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7일 영상교제 말씀
권영 사모를 보내면서


마태복음 11장 16절 ∼ 17절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오늘 우리는 권영 사모를 보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내 마음에 찾아왔었습니다. 지금 저희들 기쁜소식선교회 안에 사역을 하고 있는 사역자들이 다 한결같지는 않기 때문에, 주를 믿는 믿음으로 서 있는 분도 있지만 또 육신적인 곳에 젖어서 주를 믿는 믿음보다도 인위적인 방법으로 일을 하려고 하고 그런 부분들이 있는 분들도 사실 있다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가 시험에 들면 사역자 전부가 시험 든 사람으로 보이고, 자기가 충만하면 사역자가 다 충만한 것처럼 그렇게 보기가 쉬운데, 우리 선교회 소망은, 제가 누구누구라고 꼭 집어 이야기 할 수 없지만, 정말 세상의 모든 걸 다 잊어버리고 복음만을 위해서 어려운 가운데서 복음을 섬기고 주님과 아주 가까이 지내는 그런 동역자들이 참 많다는 겁니다.
그리고 어제까지만 해도 육신적인 방법으로 자기가 무얼 하려고 애쓰던 그런 사람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변화를 입어서 달라지는 그런 일들이 우리들 속에 속속히 일어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권영 사모가 아프리카에 가서 일하는 동안에 늘 자기 육신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불평하고, 원망하고, 한국에 돌아가야겠다는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번은 정글에 가서 복음을 전하면서 정글에 있는 어떤 부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 코코넛 나무는 내 것, 저건 남편 것, 저 바나나 나무는 내 것, 저 닭은 내 것` 하면서 자기 것을 챙기면서 남편과 자기 사이에 담을 쌓아놓고 사는 걸 보면서 권영 사모의 마음에 참 어리석게 보였다고 하더라고요.

`저 코코넛 저거 얼마 한다고, 바나나 저거 얼마 한다고, 닭 얼마 한다고, 그걸 남편과 같이 나누면 남편을 얻을텐데, 남편을 잃고 저러느냐` 그걸 생각하다가 갑자기 성령이 자기의 모습을 비추어 줬는데, 자기가 하잘 것 없는 자기를 세우려고 주님과 담을 쌓아놓고 살아온 자기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권영 사모가 자기를 벗어나면서 금년 2월 8일날 베넹에 처음으로 김광운 선교사와 둘이 파송이 되었는데 베넹은 불란서 어를 쓰는 나라입니다. 그 사모가 불란서 어를 전혀 몰랐지요. 영어를 조금 하는 정도인데, 책가방에다가 불란서 어로 된 성경, 불란서 어 사전, 또 영어를 하는 사람을 만나면 영어로 된 성경, 영어 사전, 그걸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정말 이번에 베넹의 권영 사모가 가고 난 뒤에 그 주위 사모들이 가보니까 그 속에서 인간적인 것을 볼게 아무 것도 없고 전부 신령한 영적인 삶을 살았다는 그 이야기가 저 자신도 참 부끄럽게 했고 우리 사역자들도 참 많이 부끄럽게 했습니다.

우리 선교회의 사역자가 다 동일하지는 않습니다만, 참 어떤 사역자들은 정말 사도 바울 앞에 내세워도 부끄러움이 없을 정도로 그렇게 능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마음을 다 해서 순수하게 주위 사람들을 보지 않고 주님과 단둘이 깊이 있게 교제하고 주를 섬기는 그런 선교사들, 사역자들, 사모들이 참 많습니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닙니다. 몇몇 사람들은 또 자기 자신을 보고 인위적으로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고 그런 사역자도 있습니다만, 그렇게 달라지는 모습들을 많이 봅니다.

오늘 읽은 이 성경 말씀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 이야기는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주의 마음을 전하려고 간절히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는데, 그 주님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 생각 속에 머물러 있는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신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에 많은 사람이 유황불 못에 죽었습니다. 왜 그들이 죽었습니까? 죄를 지어서? 간음을 해서?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롯이 `이 성이 유황불로 멸망하니까 나가자`고 그들은 롯의 마음을 받는 게 아니고 그 말을 듣고 자기가 판단했어요. `저 말은 농담이다. 저 말은 사실이 아닐 거야.` 그래서 그들은 유황불 못에 죽음을 당했습니다.

노아 홍수 때도 역시 그러했다는 거지요. 홍수가 닥치기 전에 하나님이 이 세상을 물로 심판한다는 그 말씀을 하셨습니다. 노아는 그 말씀을 듣고 그 말씀 안에 있는 그 마음을 받았기 때문에 노아 마음에는 이미 홍수가 왔다는 거예요. 그러니 그는 방주를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그 이야기를 들어도 그 마음을 마음에 받아들이지를 않았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하신 주님의 마음이 아니라 자기 마음으로 그 이야기를 판단해서 `뭐 비 좀 오다 말겠지. 이건 사실이 아닐 거야` 그런 식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아니하므로 멸망을 당한 거지요.

우리 동역자들도 주를 섬기면서 우리 주님의 마음이 있고 내 마음이 있는데, 주의 말씀을 내가 받아도 내 마음으로 요리를 해서 내 마음에 맞는 것은 받아들이고 맞지 않는 건 거절하고 그러면 주님이 하신 그 말씀을 내 마음에 받아들일만한 조건이 안 된 사람은 자기 마음에 드는 이야기만 받아들이기 때문에, 주님이 안타깝게 슬퍼해도 가슴을 칠 수 있는 마음이 그들 속에 없고, 기쁨을 전하려고 피리를 불어도 같이 춤을 출 수 있는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사역자들이 복음을 위해 산다고 하지만 정말 자기 생각 속에 빠져있는 사람은 하나같이 이 마태복음 11장에 말씀하신 대로 정말 자기 생각을 가지고 주의 말씀을 듣고 자기가 판단하고 자기가 결정해서 자기가 요리하는 사람들은 말씀이 그 안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다는 거지요.

권영 사모는 어느 날 정말 자기가 어리석은 사실을 마음에 깊이 깨달았습니다. 자기가 너무 어리석고 미련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자기 생각에서 한번 벗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의 성령이 권영 사모의 마음 속에 일을 했습니다. 전에는 자기 주장이, 자기 생각이 일을 했는데, 하나님의 성령이 그 마음에 일하면서 그가 너무 능력 있고 힘있게 쓰임을 받는 하나님의 종으로 살았습니다.

그 기간은 너무 짧았습니다. 1년 남짓한 기간이지만 그 1년 동안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정말 천사와 같았고 너무 거룩하고 너무 아름답고 너무 능력 있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나는 권영 사모를 보내면서 권영 사모가 걸어간, 정말 자기의 어리석음을 발견하고 자기의 무익함을 발견하고 자기에게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에게 잡혀서 산 그 삶을 우리 동역자 모두가 체험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서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아니하고 애곡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는다`고 하는 이런 마음을 닫은 사람이 아니라 주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서 주의 마음으로 살 때, 여러분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힘있게 일어나고 권영 사모가 가신 그 아름다운 삶이 여러분 속에 있을 줄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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