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그 머리카락에 매임"
***구약은 그림이요, 신약은 그 성취이다.

성경의 최종 결론은 계시록의 `새 예루살렘`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선민)의 신성한 로맨스의 완결이다.
믿는 우린 그리스도의 신부요,그리스도의 배필 이다
믿는 우린 영원안에 그분의 아내로 계획되어지고, 운명지워졌고,
지금은 신부로,새예루살렘으로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분의 배필의 가장 좋은 그림은
구약의 아가서에 솔로몬왕의 연인으로 나오는 `술람미`이다.

아가서는 사랑의 책이라 할수 있겠다
왕인 솔로몬이 시골처녀를 사랑함에서 시작된다
사람은 얼굴부터 주의할 지 모르지만 `왕`은 발부터 언급한다.
(아7:1,4-5)

신을 신은 네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귀한 자의 딸이 신은 신발은 땅의 더러움으로부터 분별시키는
능력있는 온전한 복음전파를 말한다.
왕앞에 우리의 첫번째 아름다움은 더럽히는 세상으로부터의 `분별`이다.
복음을 선포할 때 땅으로부터 거룩하게 분별될 뿐 아니라, 교회생활안에서 음녀의 그 어떤 성분도 허용치 않을 때
왕으로부터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구슬꿰미같은 넓적다리는 - 서 있는 능력과 안정성을 나타낸다.
우린,좌로든 우로든 치우쳐, 다 약하지만
공교한 장색이신 하나님이 우릴 변화시켜 `보배로운 옥`으로 만듦으로
서 있을 수 있는 지지력과 안정성을 가지게 되고,
이로서 그분의 일을 만질 자격이 있게 된다.

목은 상아망대같구나;
- 영적전쟁을 치루기 위해서는 천연적인 생명은 쳐서 처리되고,
`부활`을 상징하는 `상아`의 목이 필요하다.
순종과 부활생명이 가득할 때 그 목은 생명을 공급하는 망대가 된다.

눈은 헤스본 바드랍빔 문 곁의 못 같고;
비둘기 눈은 영적이지만 작은 시야를 갖는다. 반면에 이 눈은
못과 같이 열려있고 안식이 가득하며 접근하기 쉽다.
자신의 소그룹과 교회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온 우주를 볼 수 있는 ?혀진 시야이다. "문 옆에 있다"는 것은
모든 교통을 향해 열려있음을 말하고, 그럼으로 이 눈은
온 우주가운데 주님의 권익을 관심하고 돌본다. 이 마지막 시대,
오늘날,특별히 우리에게 얼마나 이러한 눈들이 필요한가!

`레바논 망대같은 코`
높은 영적감각과 날카로운 분별력을 표징하는 `레바논 망대같은
코`, 이것은 우리 모든 일에 안정장치로서 우리가 때론
잘 볼 수 없고, 들을 수는 없다하드래도,주의 일에 냄새는 잘 맡아야
한다. 사물의 외형이 아니라 영적인 그 내적인 냄새를!

`네 머리는 갈멜산 같고 드리운 머리털은 자주빛이 있으니
왕이 그 머리카락에 매이였구나`;
-하늘로 치솟은 머리털이 아니라, 우리의 굴복된 의지가
주님안에 곱게 손질하여 땋아 내려져서 묶여졌다.
그녀의 순종의 아름다움이 왕을 사로잡아 족쇄를 채운다!
더 이상의 반역이 없고 이 순종이 극점에 이를 때
그녀의 생각과 의도들은 이제 하나님을 위해 강하며,
주님의 자줏빛 왕권과 권위를 가져오는 이 아름다운 순복에,
왕은 완전히 사로잡히고 얽매인다.


***결국 이 모든 아름다움은 그리스도의 표현이다.
우린 그의 복사판인 연인들로서 그분의 신성한 생명의 속성들을
인간 미덕으로 나타냄으로 그분의 일을 함께 해야 한다. 이 단체
적인 신부의 완성을 위해, 교회생활과 건축을 위해 우리에게 얼
마나 이 미덕으로 나타나는 신성의 표현이 필요한 지......

교회건축을 위해 천연적인 의지,힘,능력이 사용되거나 혹은 어
떤 부담도 관심도 노력도 없는 것을 볼 때,우리에게 정말 필요
한 것은 부활안의 순종과 의지임을 절실히 느낀다.

영적이고 옳지만 좁은 시야는 얼마나 건축과 전진에 걸림돌이 되
는 지...우리에게 `못`과 같은 우주적인 한 몸을 관심하는 넓혀
진 시야가 진정 필요하다.

우리의 순종이 온전케 될 때,저 순종치 않는 모든 것들을 다스
릴 주님을 위해, 우리의 삼단같은 머리타래로 그분에게 온전히
더 사로잡기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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