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안에 피어난 소망*********(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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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밑의 봉선화


1주일쯤 전에 우리들 생활하는 방안으로 작은 화분이

창틀에 놓여지게 되었다.

화분이라고는 했지만 1.5리터 P.T병을 반으로 잘라서

흙을 담고는 그 속에 빛이 바랜 볼품 없는 녹색의 풀

한 포기가 고작이었다.

가뜩이나 복잡한 좁은 방에서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 것이

못내 짜증이 났지만 같은 방사람의 지극 정성이 담겨져

있는 것 같아 내색은커녕 무어라 한마디 말도 못한 채

창틀 한 쪽을 내어 줄 수밖에 없었다.(다른 물건을 치우면서 까지)

예쁘고 화려한 장미나 고귀하고 경건(?)한 난초 같았다면

마음이 조금은 동했을 텐데 진짜 마른 땅에서 먼지만

뒤집어쓰고 나온 양 풍채도 모양도 없는 잡초 같은 정말

보기에도 흠모할만한 아름다움이 전혀 없었다.(사 53:2)

아예 풀이름조차 물어보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4-5일쯤 한 이불(?)속에서 뒹굴다보니 미운 정

고운 정이 조금씩 들어져 갔다.

사실 햇빛만 비추이고 물만 조금씩 줘도 쑥쑥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게 신기하기도 했고,

원래부터 꽃이나 나무에는 별 관심도 없는 나였지만

속으로 "야~ 이것 봐라. 이 꽤제제한 것이 생명을 품고

있기는 있구나" 하는 사랑반, 또 자라면 과연

무엇이 될꼬하는 호기심 반으로 내 관심을 조금씩 증폭시켰다.

한 이틀이나 지났을까?

일을 마치고 방에 들어오니 하루 물을 건너 뛴 덕분인지

풀잎들이 햇볕에 시들어 쳐져서는 할미꽃 마냥 고개를 전부

푹 숙이고 헥헥 거리고 있었다.

"야. 이거 큰일이다." 이렇게 쉽게 죽어버리면 너무나 안될

것 같은 애절한 마음으로 물을 조금씩 흩뿌려주고는 가만히

엄숙한(?) 자세로 사태(?)를 지켜보았다.

30분이나 지났을까?

신기하게도 풀잎들이 하나 줄씩 고개를 쳐들어서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바람결에 몸을 살랑살랑 나부끼는 것이었다.

"살아났구나" 하는 안도의 숨을 쉰 후부터는 그 풀은 이미

한낱 잡초가 아닌 인생의 동반자요 또 거듭난 우리 인생으로

새롭게 각인되어졌다.

육신인 풀이 보이고 하나님 되신 햇빛이 보아지고, 생수의

근원이신 예수님이 보여지는 것이었다.

풀이 햇빛만으로는 살수가 없고 또 물만 있어도

자라날 수 없듯이 풀과 햇빛의 3박자 갖추어져야만

삶을 이룰 수 있는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도 이런

것이구나"하고 내게 다시금 일깨워 주는 듯 했다.

생수를 머금지 않고는 풀 나무가 햇볕에 몸을 내어 맡길 수

없듯이 예수님의 보혈을 힘입지 않고는 절대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다.

죄있는 몸으로 인해 듣지도 보아주지도 않을뿐더러

결국은 멸망이요 사망이라고 이미 약속으로 인을 치셨기

때문이다.

작고 볼품 없는 이 한 포기의 풀로 말미암아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기다 보니 문득 구원받기 전과 후의 삶이

연결 지어 스쳐 지난다.

나도 죄사함을 받지 못했다면 아직도 수고의 고통에서

양심의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개를 떨어뜨리고는

감히 하늘을 볼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땅만 헤매면서

종일토록 수고하여야만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 3:17)는

저주를 아직도 열심히 행하고 있지나 않았을지 심히

걱정이 된다.

새로이 강인하게 커가는 연약한 한 초기의 풀을 우러러

보면서 육신의 끝없는 작은 욕심들을 뒤로하고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은 채, 오직 생수와 햇빛만으로 세상을 살아

나갈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는 참다운 행복이지 않을까

하는 은혜스러운 마음을 가져본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보니 놀랍게도 작은 꽃망울을 머금고는

터질 듯 말듯하며 앙증맞게 몽우리져 있었다.

"아니 이게 웬일?" 하며 한바탕 요란을 떨어대고는

"이 잡초 같은 인생도 꽃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구나" 하는

애절한 마음이 용솟음 쳤다.

진짜로 정말 꽃을 피우게 될 줄은 상상조차 못했는데

한낱 들풀 같은 존재도 열매를 맺고 꽃을 피우는 걸 보니

나도 주님으로 말미암아 결실을 맺는 날이 곧 오겠구나

하는 탐스런 소망이 여물어져 갔다.

참, 오늘이야 물어서 알았지만 이 야생풀 같던 잡초의

이름이 봉선화였다. 전에 어디에 쓰겠느냐며

면박을 주었었는데 그래도 손톱을 빨갛게 물들이는

재주가 있는 물건(?)이었다.

움직이지도 않고 다소곳하게 자라는 담장밑 봉선화의

인생여정처럼, 이제까지 나 스스로 할 수 있다는, 내가

하려는 사람을 버리고, 교회 안에 가만히만 자리를 잡고

있어도 마르지 않는 생수를 공급하여 주시고 바라보기만

해도 빛을 내리셔서 열매를 맺고 꽃을 피우도록 주님이

하여 주시는 삶으로 나를 인도하여 주시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늦어도 내일이나 모래쯤이면

꽃망울이 터지고 깨뜨려져서

빠알간 봉선화가 피게 되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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