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 죄인 구원자에 대해


옹호론으로 표현하고 글을 쓸수도 있습니다
옹호론으로 쓰면 현재의 여러분에게 더 용기를 주고 위안을 주고 자신감을 주고 그러겠죠
비판론으로 썼기 때문에 여러분은 조금 기분이 나쁘실지도 모릅니다
진정으로 여러분이 이해한자 거듭난자라면 저의 말을 읽고도 화가 나지는 않으실것입니다
이해함 거듭남이란 밝은 면과 어두운면 모두를 아는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의인을 구하러 온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하러 왔느니라

비슷한 말씀이 있죠 정확히 기억 못하지만 중요치 않아요 언어는 이해가 중요할뿐

의인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자입니다

죄인은
자신의 죄를 감추어두고 또 그것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악순환을 반복합니다
회계를 가르쳐 주신 이유입니다 사람들에게 드러내어 회계하는것은 어렵기 때문에
자신의 하나님에게 라도 드러내는 것부터 시작하라는 예수님의 배려의 마음이 회계에 담겨 여러분에게 전달된 것입니다

의인은 스스로 드러냅니다 드러낸다기 보다 일부러 감추려하지 않습니다
회계의 필요가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회계이기 때문입니다
회계란 감추려두려는 사람들에게 필요합니다

원죄란 태어남의 증거 입니다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 맡김 드러냄 일부러 감추려하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원죄도 자연스럽게 드러내게 됩니다

왜 구원자가 필요 할까요
왜 구원자 없이는 사람은 구원을 못받을까요
가련한 인간의 심리가 나타난 문구입니다

자신의 일을 알아서 하는자에게는 인도가 필요치 않습니다
다만 자신을 속이지 않으면 그것으로 됩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속입니다 왜 자만 부끄러움의 감춤 남보다 높아지려는 부정적인 명예욕 등등으로 인해서 어두움의 뒷편은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인도자인 예수님은 바로 그것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부끄러움의 드러냄 높아지지않는 겸손 등등 예수님이 말씀하시지 않아도 여러분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지적할때서야 드디어 아그런가요 라고 여러분의 마음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말을 이제서야 알았다는듯이 따릅니다
지적하기 전에도 여러분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가련한 인간의 심리입니다
그리고 누군가 지적해줄 구원자를 여러분은 만듭니다
왜 스스로는 자신을 솔직히 인정을 안할까요
미리부터 스스로 인정하면 손해를 보기때문이죠
마치 시간다된 좌석에서 여러분은 주인이 와서 시간 넘었으니 나가세요 라고 말할때 까지 앉아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시간이 넘어서 나가야한다는 것은 알고 있으면서 주인이 와서 아까 벌써 시간이 넘었는데요 라고 말하면 "아! 그래요" 하며 그때서야 나갑니다
구원자를 만든 여러분의 심리가 바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구원자라는 것은 최선의 선택이 아닌 차선의 선택입니다
그분은 자신이 여러분들의 구원자가 되었다는 것에 안타까워 하실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이 자신을 속이는 만치 구원자가 다시말해서 지적해줄자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분을 구원자로 만든것은 여러분입니다
너무 직접적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지적해서 화가 나셨겠군요
보다 둘러서 미화된 말로 지적해야 되는데
아직도 자신을 속이는 자는 저의 말에 대해 공격할것입니다


누군가 외부에서 지적해주는 자를 구원자라고 여러분은 높이 섬기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부모님 품에서 있을겁니까
너희는 나보다 더 큰일도 할수 있느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그런 자를 그분은 모래알속에 쌀알 한톨을 ?듯이 ?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여러 자식들을 거느리기보다 자신의 동료를 원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제자임을 자청하며 그분의 품안에서 있을겁니까
제자 낮춤은 겸손이외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자신을 속이는 것조차 가련하고 연약한 인간의 심성임을 인정하고 여러분에게 손길을 뻗치 셧습니다
예수님이 높고 여러분이 낮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정상이고 여러분이 자신이 자신을 속여 스스로 낮아진것입니다
여기서 낮다는 말은 겸손의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본성상 확인(탕자)을 거쳐야 그분께 오게 되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최선의 방법일까요
그럴지도 모르죠
여러분은 차선의 방법을 최선의 방법으로 만든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진정한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십시오
그것을 그분도 진정으로 바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매달리는 순간에도 매다는 자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여러분은 기도하십시오
지금까지 자신을 속이므로 인해 예수님을 안타깝게 한것과
자신을 속이므로 인해 그분이 매달림을 당한것을
그것은 자신을 위한 회계보다 더 사랑에 가까운 타인을 위한 회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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