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믿음
여의도 순복음 교회 소속의 에셀입니다.

흔히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을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쉽게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의 삶속의 열매 속에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경우는 많지가 않습니다. 한마디로 거짓 신앙일 겁니다.

어느 교회의 경우는 새신자를 영접할 때 형식적인 기도를 통해 형제 자매로 받아들이므로 많은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그 기도의 내용을 이해하고 믿었다면 분명히 구원을 받겠지만, 그러나 무리수가 너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귀 선교회의 내용을 몇가지 읽어보면서 의문이 드는것이 있어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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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아래의 내용에는 서로 동의 하는 것 같습니다.

불신자가 구원 즉 거듭나는 방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뿐입니다. 그것은 진리 또는 복음이라는 명칭이 붙어서 불신자에게 전해지게 됩니다. 복음의 내용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심으로 인류의 모든 죄를 사하신 것과 장사된지 3일만에 부활하셔서 새삶의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간은 거듭날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믿음이 없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 의하여 믿음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첫시작이 당연히 죄사함과 관련된 구원의 복음을 듣는데서 시작할 것이며, 성도의 성화과정이나 생활윤리를 배움에서 시작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불신자가 믿음이 없는 이유는 그 영이 하나님과 분리되어 죽어 있고 서서히 죽음으로 향하는 육만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육은 항상 하나님을 대적한다고 성경이 증거하므로 인간의 확신은 있을 지언정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습니다.

난해한 점은 여기에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아예 복음을 왜곡하기 때문에 말할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떤 교회는 복음을 알면서도 잘 전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이런 경우 구원의 역사는 사실상 어렵다고 보여집니다. 믿음에는 예수님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귀선교회의 내용을 보면 복음의 내용을 잘 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결여된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 단지 구세주만 강조되는 것은 아닌지요?
저는 교회에서 진리를 증거할 때 어려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구세주인신 예수님의 복음을 잘 모르는 것도 문제이지만, 알면서도 삶의변화가 없다는 것 입니다. 저는 그 이유에 대하여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복음의 사실에 지적인 동의를 하고 기쁨으로 받기는 했지만, 예수를 주님으로 모시지는 않는 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알라딘의 마술램프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이땅의 삶의 필요에 따라 하나님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입니다. 다른말로 하면 왜곡된 신앙일 겁니다.

마귀도 예수를 알아보고 그의 말에 복종합니다. 야고보서는 귀신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도와 차이가 있다면 근본적으로 알면서도 대적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알고 이해하며 기쁨으로 받지만, 삶을 보면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그것은 삶이 방탕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소속된 모임의 경우 1월 1일부터 줄기차게 기도회 등의 모임으로 예배를 들입니다. 그들은 정말 열심히 기도하고 모이고..그것도 하루도 거의 안 빠지고한번 모이면 기본이 3시간 예배입니다. 착하게 살려고 노력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가령 기도를 하면 삶의 문제 해결에 관한 것이고, 집에 가서는 먹고 사는데 바쁘고.. 말로 표현은 어렵지만.. 그들에게 하나님은 능력많은 부리는 종 입니다. 삶의 필요에 의한 도구입니다. 영혼의 구원보다는 교회의 부흥에 관심이 더 많고,,,,,

저의 깨달음은 거짓신앙인들이 구세주로서의 예수를 쉽게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결코 주님으로 모시지는 않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론 구세주와 주님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논리적으로 분류하고자 함도 아니며 다만 이해를 돕고자 분리한 개념입니다. 귀 선교회의 전도의 자료를 보면 역시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에는 착실하지만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중요시하는 면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너무 엄격하게 구원의 기준(?)을 적용하는 건가요 ? 주님으로 모신다는 것은 전적으로 그분에게 자신의 삶을 드리는 것과 자신의 주님의 뜻에 따르겠다는 의지일 겁니다. 물론 행위를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도 완전한 행위를 가지지는 못하므로 행위는 사실상 의미가 없으니까요..
그러나 그 마음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님이 나를 구원해주셔서 감사하다 뿐만이 아니라, 그분을 나의 주님으로 모시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믿음이 아닐까요? 이 경우 많은 사람이 무너지겠지요? 죄사함은 쉽게 받지만, 자신의 삶이 주님에게 얽매이고 십지는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은혜로 값없이 받는 구원이지만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내어 맡길 때에 비로서 진정한 믿음이 아닐까요? 내가 보건데 죄사함의 비밀은 사단도 알고 믿을 것이라 생각 합니다. 하지만 사단은 지금 무지 열받아 있겠지요. 자신과 하나님이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이 복음에 지적인 동의가 믿음일까요? 진정 죄를 깨닫고 자신의 무능을 깨닫고 천국의 시민권을 공짜로 얻은 사람이 주님으로 모시지 않겠다는 것이 구원은 얻을 수 있는 믿음이 된다고 생각하시는지?

귀 선교회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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