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의 노래가 떠나고
한숨의 노래가 떠나고





내 나이 서른여섯, 나의 인생을 구원으로 이끄신 주님께 무한한 감사의 마음이 있다.

일곱 살에 어머니, 열일곱 살에 아버지, 일찍 부모를 여이신 아버지와 면장의 큰딸로 남부러울 것 없이 자라신 어머니 사이에서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이 지극했고 특히 아버지의 사랑은 남다르셨다.
생후 7개월 불청객으로 찾아온 심한 고열은 두 손을 못 쓰게 만들어 일평생 장애인으로 살아가야할 운명이 되어버렸다.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으며 나의 키보다 더 많은 돈을 쓰고도, 남는 것은 허탈한 한숨뿐이었다.
예닐곱 살 때 아버지께서 발가락에 숟가락을 끼워주신 이후로 나의 왼발은 내 삶에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보배가 되었다. 숟가락질과 젓가락질하기, 세수와 양치하기, 글씨 쓰기, 그림그리기, 바둑과 장기두기, 요리하기 등 지금은 인터넷도 발로한다.
어렸을 땐 구슬치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아홉 살 때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 나의 기도는 오직 한 가지 장애의 멍에를 벗는 것뿐이었다.
지난 가을 나의 세 번째 개인전에 오신 초등학교 때의 선생님은 “하나님은 내 기도를 왜 안 들어 주지요? 라고 묻곤 했지” 라 말씀하시며 그때를 회상하셨을 정도다.
낙심 속에 찾아온 사춘기의 거센 비바람은 내 마음을 온통 헤집고 지나갔다.
길을 가다말고 가로수에 기대어 한참을 흐느껴 울기도 했고 아무생각 없이 벽이나 먼 산을 쳐다보곤 했다.
비고 빈 마음을 채우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상급학교를 진학하지 못했지만 수 없이 코피 터져가며 그림과 학문에 빠졌었다.
그것들은 잠시 잊을 수 있을 뿐. 근본적으로 내 마음을 어찌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마시기도 했고 술에 취해 길에서 잠든 적도 여러 번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그러한 모습을 말없이 아무런 말도 없이 바라보아야만 하셨다.
화가로써 시인으로써 활동이 활발해지고 온 마음을 쏟지만 사막 한 가운데서 물을 찾는 격으로 더욱 심한 갈증으로 늘 고통 해야 했다.
발로 그림을 그리고 젊은 나이에 한시를 짓는다는 것으로 방송과 신문, 잡지에서는 구미가 당기는 일이었다.
매스컴에서는 꼭두각시처럼 밝게 보여 졌지만 나 홀로 그렇게 파란 눈물을 흘려야했다.

그리고 내 나이 스물아홉 내게도 사랑이 찾아왔다.
그녀는 초생 달 같은 눈썹의 아리따운 얼굴에 마음씨 고운 사람이었다.
사랑을 위해 40 일을 작정, 새벽기도회에 나가기로 했다. 비바람이 부는 날에도 빠짐없이 어둠을 헤치고 그렇게 나갔었다.
깊고 깊은 그리움에 밥도 못 먹고 잠도 못자며 끙끙 앓기도 했다.
매일 매일 그녀를 생각하면서 시를 썼다.
40 편의 시와 40송이의 자주 빛 장미꽃과 편지를 전했지만 끝내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구원을 받고 나니 인간의 고독과 그리움과 사랑이란, 말씀이 떠난 공허한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허전한 마음에 더욱더 교회생활을 열심히 했고 늘 그랬듯이 땅을 치고 통곡하며 죄를 씻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써봤지만 씻어지지 않아 자포자기한 상태로 세상과 적당히 타협해가며 타성에 젖은 종교생활은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그림공부를 위해 부모님의 만류에도 아랑곳없이 춘천에서 독립생활을 했다. 아르바이트 학생이 일주일에 3일 와서 도와주었다.
1년 4개월의 고독했던 춘천생활을 뒤로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한 아파트에 입주하게 되었는데 6층의 맨 끝에 위치해 있었고 교묘하게도 율법의 수인 613호였다.
난 이 아파트에서의 생활이 내 인생에 있어 가장 고독하고 타락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을 만나도 날마다 쌓이는 것은 술병과 고독한 마음뿐이었다.
있는 돈 없는 돈 뿌려가며 육신의 소욕을 쫓아 죄가 이끄는 데로 질질 끌려 다녔다.
나의 영혼은 더욱더 황폐해갔고 조건에 의해 너무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죄, 고통하면서도 죄를 범할 수밖에 없었다.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가복음 7:21~23)

정욕과 시기, 그리고 질투는 내 영혼이 숨이 막힐 지경이었고 특히 증오는 마음속에서 그렇게 불타올랐고 나도 모르게 수 없이 살인을 하고 있었다.
나는 어찌 해야 할 바를 몰라 죄악 된 삶에서 그렇게 방황하다 멸망당할 수밖에 없었지만 베데스다연못의 38 년 된 병자를 찾아오신 주님께서 저주받아야 마땅한 나에게 찾아오셨다.

옆집에 모 자동차회사 영업소장이 살고 있었고 부인(부천은혜교회 오경희 자매님)은 경기도 부천의 어느 고등학교 국어교사인데, 겨울방학이라 아이들을 데리고 남편이 있는 강원도로 내려온 것이다.
지난 2001년 여름에도 과일과 간식을 갖다 주시면서 온갖 공을 들여 복음을 전하려 했으나 나의 25년간의 굳어버린 종교관을 오만으로 고집했기에 말씀이 내속에 들어올 수조차 없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로마서3:23~24)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로마서8:1~2)

계절이 두 번 바뀐 2002년 1월에 이 말씀을 듣고 순간 무엇에 홀린 사람마냥 잠시 멍했지만 예수님에게 행한 세례요한의 세례로 죄 넘김과 십자가의 보혈로 미래 죄를 포함한 나의 모든 죄가 깨끗하게 사함을 받은 사실 즉 , 말씀을 부인할 수가 없었다.
교회형제들의 도움으로 원주제일교회를 나가게 되었지만 사단은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두 달 안 되게 다니다가 술을 끊지 못하고 육적인 것에 이끌려 교회 나가는 것이 귀찮다는 생각에 오랫동안 교회를 떠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교회를 떠나있었던 것은 죄가 죄 된 것을 깨닫지 못했고 그러기에 복음과 교회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교회를 떠나 있는 동안 더욱더 죄악 된 삶을 살게 되었는데 옛날보다 더욱더 마음이 곤고해져 어려웠고 증오와 시기와 질투, 그리고 음란한 마음은 농도가 말할 수 없이 짙어져 어찌할 수가 없었다.
주님은 세상에 소망이 없음과 사람들의 거짓됨을 알게 하시고 내 마음을 더 이상 갈 수 없는 곤고함의 끝으로 이끄셨다. 가까운 횡계에 교회가 세워지고 전도사님과 강릉은혜교회 김희창 형제님이 함께 오셨지만 사단이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기에 교제가 이뤄지지 않아 기쁜 소식지와 몇 권의 신앙서적을 놓고 가셨는데 아파트 같은 층에 사시고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해 목발을 짚고 다니시는 김세동 형제님이 놀러오셨다가 기쁜 소식지 몇 페이지를 읽는 동안 주님이 그 마음을 이끄셨고 책을 빌려가셨으며 전도사님과의 교제로 구원을 받으셨다. 그 이후로 나를 교회로 이끌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시던 중, 전도사님과 형제님과 함께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고장 평창군 봉평에 사는 자매에게 찾아가 주의 종이 교제 하셨던 창세기 6장에 죄가 세상에 관영함과 노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말씀대로 방주를 짓는 대목은 매우 감격적이었다. 그로 죄가 세상에 관영함을 깨달았고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주님의 몸 되신 교회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내가 바로 내 대신 예수님을 죄인 되게 했던 죄인 바라바였고 돌에 맞아죽을 수밖에 없는 간음 중에 잡힌 여자였으니 나는 죽어 멸망당해야 마땅했는데 사랑하는 나의 주님이 큰 고난과 죽음으로 흘리신 보혈로 내 죄를 배나 갚으셨기에 눈과 같이 양털같이 희어졌음에 늘 감사와 찬송을 드린다. 교회생활을 다시 시작하면서 말씀은 들을수록 신기했고 내가 전에 얻지 못했던 큰 힘을 얻게 되었고 또 더욱 분명해졌다. 구원을 받고 은혜 중에 거하니 그때의 삶이 미친 삶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껴지고 내가 받은 구원이 날마다 새롭고 날이 가면 갈수록 감사의 마음이 더욱더 커진다.

나는 그야말로 아버지 집에 돌아 온 탕자였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교회생활의 안식, 그 귀중한 의미를 절실히 느꼈고 주님은 내가 이기지 못한 육에 속한 모든 것을 하나씩 제하여 주셨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요한복음15:1~2)

난 내 스스로 술을 끊지 못해 술로 살다 그렇게 인생이 끝나는가 보다. 라고 생각했는데 술 냄새만 맡아도 머리가 아프게 하셨고 나를 괴롭게 하던 더러운 생각들을 제하셨다.

율법을 졸업했듯 아파트 613호에서 나와 어머니 곁으로 돌아왔다. 친구들을 비롯해 지인들은 만나기만 하면 복음을 전하는 나를 미쳤다고 말한다. 주를 모르는 삶이 진짜 미친 삶인 것, 누가 뭐라 해도 좋다.

교회 형제님의 조카(수원)가 이곳에 내려와 그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그는 헬스클럽을 운영하다 완전히 망하고 설상가상으로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에 장애를 입게 되었고 교회생활을 열심히 하던 권사인 어머니의 교회와의 분쟁, 갑작스런 죽음으로 마음이 많이 곤고했고 깊은 상처로 마음의 문을 좀처럼 열지 않았다.
밭갈이를 하는 동안 내내 무척 힘들었지만 늘 그랬듯이 주님이 능력의 말씀과 지혜로운 생각을 주셔서 복음이 들어갔고 그가 구원을 받고 무척 기뻐했다. 즉시 구원간증을 하며 기뻐했지만 사단의 역사는 대단했다. 사단은 그에게 그의 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계속 넣어 마음을 미혹하게 했고 구원도 받지 않은 어머니가 천국에 갔다고 주장했다. 사단의 짓임을 일러주고 잠시 후 그는 그것을 깨닫고 사단의 계략에 치를 떨었고 주님께 감사했다.
그 외 8개월 동안 교제한 끝에 구원을 받고 고집스러운 자기생각을 깎고 교회생활을 하게 된 형제도 있다.
지금도 교제중인 영혼이 여럿 있는데 세상에서 가장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 복음 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의 수고로 얻고자했던 기쁨은 늘 모자라 목이 말랐고 슬픔과 한숨의 나날이었지만 말씀이 들어와 자리한 내 마음은 기쁨으로 충만하고 우물가의 사마리아여인처럼 더 이상 심한 갈증으로 고통 할 필요가 없게 되어 주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내 입술에서는 술과 한숨의 노래가 떠나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되었으니 진정 참 기쁨 속에 참 행복을 느낀다.
이 귀하고 귀한 복음이 미치지 않는 곳 없이 전파되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고 이시대의 방주, 복음이 살아 숨쉬는 교회가 있어 너무 다행스럽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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