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발견하면
왜?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씻어주셔야만 했는가?
이 세상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많지만 정말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 아버지와 사귐 속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좇으며 그 뜻 속에 담겨진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가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너무도 적은 것 같습니다.

눅15:11~32 [되찾은 아들의 비유]
주님은 이 말씀으로 우리 인생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도 잘 나타내 주셨습니다.

눅15:21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눅15:22~24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아들의 마음과 아버지의 마음에 차이점이 있는데 아들의 마음은 아들의 위치가 아닌 죄인의 위치에 있는데 아버지의 마음속에는 둘째 아들을 죄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랑스러운 아들로 보는 차이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당신의 마음을 모르는 아들에게 먼저 좋은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워주시며 당신의 마음을 나타내셨고 또한 "내 아들은...,"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의 마음을 정확하게 나타내셨습니다.

이후에 둘째 아들이 어떤 마음의 위치에서 살아가는 것이 옳은 것입니까?
여전히 죄인의 위치에 있는 것이 맞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에 여전히 죄인의 위치에 있다면 그것은 정말로 자신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정말 그 마음에 아버지의 사랑을 안다면 아버지께서 보시는 위치인 아들의 위치에서 아버지를 사랑으로 섬기며 마음을 나누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부모님께 효도를 하고 싶은 양반이 있었는데 그 양반은 열심히 잘할려고 하여도 부모님께 효도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옆 마을에 소문난 효자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단숨에 달려가서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떻게 하기에 효자로 소문이 났는지 궁금하여 숨어서 살펴보았습니다. 마침 아들이 돌아왔는데 그 아들은 돌아오자 마루에 걸터앉았고 나이 많으신 노모는 세수 대야에 물과 수건을 가지고 와서 그 아들의 발을 깨끗하게 씻어 주었습니다. 그 후에 아들은 마루에서 낮잠을 잤고 그 노모는 열심히 이것 저것을 해서 밥도 짓고 청소도 하고 ..., 숨어서 지켜보던 양반이 화가 났습니다. `아니 저런 불효 막심한 놈이 다 있나 저는 아무 것도 안하고 나이 많은 노모가 힘든 일을 다 하게 하다니 어떻게 저놈이 효자가 되었나?` 양반을 그 집에 들어갔습니다.
"네 이놈 네가 효자라 소문이 나서 내가 먼 발치에 와서 지켜보니 네 놈이 효자가 아니라 세상에 둘도 없는 나쁜 놈이구나. 네 놈을 당장 요절을 내리라" 양반을 무척 화가 났습니다.
그 때 노모는 그 양반의 발 아래에 업드려 절하며 "어르신 오해가 있습니다. 고정하시고 제 말을 좀 들어보십시오. 저 아이가 저렇게 하는 것은 저 아이의 뜻이 아니라 제 뜻입니다. 밖에서 일하고 들어와서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저는 이렇게 우리 아들에게 무엇인가 해 줄때가 가장 즐겁고 행복하답니다." 어느새 노모 옆에 엎드려 있던 아들이 말하길 "어르신 제가 무엇인가 우리 노모께 해들릴 것은 없으나 제 노모께서 이렇게 하심을 너무 기뻐하셔서 그 노모의 뜻대로 해드린 겁니다. 제 노모께서 즐거워하시면 정말 저도 행복하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양반을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부모님께 효도한 것은 효도가 아니라 오히려 부모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드렸구나! 정말 이 청년이 효자구나!` 양반은 그 길로 집으로 돌아가서 정말 부모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효도하며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정동섭 교수님께서는 "나는 용서받은 죄인이다."라고 글을 올리셨는데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아신다면 절대로 용서받은 죄인이라는 말씀을 하실 수가 없을 것입니다.

교수님께서 오해하시는 부분이 많으신 것 같은데 저희 홈페이지는 항상 열려 있습니다. 언제나 들어오셔서 살펴보시면 그 오해가 풀리시고 또한 저희 교회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함께 하심을 발견하시게 될줄 믿습니다.

우리 마음에 부족하게나마 이런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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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섭님이 작성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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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구원파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대학시절에 구원파 교주 유병언 씨에 의해 포섭되어 8년간 구원파에 충성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두 번 구원을 받았다. 한 번은 구원파에서 거짓된 구원을 받았고 또 한번은 정통 교회인 사랑의 교회에서 참구원을 받았다. 그후 침신 대학원에 진학하여 구원파가 왜 이단인가를 밝히는 논문을 쓴 적이 있다. 이 논문 내용과 구원파 비판 강연 때문에 구원파 교주 유병언 씨는 나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이 일로 나는 3년 반 동안 구원파에 맞서 지루한 법적 투쟁을 벌여오다가 지난 3월 9일, 20차 재판에서 드디어 무죄선고를 받았다. 판사는 내가 교주 개인에 대해 개인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단의 위험성을 세상에 알리려는 목적으로 구원파를 비방했음을 인정하고 무죄를 선고하였다. 지난 호에는 이단이 "어떤 특정 지도자의 그릇된 가르침을 중심으로 형성된 종교집단"임을 설명했다. 여기서는 구원파의 지도자들과 그들의 가르침에 맞추어 그들의 이단성을 밝히기로 한다. 구원파의 세 분파는 모두 침례교 간판을 사용한다. 침례교라고 해서 다 정통이 아니다. 정통 침례교는 기독교 한국 침례회라는 교단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단 구원파도 침례회라는 교단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구원파는 기독교 복음 침례회 또는 대한 예수교 침례회라는 간판을 사용하고 있다. 구원파는 원래 장로교에서 파생된 집단으로 3계파로 나누어진다. 오대양 사건을 일으킨 복음 침례회는 유병언 씨와 권신찬 씨에 의해 운영되고 있으며 서울 삼각지에 본부를 두고 있다. 대한 예수교 침례회는 권신찬 씨의 제자 이복칠 씨(이요한)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데 서울 방배동에 본부를 두고 있다. 그는 권신찬 씨로부터 목사 안수를 받았지만 헌금을 유 사장의 사업에 투자하는 것에 반대하다가 갈라져 나온 무리를 이끌고 있다. 이들은 서울과 광주를 주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또 하나의 구원파는 자칭 목사 박옥수 씨가 이끌고 있는 대한 예수교 침례회인데, 이들은 `기쁜 소식 선교회`라는 그럴듯한 간판을 내걸고 있다. `거듭남, 죄사함의 비밀`이라는 포스터나 유인물을 보면 학생들은 그것이 박옥수 계통의 구원파임을 알고 경계해야 할 것이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측과 고신측), 기독교 성결교회를 비롯하여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미 여러 해 전에 이들을 모두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시켜 진리를 부패시키고 하나님의 교회를 분열로 이끄는 이단`으로 규정하였다. 구원파의 가르침은 초대교회에 나타났던 이단 영지주의 사상과 일치한다. 유병언, 권신찬, 이요한, 박옥수는 모두 신학을 공부한 적이 없는 외국 선교사 `덕욕`의 영향을 받은 자들로서 `회개와 믿음을 통한 구원`이 아니라 `깨달음`에 의한 구원을 받는다고 전한다. 서로 적대시하는 이들은 모두 죄사함을 깨닫고 복음을 `깨달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설교한다. 우리는 자신이 죄인됨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함으로(행 20:21)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그러나 구원파에서는 예수님의 보혈에 의해서가 아니라 `깨달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한다. 구원받았다는 착각을 심어주나, 구원해주시는 예수님과의 관계가 전혀 없는 것이 구원파 교인들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인격적인 사랑과 경배의 대상)라고 한다. 그러나 구원파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인격성을 부인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신성은 강조하나 인성을 격하시키거나 무시한다. 사람이 인격적으로 즉 지성과 감정과 의지로서 영이신 하나님과 접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가르치는데 이것은 영과 인격을 분리시키는 영지주의 이단사상과 일치하는 것이다. 믿음의 한 가지 기능인 깨달음만을 강조하는 것은 영지주의적 사고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깨달음뿐 아니라 주님을 신뢰하고 의지함으로 구원을 받는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죄를 사하시는 것은 예수님이지 우리의 깨달음이 아니다. 구원파의 신앙에는 회개와 신뢰로서의 믿음이 빠져 있다. 그래서 이들은 구원받았다 하면서 회개를 계속하면 구원받지 못한 증거라고 억지 주장을 한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 앞에 의롭다하심을 받았지만 여전히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다. 우리는 용서받은 죄인일 뿐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나는 죄인의 괴수라"고 고백하고 있다. 구원파 교인들의 말대로 하면 바울 사도도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이다. 회개가 빠진 구원, 회개가 필요없는 신앙생활. 회개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기독교가 아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도 여러 번 회개하였다(시 51; 삼하 24:10). 우리는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주옵시고" 하고 기도한다. 그러나 구원파 교인들은 주기도문을 하지 않는다. 의인이 되었기 때문에 다시는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잘못된 교리 때문이다. 주님은 구원받은 성도들로 구성된 에베소 교회와 사데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서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네가 열심을 내라"고 명령하고 계시다(계 3:19). 잘못된 교리는 잘못된 생활과 행동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회개를 부인하는 구원파 교리는 거짓말이나 간음, 술 담배나 살인행위까지도 가능하게 한다. 사도 바울은 일찍이 이단을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는 자들`이라고 규정했다(딛 1:16). 박옥수는 회개하는 자는 구원받지 못한 자라고 가르친다. `죄인이라고 고백하면 지옥으로 간다`고 가르쳐 우리들만 구원받았다는 자만심에 빠진 광신도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따라서 한 가족 중 한 사람이 이 집단에 빠지면 가정이 파탄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혼하는 부부가 속출하고 있다.교회의 전통과 질서를 전면 부정하는 구원파. 권신찬 유벙언의 구원파는 장로, 집사 제도를 두지 않으며 박옥수, 이요한은 신학교육을 받지 않은 무자격자를 필요에 따라 전도사, 목사로 안수하고 있다. 정통 교회의 전통과 질서를 전적으로 무시하고 부정한다. 성경만 깨달으면 되기 때문에 신학 교육은 필요 없다고 주장한다. 사도 베드로는 이들을 가리켜 "무식한 자들이 성경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른다"(벧후 3:16)고 지적하고 있다. 정통교회의 제도와 예배형식, 십일조, 새벽기도, 축도 등을 무시하거나 부정한다. 그리고 이러한 종교 행위에서 해방되는 것이 구원이라 하여 순진한 사람들을 멸망의 길로 미혹하고 있다. 구원파의 3분파는 모두 구원관과 교회관에서 정통교회를 전면 부정하고 자기들의 교회만이 참구원을 전한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중학교 3학년 중퇴생인 박옥수 씨는 `죄사함, 거듭남의 비밀`을 자기들만 깨달은 것처럼 사람들을 현혹하면서 거듭남(구원)의 교리에만 치중하고, 신앙생활(성화)과 종말에 대해서는 거의 가르치지 않고 있다. 반면에 권신찬, 이복칠 계통은 시한부종말론을 가르쳐 추종자들에게 위기감을 심어주고 있다. 구원파는 하나님애 대한 가르침, 구원, 교회, 신앙생활, 종말에 대한 가르침에서 모두 탈선하고 있다. 세 분파 모두 성경의 구원이 아닌 다른 구원,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다. 그들의 하나님은 성경의 인격적인 하나님이 아닌 영지주의자들의 하나님(영)이다. 따라서 이들은 기도를 부정하거나 무시하고 있다. 주기도를 하지 않으며 축도도 하지 않는다. 오대양 사건과 유사장 구속으로 사기가 저하된 복음 침례회 구원파는 한강유람선과 남해안여객선 인천-백령도간 여객선, 세모 스쿠알렌 및 컴퓨터 사업에 몰두하고 있다. 현재는 자칭 목사, 박옥수 씨가 이끄는 구원파가 `죄사함, 거듭남의 비밀`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전국 대도시와 군부대, 학교, 교도소까지 침투하여 정통교회에 도전하고 있다. 우리는 자신이 죄인됨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그러나 구원파에서는 `깨달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한다. 구원받았다는 착각을 심어주나, 구원해주시는 예수님과의 관계는 전혀 없는 것이다. 구원파의 신앙에는 회개와 신뢰로서의 믿음이 빠져 있다. 그래서 회개를 계속하면 구원받지 못한 증거라고 억지 주장을 한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하심을 받았지만 여전히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다. 우리는 용서받은 죄인일 뿐이다. 구원은 인간의 깨달음에 달려있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팍케 하시느니라"(롬 9:19) 구원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고 하나님의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지 인간편에 그 열쇠가 있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이 구원하시고자 하시면 은혜도 주시고 은혜를 받으면 믿게 되고 믿어지면 깨달아지고 깨달아지면 구원의 확신도 생기는 것이다.


정동섭
침례신학대학 상담심리학 교수.
한국복음주의신학회 이단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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