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8일 영상교제 말씀
사단과 하나님과의 싸움


사도행전 9장 11절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여러분 잘 아는대로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나니아에게 나타나서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을 잡으려고 올라오다가 예수님을 만나서 이제 직가에 있는 곳에 가서 유다집에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아나니아에게 가서 사울을 만나라고 하는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내용이지요.

우리가 복음일을 하다보면 굉장히 큰 여러 가지 시련도 있고 문제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실제로 우리와 믿지 않는 자와의 싸움이 아니라 사단과 하나님과의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어떤 싸움 앞에서 우리가 그 문제만 보면 굉장히 두렵지만 이 공식을 적용시키면 그게 너무너무 좋은 것이 사단과 하나님과의 싸움이라면 우리가 뭐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아무 것도 없지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승리하지 사단이 이길 리는 없으니깐요.

이제 그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아죽이기 위하여 막 다메섹에 올라왔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 아나니아는 굉장히 두려웠겠지요. 그런데 항상 사단이 역사하면 하나님도 역사를 하시고 또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사단이 같이 역사를 하기 때문에 하나님 역사없는 사단의 역사없고 사단의 역사가 없는 하나님의 역사가 없기 때문에 이런 일 속에서 우리가 사단이 역사하는 그 사실만 보면 두렵고 우리 마음이 떨리고 그렇겠지만 반대로 이제 그 일을 할 때마다 그일 속에 역사하는 하나님을 바라보면 굉장히 소망이 되는 거죠.

아나니아가 그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아니 날보고 사울을 만나라구요? 사울은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많이 잡아가지고 옥에 넘기고 그런 사람인데, 이제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이 다메섹까지 온 줄 아는데 내가 가면 잡혀죽을 건데 내가 어떻게 거기 갈 수가 있겠습니까?" 아나니아의 마음은 그랬습니다.

그런데 아나니아가 생각하고 있는 사울은 그리스도인을 잡아죽이러 다메섹에 온 그 사울을 보고 있지만 실제 사울은 그런 사울이 아니라 이제 변화가 되어서 아나니아와 교제를 기다리고 아나니아의 은혜를 기다리는 그런 사울로 변화가 되어서 기다리고 있다는 거지요.

그뒤에 아나니아가 가서 사울에게 기도를 함으로 말미암아 사울이 눈을 뜨고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자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저도 복음을 전하다보면 저한테 굉장히 큰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닥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가 닥치는 정확한 과정은 알고 있지만 반대로 하나님이 역사하는 과정을 잘 못보기 때문에 항상 두렵고 떨리고 염려할 때가 참 많았는데, 하나님 늘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 일들을 이끌어주고 해결해 오셨다는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아나니아가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깜짝 놀라가지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듣기로 예루살렘에 있는 주의 제자들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했고 여기 다메섹에 있는 사람들도 잡으러 왔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가라. 이 사람은 나의 택한 그릇이라.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해를 많이 받을 것인지 보이리라"고 했는데 그 이야기를 들을 때 아나니아가 깜짝 놀라지요. `아 벌써 사울이 이렇게 변했구나. 달라졌구나.` 그 사실을 바라보면서 이제 사울을 향해서 걸음을 내디디러 가고 있다는 거지요.

제가 복음을 전할 때 늘 그런 일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예를들어 말하자면 제가 정화여고의 재단 이사장으로 있는 도영대 장로님, 제가 처음 만났을 때 그분 나에게 30초밖에 시간을 안 줬어요. 내가 그분을 만나면 복음을 전하려고 마음을 탁 먹었는데 "아 수고많습니다." 한 30초.. 그래 저는 그냥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기로 그냥 지나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그 다음에 제가 대구교도소 가니까 그분이 거기 계시더라구요. 그리고 수원교도소 가니까 그분이 또 거기에 와 있는데, 거기서 복음을 듣고 그분이 변화를 받고 주를 섬기는게 너무너무 감사한 거예요.

생각을 하면 `아 저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변할 수가 있을까?` 그런 경우가 저에게는 너무너무 많아요. 우리 교회의 이형모 장로님 같은 분은 몇 년 전만 해도 우리를 그렇게 대적한 사람인데, 하나님이 그 마음을 바꾸어서, 그때 제가 대화를 나눠보면 `야 이사람은 한평생 가도 안되겠다.`는 그런 생각이 참 내 마음에 들었는데, 하나님이 그 마음을 바꾸니까 하루 아침에 그 마음이 바뀌어서 교회에 대해서 마음을 열고 주님 앞에 나오고 있더라는 거지요. 우리 이형모 장로님뿐 아니라 김봉연 형제나 전충남 형제 역시 그 사람들이 우리를 굉장히 핍박하고 대적하던 사람들인데, 그러니까 하나님은 지금까지 우리가 사역을 해오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우리안에 계속해서 일하시는 그 일을 보기 때문에 내가 기쁨으로 일을 하고 있다는 거지요.

이건 그 당시에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초대교회 당시만 아니고 그 다음에 또 중세 교회사에 나타나는 이야기만이 아니라 현재도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 가운데서 능력으로 살아서 일을 하고 계시면서 바꾸는 일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한번은 제 동생이 시험에 들어서 교회를 안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 한번 만나 이야기를 해보니까 동생의 마음에 막 오해를 가지고 있었어요. 나는 형님 때문에 내 인생을 망쳤고 나한테 대해 원망과 불신으로 그 마음이 가득차 있는 걸 보았습니다. 그날 내가 너무 화가 나서 막 동생을 때리려고 했어요. 우리 집사람이 말리고 그랬는데... 동생을 보내놓고 난뒤에 내가 조용히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어요. 기도를 하는데 내가 참 감사한 것이 `지금 동생 속에 사단이 역사를 하는구나. 동생이 사단에게 속았다. 그러면 사단이 동생에게 저렇게 역사했다면 하나님은 왜 역사하지 않겠느냐.` 그 생각을 하니까 내 마음이 그렇게 평안하고 기쁘더라구요.

그 뒤에 동생하고 일본 동경에 간적이 있었어요. 그날 제가 동경에 갔다고 사람들이 많이 모였는데, 예배를 마치고 제가 처음온 분들에게 복음을 전했어요. 그날 처음온 분이 대여섯명 되었는데 내가 세분을 앉혀놓고 복음을 전하고 남으니까 동생이 또 앉혀놓고 복음을 전하더라구요. 그날 동생이 복음을 전한 사람이 구원을 받고 내가 전한 사람도 구원을 받았어요.

저녁 집회를 마치고 다 돌아가고 난뒤에 밤에 동생하고 나하고 자는데, 동생이 나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형님 내가 일본에서 저 형제자매들 말씀이 필요한데, 내가 선교사 자격은 없지만 선교사 올때까지 만이라도 내가 여기서 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다`고 하나님이 그 마음을 주셨어요. 그때부터 동생 마음에 복음을 향해 그렇게 뜨거워서 몸이 불편하고 그런데도 복음을 위해 일하는 것보면 내가 동생이라기보다도 참 귀한 하나님의 종이라고 느낄 때가 참 많거든요.

항상 사단이 쉬지않고 일을 합니다. 그러나 사단이 일하는게 아니라 하나님도 같이 일을 합니다. 그래서 복음 일에는 계속해서 사단의 역사가 일어나고 하나님의 역사가 맞물려 일어나는 그런 일들이 계속 일어나기 때문에 동역자 여러분 아마 여러분들이 지금 선교를 하고 있는 곳에서 그곳 현지에 있는 주민들이 여러분을 믿지 못하고 막 오해하고 여러분을 불신하고 여러분을 실망시키는 일들이 많을 겁니다. 여러분 비자를 얻는 일에 어려움이 닥치고 복음을 전해놓으면 엉뚱한 소리를 하고 그런 절망적인 일들이 일어나는데 그건 사탄이 여러분을 절망스럽게 하기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가운데 한가지는 사단만 일하는게 아니라 하나님도 일을 하셔서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을 다 잡아죽이러 올 것같이 여겼는데, 사울은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을 잡으러 온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러 왔잖아요. 구원받으러 왔잖아요.

이런 귀한 역사가 정말 복음 안에 있는 형제자매 여러분들, 그리고 복음 안에 있는 우리 선교사 여러분들 속에 계속 되어질 걸 생각하면 너무 감사합니다. 우리 주님은 사단보다 크십니다. 그래서 주님과 사단과의 씨름 속에 우리가 들어있는데 우리는 보고 구경만 하면 됩니다. 주님이 승리하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이 선교하는 그 각처에서 주님의 승리를 찬양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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