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4일 영상교제 말씀
자신의 마음을 믿지 마세요


열왕기상 2장 13절 ∼ 18절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솔로몬의 모친 밧세바에게 나아온지라. 밧세바가 이르되 네가 화평한 목적으로 왔느뇨? 대답하되 화평한 목적이니이다. 또 가로되 내가 말씀할 일이 있나이다, 밧세바가 가로되 말하라. 저가 가로되 당신도 아시는 바여니와 이 왕위는 내 것이었고 온 이스라엘은 다 얼굴을 내게로 향하여 왕을 삼으려 하였는데, 그 왕위가 돌이켜 내 아우의 것이 되었음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니이다. 이제 내가 한 가지 소원을 당신에게 구하오니 내 얼굴을 괄시하지 마옵소서. 밧세바가 가로되 말하라. 가로되 청컨대 솔로몬 왕에게 말씀하여 저로 수넴 여자 아비삭을 내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소서. 왕이 당신의 얼굴을 괄시치 아니하리이다. 밧세바가 가로되 좋다. 내가 너를 위하여 왕께 말하리라."


성경에 미련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미련한 게 뭐가 미련이냐 하면, 상대방의 마음을 전혀 모르면서 `내 생각과 같겠지` 하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하다가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이 성경에는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오늘 이 아도니야도 역시 그랬습니다만 사울 왕이 죽은 뒤에 아말렉 소년이 있었는데, 그 소년이 무슨 생각을 했느냐 하면,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했으니까 사울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다윗이 굉장히 기뻐할 거라는 생각을 아말렉 소년이 가졌던 겁니다.

그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닌데, 다윗 왕의 마음을 전혀 알아보지 아니하고 `내 마음과 같겠거니` 하고는 사울이 죽은 소식을 전하러 다윗에게 뛰어갔습니다. 가면서 그 마음이 변해서 뭐라고 했느냐하면 `기왕에 내가 사울을 죽였다고 하자. 그럼 다윗이 기뻐서 상을 주지 않겠느냐?` 그러면서 뛰어갔어요. 그래서 죽은 사울의 몸에서 고리를 빼 가지고 다윗 왕에게 나가서 "다윗, 당신의 원수 사울이 죽었습니다." "어떻게 죽었느냐"고, "내가 죽였다"고.

이 아말렉 소년은 전혀 다윗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틀림없이 가면 상을 주고 굉장히 기뻐할 줄 알고 뛰어갔지만 다윗이 뭐라고 했습니까? "네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기름 부은 자를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래서 그 소년이 죽임을 당하는 이야기가 나오지요.

오늘 읽은 이 아도니야 이야기도 아도니야가 자기가 왕이 되려고 하다가 솔로몬이 왕이 되었는데, 솔로몬이 아도니야를 불러서 "네가 선한 사람이 된다면 머리카락 하나도 상치 않게 한다." 그러면서 돌려보냈습니다.
그런데 아도니야가 수넴 여자 아비삭을 취하여 아내를 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만일에 이런 이야기를 하면 솔로몬 왕이 어떻게 생각을 할지 그건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거지요. 그냥 자기 생각대로 그러면 솔로몬이 기뻐서 아비삭을 아내로 줄 것 같은 자기 생각을 가지고 솔로몬 왕의 생각을 계산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사역을 하면서 사단이 우리 형제 자매들과 동역자 사이에도 전혀 다른 생각을 넣어줄 때가 많이 있습니다. 동역자들이 자기 생각이 그러면 이게 진짜 옆에 있는 다른 동역자도 같은지 확인해 보지도 않고 미련하게 `으레 저분들도 그렇게 생각하겠거니` 하고 마음에 단정을 하고 사는 사람이 많다는 거지요. 그게 이제 아도니야나 아말렉 소년처럼 미련한 짓을 행하고 있다는 거지요.

만일에 옆에 있는 김 목사님하고 나하고 같음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어느 날 지나가다가 우리 둘이는 다 육신의 요구를 받고 있기 때문에, 성령의 인도가 없을 때, 우리 마음은 육신적으로 기울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늘 같은 마음을 가졌겠거니 하고 내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 김 목사님을 대한다면 그건 잘 못되었다는 거지요.

그래서 마음을 조율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거지요. 그래서 같이 교제를 하고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마음이 조율되고 나면 서로 교제를 해야하는데, 대부분 시험에 드는 사람들이 왜 시험에 드느냐 하면, `아 저 사람 으레 저렇겠거니`하고 생각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사역을 하는 형제 자매들이 때때로 시험에 들 때가 있어요. 때로 사역을 그만두고 싶다는 이야기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 해보면 전혀 내가 생각했던 것하고 다른 엉뚱한 생각을 하고는 `목사님이 그렇겠거니, 저 형제가 그렇겠거니` 그렇게 어리석고 미련하게 자기 생각을 믿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고 살면서 내가 확실하다고 믿었던 일들이 주님 앞에 나와보니까 틀린 일들이 참 많다는 거지요. 므비보셋 같은 경우에 자기가 다윗 앞에 나가면 꼭 죽임을 당한다고 확실히 믿고 있었는데, 그가 다윗 왕 앞에 나왔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윗이 그를 죽인 것이 아니라 복을 주고 왕자의 대접을 해주는, 요나단을 인하여 은혜를 베푸는 모양을 보았다는 거지요. 전혀 다른 세계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그 생각들이 여러분이 볼 때 옳을는지 모르지만 내 생각 같이 다른 사람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겠거니, 다른 사람들이 나를 오해하겠거니, 그런 생각은 진짜 위험한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들을 마음에 가지고 있음으로 말미암아 사단이 우리 속에 서로 사이에 마음의 생각의 문을 막아놓을 때가 참 많은데 중요한 건 하나님 앞에 나가서.
근래에 제가 아침마다 식사를 마치고 여기에 머물러 있는 선교사들과 아침에 말씀 교제를 하고 서로 교제를 하는데 열왕기 상에 있는 말씀을 계속 교제를 하면서 하나님 나에게나 우리 선교사들에게 참 많이 복을 주셨는데, 그 가운데 한 가지가 우리 생각은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제를 하면서 주의 말씀을 얻고 또 주의 말씀을 얻어서 마음을 교제할 때 흐르는 거지, 그냥 마음을 열지 아니하고 내 생각이 옳다고 다 이렇겠거니, 그건 진짜 어리석고 무지하다는 거죠.

제가 신앙 생활을 해도 늘 같은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주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내 마음이 달라지고 생각하는 게 달라지는 걸 여러 번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시험에 들 때 주님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가지면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사단의 이끌림을 받으면 또 여러분을 그런 속으로 사단이 계속 이끌어가고 있다는 거지요. 그럴 때 모든 사람이 그렇게 느낀다는 겁니다.

얼마 전에 어떤 분이 저한테 인터넷에 글을 올렸습니다. "우리 교회 사역자들이 얼마나 잘못 되었는지 아느냐?" 그런 내용의 글이었습니다. 목사님들에게 잘 보이려고 아부를 하고 또 목사님 앞에 공로룰 세우려고 하는 그런 걸 보았다고 하더라구요. 제가 해답을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다는 그렇지 않다. 우리 교회 사역자들 가운데 육신적인 사역자가 있다. 많다. 그러나 신령한 사역자들도 참 많다."
그 말을 했어요. 왜?

아브라함이 창세기 22장에 자기 아들 이삭을 하나님의 제단에 바치더라구요. 23장에 들어가서 사라가 죽으니까 거기 빠져서 슬퍼하고 전혀 그 속에 하나님이 없는 23장의 모양을 발견할 수가 있어요. 사람들은 변하지요. 그런 사람들이 변화가 되어서 점점 달라지듯이 우리교회 동역자들은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2001년 들어서 참 많은 우리 전도자들이 변화를 입었습니다. "우리는 달라지고 있다"고.

물론 우리 가운데 믿음이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건 자기 생각만 믿고 그래서 시험 들고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런 것만 보이고 또 신령하고 믿음을 가진 사람은 또 다르게 보이는 거지요.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시험 들어 있으면서 다른 형제 자매들이나 우리 사역자를 볼 때 다 그런 것처럼 보이고 믿음이 충만하고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거하는 사람들은 사역자들이 다 충만한 줄로 느끼기 쉽지요. 시험 드는 사람들은 그렇게 시험이 드는 거예요.

우리가 마음을 서로 비추어 봐야 합니다. 형제 자매들 속에 `저 형제가 나를 싫어할 거야, 미워할 거야.` 그런 마음을 사단은 항상 집어넣는데, 정말 우리들 속에 하나님의 크고 귀한 역사가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도록 성령이 두루 행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사단은 어두운 한 쪽 부분을 우리 마음에 넣어줘서 다르게 생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아말렉 소년이 그랬듯이 아도니야가 솔로몬 왕의 마음을 전혀 모르면서 `내가 수넴 여자 아비삭을 구하면 줄 거야.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를 통해서 가면 줄 거야` 그렇게 생각했는데, 솔로몬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네가 이 말을 하였으니 아도니야는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 날 아도니야는 죽었습니다. 왜? 왕의 마음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자신의 마음을 믿지 마세요. 주님의 확실한 말씀을 믿으세요. 많은 사람이 자기 생각을 믿다가 비뚠 길로 가고 어려움 속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주의 말씀을 믿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면서 오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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