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구원에 이르는 믿음
안녕하십니까.
저희 선교회 홈페이지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고 더군다나 게시판에 글까지 올려주셔서 더욱더 감사합니다.
저는 구자선이란 사람이며 이 선교회 소속인 동대전중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1991년 어떤 복음을 가진 분으로 부터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 드림으로써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셔서 세상죄를 짊어지고 가셨는데 그 세상죄 안에 나의 모든죄도 포함되어 있구나" 라는것을 발견하고 마음에 믿게 되었습니다.
그 일로 말미암아 "내가 의롭게 되었구나" 라는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중에 "너희죄 흉악하나 눈과 같이 희겠네......,"라는 찬송가의 가사 처럼 내 마음속에 있는 모든 죄가 정말 눈과 같이 말씀속에서 깨끗된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대할때 "당신은 거듭났습니까? 당신은 하나님앞에 죄가없고, 정말로 의인이라고 말할수 있습니까?" 이런 질문을 하지요. 그래서 가끔 사람들로부터 이단시하는 대접을 받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물어보는 이유는 이 영혼이 정말 구원받은 영혼인가, 아니면 그렇지않은가를 분별하여 그렇지않다면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인데 "무슨 그런것을 다 물어보느냐. 교회 다니면 하나님을 믿는것이고 구원받은 것이지" 이런식으로 자기 영혼에 대해 별 관심없이 넘겨버리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자..., 여기서 에셀님에게도 한마디 물어보겠습니다.
"당신은 정말 예수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당신은 거듭났습니까? 당신은 하나님앞에 죄가없고 정말로 의인이라고 말할수 있습니까?" 대답은 마음으로 만 하셔도 됩니다.
에셀님 글중에 구원이 어렵다는 내용도 있는데 우리는 구원이 숨쉬기 보다도 더 쉽거든요.
구원을 우리가 이루어야 한다면 참어렵고 힘들겠지만 구원은 우리가 할일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실 구원자가 할 일 이니까요.
한 예로 물에 빠진 사람이 헤엄을 치고 밖으로 나와서 "나 구원 받았다" 한다면 그사람이 구원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물에 빠져 다죽어가는데 그때 어떤 사람이 와서 그사람을 구해줬다면 그사람은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겝니다.
그와같이 2000년 전에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이땅에 오셔서 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우리(내)영혼를 거기서 건져 주었지요.
그래서 저는 구원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거든요.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해놓은 일이 복음(기쁜소식)이지요.
그렇지만 복음을 듣고서도 구원을 못받는 원인은 뭘까요!

첫째는 "자기위치가 구원받을 위치에 있는가? 구원자의 위치에 있는가?" 입니다.
그것은 자기가 정말 죄밖에 없는 죽을 죄인인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는 겁니다. "내 마음에는 죄는 있지만 그래도 남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걸 보니까 내게도 선이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물에는 빠졌지만 헤엄을 쳐서 나오는 사람과 같습니다.
누가복음 19장18장에 나오는 어떤 부자관원과 같은 사람이라고 할수 있겠지요. 그 사람은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만나 얘기를 할 수 있는 그런 영광스런 기회를 가졌으나 자기의 죄의 짐을 예수께 넘겨주지 못하고 그냥 근심하면서 돌아 갔습니다.
동일하게 지금도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께 모든 짐을내려 놓고 의지하는 것이아니라 자기가 선을 행하여 하나님 앞에 나갈려고 하는 사람이 대부분 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자기 죄의 짐으로 말미암아 고통하고 가책을 느끼다가 선을 행 할려고하나 그렇지못하기 때문에 회개기도 하면서 울고 또 어떤 표적을 구하여 그것으로 말미암아 위안을 삼을려고 하지요. 솔직히 마음에 죄를 씻지(구원)못하고 성령의 불을 받았네, 방언을 하네, 등등......, 이런 표적은 마귀의 장난이란 것을 모르고...,
누가복음 10장30절에 나오는 강도 만난자의 비유에서 강도 만난자가 거반 죽게되었을때 사마리아인(예수)이 와서 구해준 것같이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앞에 정말 죽울수 밖에 없는 마음의 위치라는 것을 발견되어지면 강도만난자가 한 일이 없는것 처럼 하나님 앞에 아무 한 일 없어도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3장27절에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해서 구원을 받는다면 자랑할게 있으려니와 우리가 아무 한일이 없이 구원을 받았기때문에 자랑 할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둘째는 아느것(지식)과 믿는것의 차이 입니다.
히브리서 4장2,3장을 보면 "저희도 복음 전함을 받은자이나 들은바 말씀이 유익치 못한것은 믿지 않음이고, 믿는 우리는 안식에 들어간다"라고 했습니다.
말씀은 언약(약속)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약속, 그럼 약속을 내가 각오를 하고 결심을 해서 믿어지는것이 아니라 약속한 사람이 믿을 만하면 결심을 안해도 믿어 질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우리 아버지를 믿고 따를 수 있는 것처럼...,
물론 여기서 복음을 다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데로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또 예수님은 약속데로 죽으셨고 부활하셨는데, 마음에 여전히 죄가 남아 있다면 분명히 뭐가 잘못?어도 잘못된거 겠지요.
사도행전 8장에 빌립과 에디오피아 내시가 만나는 장면중에 내시가 "대답하되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는뇨"하는 말이 나오지요.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주라고 하면서 그들 마음이 죄로 말미암아 고통하고 있다면 예수님의 잘못이고 책임 입니까. 그럴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잘못 지도하기 때문입니다.
죄사함을 받으면 하나님이 약속데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십니다."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주리니......," 라고 약속 하셨으니까요.
에셀님의 글중에서 "복음을 듣고서도 삶의변화가 없다"는 말이 있는데, 변화가 없다면 그분은 정말 심각하게 자기영혼을 재 점검 해봐야 할 것갔습니다.
우리가 고추가루 만 먹어도 입안이 얼얼하고 매운데 하물며 하나님의 영이 우리안에 거하는데 변화가 없겠습니까.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남편이 여섯이나되는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난뒤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 그리스도를 증거한 것같이 우리마음에 죄를 사함받고 예수님의 영이 들어오면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가 에셀님에게도 임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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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셀님이 작성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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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순복음 교회 소속의 에셀입니다.

흔히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을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쉽게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의 삶속의 열매 속에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경우는 많지가 않습니다. 한마디로 거짓 신앙일 겁니다.

어느 교회의 경우는 새신자를 영접할 때 형식적인 기도를 통해 형제 자매로 받아들이므로 많은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그 기도의 내용을 이해하고 믿었다면 분명히 구원을 받겠지만, 그러나 무리수가 너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귀 선교회의 내용을 몇가지 읽어보면서 의문이 드는것이 있어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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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아래의 내용에는 서로 동의 하는 것 같습니다.

불신자가 구원 즉 거듭나는 방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뿐입니다. 그것은 진리 또는 복음이라는 명칭이 붙어서 불신자에게 전해지게 됩니다. 복음의 내용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심으로 인류의 모든 죄를 사하신 것과 장사된지 3일만에 부활하셔서 새삶의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간은 거듭날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믿음이 없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 의하여 믿음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첫시작이 당연히 죄사함과 관련된 구원의 복음을 듣는데서 시작할 것이며, 성도의 성화과정이나 생활윤리를 배움에서 시작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불신자가 믿음이 없는 이유는 그 영이 하나님과 분리되어 죽어 있고 서서히 죽음으로 향하는 육만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육은 항상 하나님을 대적한다고 성경이 증거하므로 인간의 확신은 있을 지언정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습니다.

난해한 점은 여기에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아예 복음을 왜곡하기 때문에 말할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떤 교회는 복음을 알면서도 잘 전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이런 경우 구원의 역사는 사실상 어렵다고 보여집니다. 믿음에는 예수님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귀선교회의 내용을 보면 복음의 내용을 잘 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결여된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 단지 구세주만 강조되는 것은 아닌지요?
저는 교회에서 진리를 증거할 때 어려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구세주인신 예수님의 복음을 잘 모르는 것도 문제이지만, 알면서도 삶의변화가 없다는 것 입니다. 저는 그 이유에 대하여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복음의 사실에 지적인 동의를 하고 기쁨으로 받기는 했지만, 예수를 주님으로 모시지는 않는 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알라딘의 마술램프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이땅의 삶의 필요에 따라 하나님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입니다. 다른말로 하면 왜곡된 신앙일 겁니다.

마귀도 예수를 알아보고 그의 말에 복종합니다. 야고보서는 귀신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도와 차이가 있다면 근본적으로 알면서도 대적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알고 이해하며 기쁨으로 받지만, 삶을 보면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그것은 삶이 방탕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소속된 모임의 경우 1월 1일부터 줄기차게 기도회 등의 모임으로 예배를 들입니다. 그들은 정말 열심히 기도하고 모이고..그것도 하루도 거의 안 빠지고한번 모이면 기본이 3시간 예배입니다. 착하게 살려고 노력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가령 기도를 하면 삶의 문제 해결에 관한 것이고, 집에 가서는 먹고 사는데 바쁘고.. 말로 표현은 어렵지만.. 그들에게 하나님은 능력많은 부리는 종 입니다. 삶의 필요에 의한 도구입니다. 영혼의 구원보다는 교회의 부흥에 관심이 더 많고,,,,,

저의 깨달음은 거짓신앙인들이 구세주로서의 예수를 쉽게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결코 주님으로 모시지는 않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론 구세주와 주님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논리적으로 분류하고자 함도 아니며 다만 이해를 돕고자 분리한 개념입니다. 귀 선교회의 전도의 자료를 보면 역시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에는 착실하지만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중요시하는 면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너무 엄격하게 구원의 기준(?)을 적용하는 건가요 ? 주님으로 모신다는 것은 전적으로 그분에게 자신의 삶을 드리는 것과 자신의 주님의 뜻에 따르겠다는 의지일 겁니다. 물론 행위를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도 완전한 행위를 가지지는 못하므로 행위는 사실상 의미가 없으니까요..
그러나 그 마음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님이 나를 구원해주셔서 감사하다 뿐만이 아니라, 그분을 나의 주님으로 모시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믿음이 아닐까요? 이 경우 많은 사람이 무너지겠지요? 죄사함은 쉽게 받지만, 자신의 삶이 주님에게 얽매이고 십지는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은혜로 값없이 받는 구원이지만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내어 맡길 때에 비로서 진정한 믿음이 아닐까요? 내가 보건데 죄사함의 비밀은 사단도 알고 믿을 것이라 생각 합니다. 하지만 사단은 지금 무지 열받아 있겠지요. 자신과 하나님이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이 복음에 지적인 동의가 믿음일까요? 진정 죄를 깨닫고 자신의 무능을 깨닫고 천국의 시민권을 공짜로 얻은 사람이 주님으로 모시지 않겠다는 것이 구원은 얻을 수 있는 믿음이 된다고 생각하시는지?

귀 선교회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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