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7일 영상교제 말씀
부활하신 예수님이 해주시겠다


누가복음 24장 4절
이를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이 짧은 말씀 한마디가 그냥 성경말씀이 아니라 내 인생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참 하나님 앞에 감사했습니다. 제가 처음에 복음을 시작할 때 하나님의 약속보다도 형편을 보는 눈이 내 속에 크게 작용을 해서 늘 형편을 보면 한번도 근심하지 않을 때가 없었습니다. 이 근심 끝나면 또 저 근심이 생기고 이쪽 걱정이 끝나면 또 저쪽 걱정이 생기고 그래 가지고 계속 근심 속에 빠졌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면 그때 근심하고 걱정했던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너무 아름답게 잘 처리되고 해결되었다는 놀랄만한 사실을 나중에 깨닫게 된 거죠.

제가 처음에 김천에 들어갔을 때 참 어려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예배당을 얻는 것이나 우리가 거처할 집을 마련하는 것이나 정말 걱정스럽고 야 이건 도저히 되어지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면 하나님께서 놀랍게 그 문제를 해결해 주셨어요. 그래 그 다음에 또 어떤 어려움이 닥치면 ‘아 이 문제도 하나님이 해결해 주겠다’는 그런 믿음이 가져지는 게 아니고 또 근심이 되는 거예요. 지난번에 했던 게 기억이 나도 ‘그때는 어쩌다 우연히 된 거지 이번에는 또 안될는지 몰라.’ 그런 생각들이 내 마음에서 또 근심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삶을 여러 해 동안 지내오면서 내가 경험한 주님은 어떤 주님이냐 하면 내가 근심하고 걱정해야 할 그 모든 걸 맡으신 주님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번에 뉴욕에 가서 하나님이 좋은 예배당을 주신걸 봤습니다. 유대인의 회당을 샀는데 내 마음에 어떤 마음이 일어났느냐 하면 제가 LA 집회할 때 캔자스시티의 김 형제님이 저한테 “목사님 우리 선교회가 세계적으로 큰 선교회인데 미국에 본부를 두면 어떻겠습니까? 미국에서 활동하면 좋겠습니다.” 미국에서는 아프리카 가기도 가깝고 남미 가기도 가깝고 독일 가기도 가깝고 중미도 가깝고 저도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한국에서는 미국 가기도 멀고 남미 가기도 멀고 아프리카 가기도 멀고 다 먼데 미국에서는 아주 가깝더라고요.

그분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거의 별로 생각을 안하고 있었는데 LA 집회를 마치고 타코마하고 멕시코를 갔을 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게 하나님이 일하시는 걸 봤어요. 우린 지금까지 뉴욕하고 LA 중심으로 집회를 많이 했는데 이번에 타코마나 멕시코 시티나 이런데서 집회를 준비하면서 형제 자매들의 마음이 충만해져 있고 반발도 심했지만 역사들도 크게 일어나는 걸 보면서 ‘아 이 북미 땅에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는구나.’ 그런 마음이 들었는데 그래서 캔자스시티에 있는 김 형제님을 뉴욕에 한번 오시라고 그래서 다시 그 일을 의논하면서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되었느냐 하면 “미국에 정식대학교를 설립하자. 종합대학은 아니어도 단과대학이라도 설립을 해서 우리가 영어권이나 스페인권이나 중국어권에서 거기 와서 교육을 받도록 하자.” 그런 이야기가 되었는데 뉴욕교회 예배당 그 자체가 옛날에 유대인의 회당이고 학교로 쓰던 건물이라서 학교로 쓰기에 아주 유리하게 되어 있어서 내가 그걸 추진하라고 이야기를 하고 왔는데 그러면서 내 마음에 소망이 넘치는 거였습니다.

우리가 1989년도 처음에 미국에 선교하러 갔을 때 정말 제가 막막했거든요. 이런 이야기하면 웃을지 모르겠지만 그때 신규식 형제 내외가 우리를 초대했는데 우리가 한 20일 그 집에 머물렀는데 그분이 몸살을 하는 것 같더라고요. 하여튼 자기 친구, 사돈의 팔촌 아는 사람을 다 불러다 놓고 교제해도 끝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중에 차 타고 여행가자고 하는 해서 그때 여러 곳에 가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그때 제가 생각했을 때 미국 선교가 너무 암담했는데 불과 이제 우리가 정식 선교를 한지 10년 좀더 지났습니다만 그 사이에 하나님이 일하신 걸 보면 너무너무 놀라운 거예요. 그러면서 내가 지금 생각하면 ‘만일에 내가 미국에 처음 선교를 시작할 때 앞으로 되어질 이런 걸 눈에 봤다면 내가 걱정했겠나? 내가 압곡동에 있을 때, 김천에 있을 때, 또 대구에 서 처음에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이걸 알았더라면 내가 걱정했겠는가?’ 절대로 내가 걱정 안 하고 굉장히 기뻐하며 소망에 차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렸을 거라는 마음이 드는 거예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또 어떠냐?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거지요. 지금 만일에 여러분들이 지금 여러분들의 현재 눈앞에 있는 형편만 봐서 그렇지 우리를 위하여 계획하시고 준비하시고 역사하신 하나님이 일하신 그걸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다면 근심하겠나? 절대 근심하지 아니하고 감사와 기쁨 가운데 충만하고 시험도 들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그런 일들만 우리 속에 있었을 거라는 마음이 확실하게 들거든요.

오늘 읽은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뒤에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여자들이 향품을 들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거예요. 이 여자들이 예수님을 찾아갈 때 부활한 예수님을 찾아간 게 아니라 무덤 속에 죽어있는 예수님을 찾아가니까 근심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이 여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찾아간 게 아니라 죽은 예수님을 찾아갔는데 예수님은 부활하신 몸으로 이 여자들 앞에 나타나는 이 일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냐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부활하셨는데 우린 그걸 볼만한 눈이 없으니까 예수님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일해야 하는데 우리가 예수님을 위하여 향품을 바르고 우리가 뭘 하려고 하는 이 이야기를 보면 너무 어리석은데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에게 깨우쳐주는 것이 이런 것이라는 마음이 드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근심하고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왜 그러냐 하면 현재 눈앞에 있는 형편만 보지 우리 속에 그 형편을 대처해서 이길만한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을 볼만한 눈이 없다는 거지요.

우리가 어려움 속에 들어가는데 왜 하나님이 가만히 있겠느냐? 절대 그렇지 아니하고 만일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느냐? 어떤 형편이나 환경이나 어떤 문제도 우리를 막거나 대적할 수가 없다. 하나님이 참 우리 가운데 살아서 능력으로 일하신다. 그런데 우리 속에 역사하는 그 하나님을 볼만한 눈은 없고 사탄이 보여주는 어려운 형편을 볼만한 눈만 가졌다면 우린 마땅히 시험에 들어야 하고 근심하고 걱정하는 게 너무 당연하다는 거지요.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역사하셔서 우리가 눈으로 보지 못한 많은 일들을 이루고 계시고 지금 우리가 어떤 어려운 형편에 봉착했을 때 그 어려운 형편이 닥칠걸 우리보다 하나님이 먼저 알고 그 일을 위해 준비하고 일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걸 알면 근심하고 두려워해야 할 일이 아니고 감사해야 할 일인데 우리가 근심할 때가 참 많았다는 거지요.

미국에, 또 전세계 선교에 형편만 보면 전부 근심하고 걱정해야 할 일이 참 많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면 소망이 넘치고 기뻐해야 할 일인데 우리가 뭘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우리 마음이 달라진다는 거지요.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여러분 마음의 눈이 뜨여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 속에 일하시기 위해 준비한 그걸 볼만한 눈을 갖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하시기로 약속한 그 성경의 약속들이 여러분 마음에 살아 있어서 그 약속을 믿고 오늘도 담대하게 복음을 위해 사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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