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여러분(5)
궁금증을 많이 가지고 계시군요. 아무튼 궁금증을 게시판을
통하여 올려주셔서 감사하구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구원에 대하여 말씀을 드립니다.
구원은 내가 무엇을 하여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그것은 내가 하는 일이지 구원과는 무관한 일이지요.

님께서 말씀하신 `구원을 실천하기 위한 방법...` 말 자체에
모순이라고 생각이 들어집니다.
구원자가 있으면 피구원자가 있지요. 님께서 말씀하신 내가
구원을 실천하기 위한 방법이라면 그 사람은 피구원자가 필요가
없지요. 피구원자가 누구입니까? 예수님 아닙니까?
님께서는 한번도 죄에 빠져보신 적이 없지요. 아니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님께서는 마음에서 죄를 깨달아 보신적이 없으시죠.

분명한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왜 오셨는지도 모르시고 하시는
질문이지요.
우리가 무엇을 해서 구원을 받아야 한다면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오실 필요가 없지요.

예수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세인들을 향하여 회칠한 무덤같다고
말씀하셨지요. 그 밖은 깨끗하지만 안에서는 썩어서 냄새가 나고
온갖 더러운 것이 그 안에 있다고 하셨지요.

로마서 말씀을 읽어보죠. 3장 10~18절 까지요. 배도희 님께서
보시는 눈이 아닌 하나님께서 보시는 인생들을 말씀하시지요.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히 가득하고 그 발은 피 릉리는 데 빠른지아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눈과 배도희님의 보는 시각이 완전히 다르지요?

배도희님께서 생각하시는 자신의 모습과 하나님께서 보시는
배도희님의 모습은 너무나도 다르지요? 그러면 님께서 보시는
것이 옳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보시는 눈이 옳겠습니까?

위의 말씀대로라면 님께서 말씀하신 구원의 실천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질문입니까?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또 분명하게
구원을 잘 모르시는 것이지요.

그리고 사랑이라는 단어를 인간들에게 접목시킨다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진짜 하나님의 사랑을 맛 본 사람들은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이 얼마나 가증하고 더러운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의 실천이라면 지금 살고 계시는 집도 팔아서
어려운 이웃을 도우셔야 하고 나를 위하여 아무것도 준비하시지
마시고 진짜 사랑한 번 해보세요.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을
하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한 번 해보시고 글의 띄워 주세요.
저는 저의 자식마저도 제 몸같이 사랑을 못하는데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저는 진짜 불가능 합니다. 진짜 님께서 사랑을 실천하시려면
입고 계시는 팬티까지도 남들을 위하여 줘보세요. 예수님은 그렇게
하셨어요. 더러운 인생을 위하여 예수님 당신을 위하여 사신 삶은
하나도 없습니다. 운명하시는 그 순간에도 인생을 위하여 대신 벗은
몸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해야 하고
우리가 고통을 당하여야 하는데 그 모든것은 예수님 당신이 다 대신
하셨지요.

구원을 실천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그런 생각만 가지고 있지말고 당신을
위하여 살고 있는 삶을 진짜 내 이웃을 위하여 한 번 희생한번 해보세요.
그게 가능한지... 그게 가능하다면 저 천주교로 가겠습니다.


요한복은 6장 40절 말씀 찾아서 읽어보세요.
진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진짜 어려운 이웃을 도우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인지, 남을 위하여 봉사하고 희생을 하는 것이 하나님 뜻인지
말씀을 통하여 정확히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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