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한경호전도사님 환송예배 말씀(10.8)
강원도 태백산 똥물이 용됐다가, 낙동강 오리알이 됐습니다.
잠깐 간증을 드리겠습니다.
(열왕기하 19:29-31)
"또 네게 보일 징조가 이러하니 너희가 금년에는 스스로 자라난 것을 먹고 명년에는 그것에서 난 것을 먹되 제 삼년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원을 심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유다 족속의 피하고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가 서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찌라
남은 자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피하는 자는 시온산에서부터 나오리니 여호와의 열심히 이일을 이루리라 하셨나이다"
선교 학교 때, 이 말씀을 하나님이 주셔서 구리에 오게 됐습니다. 강원도에서는 구원을 받고 한사람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어렵더라구요. 한 2-3년 전해야 한사람 복음 전할까? 말까? 했는데, 서울에 오니까, 마음이 가난하신 분도 많고, 또 스스로 교회 찾아오시는 분들도 많고, 정말 이 말씀처럼 "금년에는 스스로 자라난 것을 먹고, 또 명년에는 난 것을 먹되 제 삼년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원의 심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제가 참 이런 은혜를 구리에 와서 입었거든요. 이 모든 것을 여호와께서 행하시는데, 제가 어느 덧 마음에서... 한번은 어떤 목사님께서 제 별명을 하나 붙여 주시더라구요. "구리 제국" 이라고, 전 그냥 웃어 넘겼지요 뭐! 가 선교 학교 있을 때 제 별명이 참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그 하나가 `하만` 이였거든요. 같은 동기들이 저를 보면 `하만! 하만!` 하고, 또 전 웃어 넘겼어요. 그러다가 끝날 쯤에 되어 가지고 제 별명이 하나 바뀌었는데, `꺽꿀이` 로 바뀌었거든요. 머털이와 꺽꿀이 중에, 그래도 저는 웃어넘기면서 구리에 왔거든요.
하나님이 이래 말씀하셨으니까! 이 이래 하신다! 그래 정말 그런 마음으로 있었는데, 진짜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어요. 근데 말씀을 하나 더 보겠습니다.
(창세기 20:7-11)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정녕 죽을 줄 알지니라
아비멜렉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모든 신복을 러 그 일을 다 말하여 들리매 그 사람들이 심히 두려워하였더라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리 하느냐 내가 무슨 죄를 네게 범하였관대 네가 나와 내 나라로 큰 죄에 빠질뻔하게 하였느냐 네가 합당치 않은 일을 내게 행하였도다 하고
아비멜렉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의견으로 이렇게 하였느냐
아브라함이 가로되 이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아까 낙동강 오리알이 됐다고 했는데요. 그래 참 `그것이 감사하다` 하는 마음이 듭니다.
하나님의 열심히,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신 대로 이루셨는데, 어느 새 제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높아졌지만, 높아진 줄도 모르고, 주위에 있는 수많은 아브라함과 같은 선지자들이 정말 "너는 구리 제국이다, 또 너는 삯꾼이다" 하고 이야기를 지나가는 우스갯소리로 그래 하셨지만, 저는 그걸 그냥 우스개 소리로 넘겨 버리고 있더라구요. 아비멜렉이 왕이었지만, 그가 왕이었기 때문에 선지자를 볼 만한 눈이 없더라구요. 아비멜렉이 다름 아닌 저다 하는 마음이 구리에 지내면서 제 마음속에 들어 지더라구요. 아브라함은 선지자로써 이 그랄 땅에 왔는데, 아비멜렉은 그가 선지자라는 걸 몰랐을 때, 하나님이 친히 가르쳐 줘도 이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따지더라구요. 어찌하여, 네가 어찌하여, 네가 어찌하여, 제가 참 종들 앞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종들 앞에서 따지고 있더라구요. 제 마음속에 언제부턴가 모르게! 근데 그 이유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런 마음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도 있고, 그 약속을 하나님께서 친히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계시기 때문에 이루시고! 또 그렇게 저를 이끄시고, 도우시고 하셨지만, 그 하나님에 대하여 제 마음속에 어떤 감사와 영광을 돌리기보다 어느 새 그렇게 됐는지 몰라도 11절에 있는 말씀처럼 "아브라함이 가로되 이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아비멜렉이 선지자 아브라함에게 `네가 어찌하여` 하고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 이 마음은 근본 그 마음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기 때문에부터 시작된, 아비멜렉의 마음을 가기에 앞서서 하나님이 보여 주시면서, 많은 종들이 나에게 지나가시면서 한마디씩 던졌던 그 말씀들이 다시 생각이 나더라구요.
하나님께서 왜 제 마음을 이렇게 이끄셨을까? 물론 그 낙동에 가보면 알겠지만, 하나님께서 제게 참 은혜를 베푸시겠다. 비록 왕으로 살았던 아비멜렉, 이제 아브라함을 뒤에 가서 주여! 하고 그 마음이 아브라함 밑에 들어가는 축복을 입었던 것처럼, 제가 북부산에 가서 `하나님이 이런 은혜를 입혀 주시겠다` 하는 마음도 들고, 그래서 잠깐 간증을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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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수님이 작성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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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김동성 목사님의 고별 말씀 요약입니다.(한 형제님의 글을 정리합니다.) 듣기
잘 안들리시면 한글윈도우미디어7버젼을 다운 받아 설치후 들으세요.


10.8 일요일 저녁 강남교회에서 김동성 목사님, 김영완 목사님, 한경호 전도사님의 환송예배가 있었습니다.

김동성 목사님은 "성도로서의 삶의 방향"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스가랴 7장5절6절 말씀을 통해서 우리 마음 중심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세상사람들은 육신의 편안과 조용하고 문제없는 삶을 동경하고 살아갑니다. 우리 성도들도 세상사람들과 같이 육신의 편안함과 문제가 없는 범위에서 일을 판단하고 결정하지만, 박목사님은 "이 일을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는가?"하는 것을 기준으로 일을 결정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나중에 "주님 앞에 섰을 때 무엇을 자랑할 것인가"하고 물으셨습니다. "자가용을 굴리고 호의호식하고 출세하고 떵떵거리고... 살았습니다"하고 자랑할 것인가를 물으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대전의 한 자매님이 러시아의 선교학생과 생면부지 상태에서 믿음으로 결혼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국내에서 마음에 드는 남자와 결혼하고 자식낳고 사는 순탄한 삶을 버리고 여러 어려움이 뻔히 보이지만 외국에 가서라도 복음과 함께 평생을 살겠다는 그 자매님을 하나님은 얼마나 귀하게 보실 것인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박목사님이 결혼의사를 물었을 때 그 자매님은 "목사님이 하라하시면 하겠습니다"하고 믿음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고 목사님이 매우 기뻐하셨답니다.

성도로서의 삶은 육신의 편안함보다는 주님과 복음과 연관될 때 진정으로 보람되고 하나님 앞에 자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도 삶의 철학과 방향이 있듯이 성도들에게도 주님 앞에 명확한 방향이 정해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의 무대는 직장,군대,주부..등 가지가지이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우리가 주님 앞에 분명한 삶의 방향만 정립한다면 삶의 방식이 달라지고 우리로 인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왜 주님을 섬기고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촛점이 있어야 한답니다. 그것이 혹시 주님의 영광보다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닌지 점검해보아야 한답니다. "당신은 진정으로 내 영혼을 사랑해서 수양회에 데리고 가려합니까 아니면 당신을귀하게 보이려고 하는 것입니까". "아버지가 나를 꾸짖고 때리는 것은 나를 사랑해서 입니까 아니면 박목사님께 나로 인해 꾸중을 들을까 봐 하는 것입니까"라는 비유를 드시면서 우리 마음중심에는 주님으로 포장된 "자기를 위하는 마음"이 도사리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섬긴다하지만 실상은 자신(우상)을 섬기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중에 70년동안을 5월과 7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지만 하나님은 그것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다 너희를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교회안에서 주님을 섬기고,봉사하고 전도하고,말씀을 전하고,기도하고,연보하는 등 겉으로는 주님을 위한 것 같이 보여도 그 마음 속을 몇겹 벗겨보면 그곳에는 주님이 아니라 "자기"가 자리잡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일을 열심히 하기에 앞서 "이 일이 과연 주님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나를 위한 것인가"를 냉정하게 돌아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수넴 여인이 극한 가난속에서도 엘리사 선지자를 정성껏 섬겼으나 그 아들이 죽자 엘리사를 원망하는 모습에서 그 마음 중심의 모습은 엘리사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를 원망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메시야를 애타게 기다렸지만 그 메시야는 영혼을 구원하는 구세주가 아니라 자기들의 육신적인 형편을 해결해주는 메시야였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자기 유익을 위해 복음을 이용하고 주님을 팔고 있지 않는지 모른다고 하셨습니다.우리는 복음을 가진 자로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상인이 우리가 복음 전하듯이 장사하면 다 망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너무 교만하고 게으른 성도들의 모습을 질책하셨습니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 나대신 주님이 계신다면 형편이 문제가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우리 마음의 주인이 되면 갈등이 있을 수 없고 마음을 꺽을 필요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신앙은 마음 중심이 나에게서 주님으로 바뀌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겉모습을 보지 말고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내 모습을 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예배드리고 봉사하고 자식들을 교회에 보내는 것들이 나를 위한 것인지 주님을 위한 것인지 따져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복음 앞에 삶의 목적을 분명히 해야 보람된 신앙생활이 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복음을 전하지 못해"하고 머물러 있지 말고 실제 복음을 자꾸 전하다 보면 자기의 부족한 부분이 발견되고 보완되면서 발전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복음 전할 영혼이 너무 많고 조건이 좋은 서울에서 마음껏 복음을 섬기다가 주님 앞에 자랑스럽게 서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전하셨습니다.

비록 몸은 떠나지만 형제 자매님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두고 가신다고 말씀하시면서 복음의 진보를 위해 모든 성도들이 마음을 모으기를 바라신다고 하셨습니다.

새 사역지로 가시는 목사님께 주님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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