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7년 오늘(10/31)있었던 일:마틴 루터, 종교개혁...
1517년 오늘(10/31) 마틴 루터, 종교개혁 95개 조항의 반박문 발표가 있었습니다.
잠실학생체육관의 성경 세미나는 마틴루터의 종교개혁을 다시금 생각나게 하는 집회임을 알 수 있습니다.

1517년 10월31일 독일 비텐베르크의 만인성자교회 정문 앞에서 34세의 한 젊은 성직자가 비장한 얼굴로 많은 군중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교회의 면죄부 남발을 규탄하는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발표했다. 독일의 종교개혁가이자 개신교 탄생의 문을 연 마틴 루터(1483∼1546년). 그는 서른네살의 젊은 나이에 하나님의 권위보다는 교황의 권위를 절대권력으로 삼았던 가톨릭 교회에, 그리고 우매한 민중들에게 면죄부를 팔아 교황청을 짓는 교회의 부패에 그렇게 맞섰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행동이었다.
중세 가톨릭교회는14세기의 교회분열로 인하여 보편적 권위를 잃고 세속적 영화와 권세만을 추구했다. 가톨릭 교회는 구원으로 이르는 길은 성사(聖事)에 있으며, 특히 회개의 성사는 인간을 속죄로 인도하는 출발점으로 보고 있었다. 선행으로 얻어지는 속죄를 위해서는 면죄부(免罪符)를 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1515년 교황 레오 10세는 로마의 성베드로성당 건설을 위하여 면죄를 고시하고, 독일에서 면죄부의 판매를 허락했다. 면죄부는 “상자 속으로 던져 넣은 돈이 짤랑하고 소리를 내는 순간 구원을 받는다”고 선전되어 마구 팔렸다.
이렇게 판매되기 시작한 면죄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루터의 `95개 조항의 반박문’은 독일을 넘어 유럽 전체로 파급되는 대운동으로 발전했다. 많은 역사가들이 이 사건을 근대의 신호탄으로 삼는다. 한국 개신교도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종교개혁은 루터의 ‘하나님 뜻의 발견’에서 비롯된 그리스도교의 혁신운동이었으나,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도 영향을 크게 미쳐 근대 세계와 근대인 탄생에 기여했다. 종교개혁 후에는 계몽주의(啓蒙主義)가 일어나, 언뜻 비종교적 합리주의가 근대사회의 특징이 된 것 같이 보였지만, 근대인을 ‘마술’에서 진정으로 해방시킨 것은 단순히 자연과학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합리적 ·과학적 태도를 표출한 종교개혁의 정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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