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 제국 페르시아’ 전시회
성경에 많이 등장하는 바사(페르시아) 유물 전시회가 있는데 성경을 믿는 우리들에게는 유익한 시간이 되지 않을까 해서 관련 동아일보 기사를 올려봅니다. 주최: 동아일보가 국립중앙박물관, 이란국립박물관, SBS 제목: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 일시: 4월 22일∼8월 31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9월 29일∼12월 21일 국립대구박물관  전시에는 기원전 5000년경 신석기시대부터 기원후 7세기 사산조페르시아까지 페르시아의 영광을 담은 유물 204점과 실크로드를 통한 고대 페르시아와 신라의 문화 교류 양상을 보여주는 경북 경주 출토 신라 유리잔 등 우리 문화재 18점을 함께 선보인다.  페르시아 유물들은 이란국립박물관, 페르세폴리스 박물관 등 이란 정상의 박물관 5곳의 소장품으로 ‘날개 달린 사자 모양 황금 각배(角杯·뿔 모양의 잔)’, ‘양 머리 모양 황금 각배’, ‘황금 단검’ 등이다.  전시에는 KAIST가 페르시아의 전성기인 아케메네스왕조(기원전 525∼기원전 330년)의 수도 페르세폴리스 유적을 3D로 재현한 영상도 선보인다. 페르시아의 신화, 역사, 문화, 예술에 대한 전문가 강의를 비롯해 페르시아 인장(印章)과 유리잔 등 유물을 직접 만들어보는 체험 행사도 마련된다. 1만 원. 02-2077-9263 성경 내용과 관련된 페르시아 역사 기원전 587년 바빌로니아 왕국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느부갓네살)가 유다의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린 뒤 두 차례에 걸쳐 유대인들을 강제로 바빌론으로 끌고 간다. 이 유명한 사건이 ‘바빌론 유수’다.  6세기 중엽 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킨 바사 제국은 당시 성서의 저자들이 세계를 장악한 초강대국으로 봤을 정도로 강력한 군사력과 수많은 식민지를 자랑했지만 정복지에 대한 정책은 바빌로니아와 전혀 달랐다. 바사 제국의 고레스 왕은 바빌로니아의 유대인 정책을 폐지하고 유대인을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등 정복지 여러 민족의 정신과 문화를 존중한 관용과 융합의 정신을 보였다.  바사가 바로 페르시아다. 고레스 왕은 기원전 6세기 중엽 이란 고원에서 절대 권력을 잡아 페르시아 세계 제국 시대를 연 아케메네스 왕조의 키루스 2세(기원전 585년경∼기원전 529년)다.  페르시아는 기원전 525년 서아시아에서 이집트에 이르는 광대한 오리엔트 땅을 통일했기 때문에 당대 유대인들도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아야 했다. 따라서 구약성서 곳곳에 페르시아와 페르시아 왕들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를 기독교인들이 꼭 둘러봐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 ‘고레스는 나의 목자라…’  키루스 2세는 ‘고레스 칙령’을 내려 유대인들이 언제든 팔레스타인의 유다로 돌아가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지을 수 있게 했다. 키루스 2세는 유대인의 신앙, 민족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해야 유대인들이 페르시아의 통치에 협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유다로 돌아온 유대인들은 기원전 515년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세웠다(구약성서 느헤미야 2장 9절∼3장 32절).  바빌론으로 끌려간 유대인 포로를 격려하기 위해 쓴 구약성서 다니엘서는 아예 키루스 2세가 바빌론을 점령할 때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구약성서 이사야서에는 하느님이 키루스 2세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44장 28절)라는 표현과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45장 1절)라는 표현이 잇달아 나온다.  키루스 2세는 유대인이 아닌데도 이처럼 구약성서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키루스 2세가 유대인의 하느님을 섬기지 않았지만 유대인의 신앙을 보장한 일을 성서 저자들이 높이 샀기 때문이다. ○ ‘고레스 칙령’ 발견된 곳은 페르시아의 보물창고  유대인에 대한 키루스 2세의 관용을 보여 준 ‘고레스 칙령’이 발견된 곳은 악메다다.  그 발견의 사연은 이렇다. 아케메네스 왕조 다리우스 1세 때 유대인들이 성전을 다시 짓던 중 사마리아 주민들의 방해로 성전 재건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유대인들은 키루스 2세가 성전 건축을 허락했다며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다리우스 1세에게 ‘고레스 칙령’을 찾아줄 것을 부탁한다. ‘악메다 궁성에서 한 두루마리를 찾았으니 거기에 기록하였으되….’(에스라 6장 2절)  이 유명한 악메다가 바로 하마단이다. 하마단은 다리우스 1세 시절 페르시아의 제3수도(여름 궁전)이기도 했다. 다리우스 1세는 페르세폴리스를 제1수도로, 수사를 제2수도(겨울 궁전)로 정했다. 하마단은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서남쪽으로 337km 떨어져 있다.  현재까지 옛 궁전의 발굴 작업이 계속되면서 페르시아의 찬란한 문명을 상징하는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아케메네스 왕조의 비문들도 잇달아 발견됐다. 구약성서 에스더서의 주인공인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무덤도 있어 성서 고고학적으로도 중요한 곳이다.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에 선보이는 페르시아 문명 대표 유물 ‘날개 달린 사자 모양 황금 각배(角杯·뿔 모양의 잔)’도 하마단에서 출토됐다. 사자와 염소를 화려하게 장식해 아케메네스 왕조를 대표하는 금제 공예품으로 불리는 ‘황금 단검’도 이곳에서 발견됐다. ○ 유대인을 구한 여성의 남편이 페르시아의 왕  그러면 하마단에 무덤이 있는 에스더는 누굴까.  유대인 여성인 에스더는 기원전 5세기 아하수에로 왕의 신하인 하만이 유대인을 몰살하려는 계획을 세우자 이에 맞서 아하수에로 왕의 비(妃)가 된 뒤 양부(養父)인 모르드개와 함께 하만의 음모로부터 유대인을 구출해 낸 영웅이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아하수에로 왕이 바로 다리우스 1세의 아들인 크세르크세스 1세다. 이집트, 바빌로니아의 반란을 진압하고 그리스와 전쟁을 벌인 주인공이다.  하마단에서 서쪽으로 5km 떨어진 아바스아바드 계곡에 다리우스 1세와 크세르크세스 1세의 돌 비문이 있다. 크세르크세스 1세의 비문에는 ‘많은 왕 가운데 뛰어난 왕, 많은 통치자 가운데 뛰어난 통치자, 나는 위대한 왕 크세르크세스다. 왕 중의 왕이며 수많은 거민(居民)이 있는 땅의 왕, 끝없는 경계의 거대한 왕국의 왕 아케메네스의 군주 다리우스의 아들이다’라고 적혀 있다. ○미리 보는 ‘페르시아 유물전’/‘크세르크세스가 새겨진 황금 잔’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의 출품작 가운데 하나인 ‘크세르크세스가 새겨진 황금 잔’.  좁은 잔 바닥에서 부드럽게 넓어졌다가 입구로 올라오면서 다시 좁아지는 수려한 곡선, 잔 바깥쪽에 돋을새김 기법으로 조각한 여러 가닥의 꽃잎 모양 덕분에 활짝 핀 한 송이 ‘황금 꽃’을 보는 듯하다.  잔 입구엔 고대 페르시아어와 바빌로니아어, 엘람어 등 세 개의 언어로 ‘크세르크세스 위대한 왕’이라고 새겨져 있다. 엘람 제국은 기원전 4000년∼기원전 3000년 이란 고원에 정착한 세력이다.   ‘크세르크세스’는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기원전 559년∼기원전 330년)의 왕인 크세르크세스 1세(기원전 519년경∼기원전 465년)를 지칭한다. 다리우스 1세의 아들인 크세르크세스 1세는 아버지에 이어 페르시아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인물.  이 황금 잔처럼 생긴 모양의 술잔을 피알레(phiale)라고 부른다. 고대의 신이나 왕에 대한 의례를 지낼 때 사용했다. 의례 때 음료나 술을 뿔잔에 부어 뿔잔 아래쪽에 난 구멍으로 흘러내리면 피알레로 받아 마시는 것이다.  이 황금잔은 크세르크세스 1세를 위한 의식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황금 잔이 출토된 하마단은 아케메네스 왕조의 여름용 궁전이었고 사산조 페르시아가 멸망한 7세기 이후에는 이슬람 세계의 중심 도시로 성장했다. 현재 이란 하마단 주의 주도(州都)이며 옛 이름은 에크바타나(Ecbatana)다. 출처: 동아일보 4월 12일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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