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0일 영상교제 말씀
정확하게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면


열왕기하 7장 1절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가 흔히 `나는 믿음이 없어` 하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지요. 믿음이 없다는 그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입니까? 어떤 사람을 가지고 믿음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겁니까?
여러분 나는 자주 이런 생각을 하는데, 시험에 들고 어려움 속에 빠져있는 형제 자매들을 볼 때 저 사람이 자기 중심의 생각을 해서 그렇지, 하나님의 마음을 알면 절대 저렇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참 많이 갖거든요.

탕자가 돼지우리에 있으면서 자기 마음에다 아버지의 상을 그렸습니다. 탕자가 돼지우리에서 자기 아버지의 상을 그렸을 때, 그 아버지는 무서운 아버지였습니다. 가면 "너 이놈 그 많은 재산 어디 갔다 버리고 이제 거지가 되어 돌아왔노? 쓸데없는 놈, 나가라 이놈아." 하면서 내쫓을 그런 두려운 아버지로 생각했기 때문에 탕자가 아버지 앞에 가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결국 그가 뭐라고 생각했느냐 하면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으니까 품꾼의 하나로 보십시오. 예 아버지, 나 품꾼의 하나로 일하고 밥만 먹겠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갔거든요. 성경에 보면 "아직 상거가 먼데 아버지는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탕자가 아버지 집에 돌아와서 느낀 것은 돼지우리에서 자기가 생각했던 아버지하고 직접 만난 아버지는 너무 다른 아버지라는 거지요. 자기 마음에 그렸던 아버지 형상은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꾸짖고 책망하고 내쫓을 아버지로 알았기 때문에 그 아버지 앞에 그냥 품꾼처럼 일해도 좋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막상 가보니까 아버지는 자기 생각하고 전혀 다른 아버지였습니다. "상거가 먼데 달려와 입을 맞추고 목을 끌어안고..." 그 아버지 앞에 나온 뒤에 비로소 탕자가 아버지를 정확하게 알았다는 거지요.

하나님과 우리의 교제, 만남. 요즘 한국 사람들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휴대폰, 하나님하고 그걸로 라도 좀 통화할 수 있으면 내가 "하나님 병 고쳐 줄 거예요, 말 거예요? 하나님 이거 어떻게 할 거예요?"하고 전화를 하고 안 그러겠습니까? 하나님과는 그런 휴대폰으로 통화도 안 되고 대화도 안 되고, 마음의 세계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야 하니까 우리가 아는 하나님하고 실제 하나님하고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겁니다.

내가 다시 말씀드리지만 여러분이 정확하게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면 여러분 가운데 이렇게 살 사람 아무도 없을 거라는 거지요. 다시 말하면 우리는 정말 하나님을 잘 모르고 참된 하나님을 우리 나름대로의, 마치 탕자가 아버지하고 다른 아버지의 상을 마음에 가지고 있던 것처럼, 우리도 실제 하나님과 다른 하나님의 상을 마음에 가지고 있어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갈 때 부담을 느끼고 두려워한다는 거지요.

"목사님, 나는 기도가 잘 안 돼요." 왜 기도가 안 된다는지 아십니까? 생각을 해 보세요. 은행에 몇 억을 저금해 놓고 은행에 통장을 가지고 가서 도장찍고 비밀번호 써서 내면 돈 주는 것 의심 안 하기 때문에 당장 은행에 뛰어가지요. "목사님 나는 은행을 잘 못 가요." 왜 은행에 잘 못 갑니까? 다리가 없어서? 아니지요. 돈을 줄 걸 못 믿으면 은행에 뭐 하러 가요? 딴 방법 찾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다는 거지요. 기도를 왜 못해요? 내가 이 기도하면 하나님이 정확히 들어주신다고 확실히 믿으면 기도밖에 안 할 거예요. 그걸 잘 모르고 있다는 거지요. 쉽게 말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 아마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을 만나서 얼굴과 얼굴을 대하고 서로 대화를 한다면 깜짝 놀랄 것은 `내가 하나님을 잘 못 알고 내 마음에 담을 쌓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를 주저했구나.` 그런 마음을 가질 거예요.

열왕기하가 그걸 강하게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거예요. 1장에서 아하시야가 다락 난간에서 떨어졌을 때 하나님은 고쳐주기를 원했는데, 아하시야 마음에는 `하나님 나를 돕지 않으실 거야.` 생각하니까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을 찾아가고 그러다 죽었지요.
그 다음 3장에서 이스라엘과 유다 왕 여호사밧과 에돔과 더불어 모압을 치러갔다가 물이 떨어졌을 때, 여러분 그는 하나님을 못 믿기 때문에 이스라엘 왕이 뭐라고 했습니까? "슬프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모아 모압의 손에 붙이려 하시는도다." 하나님과 정반대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요. 하나님은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려고 하시는데.

자, 우리가 열왕기하 7장 "내일 이맘때"란 이야기, 너무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인데, 내일 이맘때 사마리아 성은 곡식이 없어서 아이를 삶아먹고 있는 그런 실정인데, 정말 갈 데로 간 망하기 직전 멸망의 성이었는데, 하나님은 그 사마리아 성에 은혜를 베풀고 복을 주고 긍휼을 더하기를 원하신다는 거예요. 그런데 왕은 하나님을 찾지 않는 거예요. `하나님 나를 돕지 않을 거야. 은혜를 베풀지 않을 거야.`

그런 사마리아 성을 향해서 하나님은 또 은혜를 베푸셨어요.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계속해서 하나님을 불신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풀려고 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열왕기 하에서 강하게 느낄 수 있어요.

대부분 사람들은 사단에게 속아서 하나님 앞에 나갈 때마다 자기의 잘못을 생각하고 `나는 이런 일을 했으니까, 이렇게 실수했으니까, 이렇게 연약하니까, 하나님은 돕지 않을 거야. 축복하지 않을 거야. 은혜를 베풀지 않을 거야.` 그런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기를 주저하는데,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는 거지요. 정말 악하고 추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긍휼을 베푸시고 도우시려고 온 마음을 쏟고 계신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때, 다른 아무 조건을 가지고 나가지 말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하나님 앞에 나가기에 충분하고 여러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그것 하나 만으로 기도의 응답을 받을 조건이 충분하다는 겁니다. 그 이상 아무 것 없어도 예수 이름으로 나가는 그것 하나만으로. 사단은 하나님은 안 들으실 것 같고, 뭘 좀 더해야 할 것 같고, 그런 속임을 자꾸 준다는 거죠.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하나님 앞에 담대함을 가지고 나가세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합니다. 은혜를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내일 이 맘때, 멸망당하는 사마리아 성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사마리아 성에 베풀었던 은혜를 하나님은 오늘도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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