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
야곱의 사랑(편애)을 받음으로 형제들이 시기하여 겨우 목숨만 살아나 애굽으로 팔려가 보디발집에 종노릇하다가 신임을 얻어 총무가 되어 팔자가 좀 피나보다 했더니 보디발 처가 유혹하다가 안되니 도리어 모함하여 감옥에 갖혔다.

내가 요셉같은 경우를 당했다면 하나님이 함께한 삶이라고 생각할까? 저주받았다고 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드라도 되는 일이 없다고 자포자기하며 살아갈 것이다.. 우리는 불치의 병이 낫고 망한 사업이 일어나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한다.

앞의 요셉의 삶이 성경에 기록되어있는 것은 이 때에도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이런 때에도 나와 함께하신 것을 보여주어 나에게 힘주신다.

한창 나이일 때 유혹의 손길이 뻐쳐 오면 요셉처럼 하나님께 득죄할 수 없다고 뿌리칠 수 있을까?
원수도 아닌 형제가 나를 팔아먹었는데 요셉처럼 하나님이 보낸 것이라고 말하며 형제를 용서할 수 있을까?
요셉은 했다. 그런 요셉을 보면 숨이 막힌다. 그래서 요셉을 주 예수의 표상이라 한다.

이런 요셉도 감옥에 갇히니 하나님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억울함을 관원장인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을 본다. 말씀은 그를 도구로 사용하여 요셉을 구한 것이 아니라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기억치 않고 잊었더라."

요셉같은 분도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했는데 우리는 문제가 터지면 그 사람이 그럴줄 몰랐다고 내가 얼마나 잘해 줬는데 하며 상처를 입는 것은 당연하다.
하나님이 구해주는 것을 본다. 이 세상에는 오직 하나님밖에 믿고 의지할 분이 없고 하나님이 하나님의 때에 역사하는 것을 보여준다. 억을한 일을 당했을 때 낙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해 가는지 소망을 갖고 보라고 힘주시는 것을 보여준다.

야곱이 팔을 어긋막겨 얹어 축복하니 요셉이 "아바지 기리 마옵소서."라고 말할 때 요셉은 아버지가 노망났구나라고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요셉같은 분도 못 보는 것을 다 늙고 눈먼 야곱이 영적인 눈으로 보는 멋진 장면을 보라.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여기서 야곱은 세상에서 잘살아 보겠다고 악착같은 노력 수단방법을 다하며 살아가 고난을 당하는 나를 나타낸다. 하나님은 그 고난으로 요셉도 못 보는 영적인 눈을 나같은 자에게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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