄와 상관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영의 인도를 따라서 살아가면 우리를 매던 죄는 전혀 힘이 없이 쑥 뽑여 나옵니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 발목에 매여서 질질 끌려 오면서 우리가 머무를 때 마다 또 땅에 박아 놓고 '너 묶였다! 꼼짝못하지? 무섭지!'하면서 (어찌 보면 유치할 정도로) 우리를 계속 같은 방법으로 죄에 묶여 놓습니다. 실제로 구원을 받은 후 범죄를 하게 되면 복음보다 범죄한 기억이나 경험이나 느낌이나 정죄함에 매여 있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우리 안에 범죄하고 싶은 욕망이 올라 옵니다. 그래도 우리는 전혀 그 욕망에 기분에 느낌에 따라갈 필요가 없습니다. 욕망이 올라 오면서 내 안에 마귀가 생각을 동시에 넣어 줍니다. '나는 이 욕망에 끌려 갈 수 밖에 없어'하면서 내 안에 나의 목소리로, 내 생각같이 착각을 같이 일으켜 줍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맞아' 하면서 예전에 나의 모습을 기억하게 하면서 마음 속에 강하게 욕망을 쑥 넣어 주면 '맞아, 나는 어쩔 수 없어'하면서 실제로 그 생각이나 욕망에 이끌려서 범죄를 하게 됩니다. 이게 바로 속는 것입니다. 범죄하고 싶은 욕망이 올라와도 기분이 들어도, 실제로 그렇게 내가 살고 있어도 우리는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죄에서 자유롭습니다. 기분에 상관없이, 형편에 상관없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 자유를 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형편이나 기분이나 생각이나 느낌이나 내 안에서 솟아 오르는 모든 것, 즉 우리의 육신 안에서 나오는 모든 것과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마음을 주신 하나님을 믿는 마음,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함이 아니라,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 가는 것을 믿는 마음이 바로 믿음입니다. 두려워 하지 마십시요, 하나님을 바라 보시면 하나님이 반드시 날 도와줄 것을 믿으세요. 범죄하더라도 하나님이 날 버리셨다고 착각하지 마시고, 그 어떤 형편이라도 하나님을 바라 보시는 형제 자매분들이 되시길 원합니다. 박옥수 목사님께서 신앙에서 일어 나는 문제를 사막을 많이 다녀본 사람의 인도를 받아서 긴 사막을 횡단하는 이야기를 통해서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 인도자의 말을 따라 가기로 결심을 해서 사막을 가다가 오하시스라는 신기루를 보면, 우리가 해야 될 생각은 단 한 가지입니다. '인도자를 믿는 것' (신기루인) 오하시스가 나타나지 않기를 기대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입니다. 내 눈은 계속 신기루를 보게 됩니다. 내 눈은 계속 그 오하시스가 진짜인 것처럼 믿게 되기 마련입니다. 그런 눈은 버리고, 인도자를 바라보면서, 인도자에게 궁금할 때 마다 물어 보면서 안심하고 걸어 가시면 됩니다. 만일 우리가 실수로 오하시스인 줄 알고 따라갔다고 해도(범죄함) 그 실수한 그 위치에서도 내 옆에 인도자이신 성령님을 믿고, 그 위치에서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그 것이 믿음입니다. 쉽죠? 믿음은 정말 쉽습니다. 사단은 우리의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게 하는' 믿음을 통해 일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을 통해 일합니다. 나의 행위를 보지 마시고, 내 생각이나 느낌을 믿지 마시고, '난 언제나 틀려, 나는 악한 사람이야, 나는 범죄하는 것이 당연한 사람이야, 예수님이 나를 도와 주지 않으면 난 항상 이렇게 살 수 밖에 없어, 내가 이렇게 사는 건 당연한 거야, 그러니까 이제 나는 내 느낌, 기분을 믿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만을 따라 갈 꺼야' 하면서 내 안에서 올라오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백번씩 버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한 두 번 버리다가 못 버리고 먹어 버렸다면, 최대한 빨리 퉤, 하고 뱉어 버리고 다시 말씀을 기억하는 그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오면 반드시 형편이 와서 우리가 받은 씨(말씀)을 제거하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생각이나 욕망을 이상히 여기지 마시고, 당연한 걸로 알면서, 내 자신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는 것은 정말로 즐거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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