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리오 형제님 간증 - 인도를 향해서...
영문홈 게시판 No. 353 에 실린, 노리오 형제님 간증을 번역하여 올립니다.


◀ 인도를 향해서.. ▶



김성훈 목사님께서 단상에서, 인도 봄베이(Bombay) 김수연 선교사님으로부터 온 편지를
읽어주셨던 때는, 한밭중앙교회에서 가졌던 어느 일요일 오전 예배시간이었다.
선교사님께서는 인도의 오리사(Orissa)와 하이드라바드(Hyderabad)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복음의 역사에 관한 내용을 보내오셨다. 또한 편지 마지막 부분에, 김수연 선교사님께서는 영어를 할 수 있는 지체가 인도에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그 예배시간 중에, 테리와 내가 유일하게 미국인으로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목사님께서 편지를 읽으셨을 때 무척이나 놀랐었다. 내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을 때, 형제 자매님들이 우리를 주목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 난 영어를 할 수 있었고, 복음을 전하기에 적합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나는 가고 싶지만 교회에서 나를 보내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냥 단념하기로 했다.


3개월이 지난 후에, 나는 인도 봄베이(Bombay)로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매우 흥분했고, 한편으로는 긴장이 되었다. 게다가 인도에는 나 혼자 가게 되고, 내가 인도에 도착하자마자 김수연 선교사님 가족은 약 한달간 한국에 나오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마음에서 “오 하나님, 내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인도에 대해서 들은 것이라고는 중국보다 10배정도 더러우면서, 카레를 주로 먹는다는 것 뿐이었다. 하나님께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큰 부담을 주셨기 때문에, 난 하나님을 구하고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비행기 안에서 묵상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었는데, 히말라야의 거대한 산맥을 바라 보면서,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었다. 겨자씨만한 믿음도 이 산들을 움직일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내 삶을 지키시는 것은 얼마나 쉽겠는가..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봄베이에 도착한 그날 밤, 난 그곳이 얼마나 더러운 지 알 수 있었다. 모기들은 끊임없이 내 주위에서 나를 따라다녔고, 이 모기들이 말라리야를 전염시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되었다. 봄베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크고 발전된 도시였다. 김선교사님께서 공항에 마중나오셔서, 함께 1940년대에 만들어진 것 처럼 보이는 차를 타고 어느 오래되고 더러운 건물로 갔는데, 그 곳이 바로 우리 교회였다. 도착하자 내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면서, 비로소 인도에 왔다는 사실에 흥분되었다.
다음 날 아침, 김선교사님 가족은 한국으로 향했고, 교회에는 두명의 선교학생(수지(Suijth) 와 수라이(Suraj))과 나만 남게 되었다. 선교학교를 인도하고, 매일 말씀을 전해야 하는 일들 앞에 너무나 큰 부담을 느꼈지만,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위해서 나를 돕고 계심을 또한 볼 수 있었다. 하나님은 나의 연약함을 알고 계셨고, 그것과 상관없이 나를 인도로 보내셨다. 때문에, 나의 모든 연약함을 채우고, 보충하는 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책임이었다. 내가 스스로 나를 볼 때, 교회를 인도하기에 나는 너무나 부족하고 어린 사람이었다. 난 이 사실때문에, 여러 차례 고통스러워했었다.
예레미야 역시, 스스로 생각할 때, 열방 만국위에 세움을 입고, 만국을 파멸하고 또 건설하기에 그는 너무나 어린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예레미야 1장 6절)

주님께서는 7절 말씀에서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주님은 예레미야가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단지 주님께서 그에게 주신 말씀만을 대언하기 원하신 것이다.
동일하게, 하나님께서는 이미 나의 모든 연약함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내가 더 이상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 염려하기를 원치 않으셨다.
주님이 내게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셨다.
“노리오야.. 이제 나는 이런 형편입니다. 나는 저런 모습이예요... 이렇게 말하지 말아라..
단지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고 한 번 말해봐라..”
이 말씀은 내게 큰 힘을 주었다.
우리는 우리에게 새로운 힘을 주신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오리사(Orissa)와 하이드라바드(Hyderabad)로 복음을 전하러 갈 수 있었다.
여호수아 1장 9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우리는 오직 주님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해서, 우리처럼 보잘것없는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주님과 상관없이 내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것이 참 많았었다. 형편이 매우 좋았었고, 내게 닥쳐진 어려움도 거의 없는 가운데 있었다. 내 마음은 평안한 가운데 있었지만, 그것은 주님으로 말미암은 평안이 아니었다.
인도에 도착한 이후로, 이런 모든 평안은 날아가 버리고, 공허함만이 내 마음에 남게 되었다. 때때로 주님을 찾을 수 밖에 없는 그 순간에 외로움을 느끼기도 했다. 만약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자마자, 바로 그 앞에 붉은 카펫이 그 앞에 펼쳐지면서 그를 예루살렘 궁으로 인도했다면, 그는 바로 왕이 될 수는 있었겠지만, 그 마음에 하나님이 남아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름부음을 받은 이후, 다윗의 삶은 너무나 어려웠다. 그가 만난 형편들은 왕이 되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정반대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은 다윗으로 하여금 형편안에서 가졌던 소망을 끊게하고, 자신의 눈으로 보는 것에 대해 불신하게 하는 부분에 꼭 필요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오직 주에게만 소망을 가지기를 바라셨다.
결국 다윗이 마침내 왕위에 앉게 되었을 때, 그는 그 나라 뿐 아니라 주님을 마음에 얻을 수 있었다.
동일하게 주님께서는 내게 좋은 형편아 아닌, 주님 당신을 내게 허락하기 원하셨다.
창세기 15장 1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라함의 상급은 그 아들이 아니고, 하나님 당신이셨다. 내가 주님으로부터 오는 평안을 맛보았을 때, 난 감사로 충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나의 원함에 따라 내 삶을 살았다면, 난 주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교회와 종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나를 하나님을 구할 수밖에 없는 위치로 이끌고 계신다.
사도 바울은 사람들에게 매를 맞고, 사람들이 던지는 돌에 맞고, 감옥에 들어가는 이런 삶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 모든 일들을 통해 그는 주님을 얻었고, 이 세상에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평화를 마음에 얻을 수 있었다.
만약 우리들이 어려운 문제 속에서도 평화를 얻을 수 있다면, 무엇이 우리의 심령을 어렵게 할 수 있겠는가? 우리 마음에 주님으로부터 오는 그 평화만이 진정한 평안과 안식이 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된 길로 나를 이끄심을 볼 때,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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