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하나님께서 나를 이기셨다
형제님 간증이 좋군요

형제님의 간증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볼수가 있었습니다.
저두 학생때 구원받고 10년이 지났는데 형제님과 같은 경험을 했어요
같은 복음.같은 구원 ,같은교회에서 누구나 거쳐가는 여정인것 같군요 그럼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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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원님이 작성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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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나를 이기셨다

1988년 가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난 어머니와 작은누님 세명이서 광주의 변두리인 문흥동에 살고 있었다 .
우리는 경성교회라고 하는 작은 교회에 다니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가난했기에 교회의 눈치를 보셔야만했다.
세상 교회는 외형을 보기 때문이리라!
그러던 중 형님이 광주 송정리 비행장에 공군하사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휴가를 나왔다.
구원을 받았다며 우리가족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내무반생활을 하면서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 책을 읽고 구원을 받았던 것이다.
어머니는 어땠는지 잘 모르지만 나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신중하게 생각하지도 않았고 가치고 모르면서 형님이 무서워서 이야기를 들었다.
그 다음해인 89년 광주 안보회관 집회를 통해 어머니는 광주 제일교회에 연결되어서 기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하셨다.
그러나 난 친구들이 두 명 있었는데 그들과 어울리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고 교회는 어쩌다 한번씩 참석했다.
그해6월
광주제일교회 집회를 통해 형제님들과 교재하던중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교회에 내 마음이 정해져 버렸다.
구원에는 별 큰 관심이 없었지만 어릴때부터 부모님간의 갈등,경제적인 어려움 등으로 많은 생각을 하며 유아기를 보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나는 어디서 왔을까"라는 생각들을 자주 했다.
세월이 흐른 후 안 사실이지만 다른 친구들은 그런 생각들을 별로 안 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런 생각한번 안 해보고 나이를 먹었는지 이해가 안됐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하나님이 도우셨다는 마음이 든다.
구원을 확신 한 후 바로 여름 수양회가 솔밭에서 있었는데 정말
내 인생에 가장 행복을 느꼈었던 소중한 시간들이었다는 마음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다.
수양회를 다녀온 후 매주 토요일이면 학생회가 있었는데 그때부터 꾸준히 참석하다가 다시 친구들로 인해 마음이 흔들려서 롤러스케이트장으로 놀러 다녔는데 어느 날 어떤 여학생이 내 앞에 넘어지면서 스케이트로 내 왼쪽 발목을 부러트리는 일이 있었다.
엉금엉금 기어서 스케이트장을 나온 후 어머니께는 집에오다가 언덕에서 넘어졌다고 거짓말을 했다.
붕대를 감고 피곤해서 잠을 자는데 이상한 꿈을 꾸었다.
우리 집 앞마당에서 앞산을 바라보고 서 있는데 갑자기 해가 빛을 잃더니 빙빙 돌면서 산너머로 떨어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온 세상이 어두워져 버렸는데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우리 집 담 앞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집으로는 들어오지 못하고 들어가게 해 달라고 울부짖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집만 불이 켜져 있고 주위는 온통 암흑이었다.
문을 열어주려고 하니까 누군가의 열어주지 말라고 말리는 소리를 듣고 실랑이를 하다 잠에서 깨어났다.
이와 비슷한 꿈을 연달아 두 번 꾸고는 두려움과 떨림 속에 많은 생각에 잠겼는데 후에 교회 가서 형제님들께 꿈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도 그런 꿈을 꾼 적이 있다며 교회에 붙어있어야 된다는 교재를 해 주셨다.
그후 중학교 3학년생이 되어서 새로 반 편성을 했는데 옆 짝꿍이 강 준 길 이라는 친구였다.
1학년 때 같은 반이었지만 별로 친하지는 않았다 .
옆자리에 앉아있기에 "우리 오늘 토요일인데 교회한번 안 갈래"하고 권유를 했다.
그런데 선 듯 "그래가자" 하는 것이 아닌가!
"오후에 3시까지 서방시장 4거리 체육관 4층 광주제일교회로 와" 하고 해어졌다.
안올줄 알았는데 정말 3시가 되니까 예배당에 와 앉아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형제는 지금도 군대 제대하고 대학 4학년 졸업반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참 감사한 것은 하나님은 영혼을 구원하실 때 사람의 이름이 영광을 얻지 못하도록 하시는 것을 보았다.
시간이 지나서 학년말이 되었는데 학교에 `공군기술고등학교` 포스터가 붙어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보는 순간 저기에 가고 싶다는 나의 바램이 마음에서 강하게 일어나는 것을 억제하지 못하고 일요일 점심때 수제비를 먹으면서 목사님께 그 학교에 지원하겠다고 했더니 목사님도 본인이 공군출신인데 생활이 너무 힘드니까 가지 말라고 말리셨다.
주위의 권유와 교재도 모두 뒤로한채 나의 원함으로 학교 시험을 봤는데 1.2차 모두 합격을 해서 입교를 하게 되었다.
학교가 경남 진주에 있는 관계로 가족과 떨어져서 1991년 2월 4일 찬바람을 맡으며 가입교를 하게되었다.
학교가 생활이 너무 힘들고 특수해서 입교하기 전 한달 간 군사훈련을 통해 적성에 맞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 자퇴하도록 가입교 기간을 둔 것이다.
2월 한달 간 실시된 가입교 기간동안 세상과 단절된 가운데 낮에는 군사훈련을 받고 저녁에는 군대예절과 학교규정 교육을 받았다.
그러면서 틈나는 대로 하나님이 마음을 주시면 복음을 전했는데 주위에 많은 친구들이 복음을 듣고 신중하게 생각하며 믿어진다는 친구들도 많았다.
그중에 같은 내무반에 양승신 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유달리 감사하게 이 복음을 받는 것을 보았다.
입교식을 마치고 정식으로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낮에는 고등학교 교육을 받고 저녁에는 내무반생활을 하는 가운데 선.후배간의 군기가 너무 엄해서 동기생들과 제대로 이야기도 하지 못하고 시간들을 보냈다.
그러던 중 양승신 형제와는 눈치를 보지않을 밤 12시나 되어야 내무반 복도에 앉아 교재하던 추억들이 생각난다.
여름 방학을 마치고 다시 학교로 귀영 하려고 하는데 목사님께서 진주 성민교회에 가서 인사하고 하룻밤 자고 다음날 귀영 하라는 것이었다.
비가 정말 억수같이 내리는 날이었는데 말씀을 따라 진주성민교회에 찾아가게 되었다.
우의를 입고 계단을 뚜벅뚜벅 걸어 올라가는데 어떤 형제님이 어떻게 오셨냐고 물으셨다.
"광주제일교회에서 온 학생 형제입니다"하고 인사를 하니까 반갑게 맞아주셨다.
하룻밤을 예배당에서 묵으면서 교재를 나누었고 교회의 사랑을 입고 다음날 학교로 귀영하게 되었다.
교회가 참 감사했다.
다음 특박때는 양승신 형제와도 같아갔다.
교회에서는 그후로 토요일이면 학교 면회장으로 성경공부를 오셨는데 마음에 참 부담스러웠다.
토요일 오후는 기압을 받거나 잡초제거나 청소를 하는 시간들이 많았는데 동기생들이 기압받는 모습들을 뒤로하고 나 혼자 빠져 나온다는 것들이 마음에 걸렸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워도 꼬박꼬박 참석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피하게 되었고 면회를 오셔도 안 나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지금 생각하면 헛탕쳤던 형제님들의 씁쓸한 마음들이 가슴아프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들의 마음을 무시하지 않으시고 모두 축복하셔서 지금은 한분도 빠짐없이 사역을 하고 계신다.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런 상태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는데 하나님은 이런 어리석은 나를 버리지 안으시고 아에 부대에 중사 형제님을 한명 보내셨다.
홍기용 전도사님 이신데 하나님이 내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수원에서 진주 교육사령부로 보내신 것이다.
어느날 학과장에 앉아 있는데 어떤 중사가 장경원 학생 좀 만나러 왔다고 했다.
내가 장경원 이라고 하니까 "형제 나 수원에서 전속 온 형제야 만나서 반갑다"고 하시면서 굉장히 기뻐 하셨다.
우리는 모임을 가졌다.
매일 점심시간이면 호숫가에 앉아 교재도 나누고 했는데 기독교 학생회 총무로 있던 선배가 연결되어 세명이서 모임을 가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하사 계급장을 달고 김해 비행장으로 배치를 받아갔다.
온통 낮설었지만 그곳에는 형님이 중사로 근무하고 있었고 고등학교 1학년때 구원받은 양승신 형제가 같이 배치를 받게 되어 다시 모임을 가지면서 신앙생활을 계속할수 있었다.
한번은 내무반생활을 하는데 일요일 오후에 2기수 고참이 우리 동기생들을 너무 괴롭혀서 나도 모르게 그만 발로 차 버렸다.
그런데 그것이 발각되어 지면서 온 동네가 시끄러웠다.
고참이 120명이나 있었는데 그 사건을 계기로 우리들을 너무 괴롭게 했다.
어려운 가운데 있었는데 형님이 내무반에 찾아와서 우리들을 구해 주셨다.
바로 휴가신청을 해서 여름수양회에 참석했는데 하나님이 마음을 회복시켜 주셔서 감사했다.
영내 생활을 2년 하면 출퇴근이 자유로워 지는데 나는 자취를 하고 싶었다.
그동안 얽매였던 생활들에서 벗어나 편하게 살고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래서 자취를 하겠다고 했더니 형님이 그러지말고 예배당으로 들어오라고 권유를 하는 것이 아닌가.
내 주장을 가지고 몇일을 실랑이를 벌이다가 하나님께서 두려운 마음을 주시면서 예배당 안에 거할수있는 은혜를 입었다.
아마 그때 마음을 꺽지 않았다면 나는 신앙생활을 못했을 것이다 .
북부산교회 예배당안에 형제님들과 여러명이서 살게 되었는데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교재도 나누고 기도도하면서 참 은혜로운 시간들을 가졌다.
하나님이 마음을 주셔서 부대에서 힘껏 복음을 전하는 시간들을 가졌다.
그러면서 핍박이 일어나고 동료들간의 따돌림 , 눈총 때로는 신앙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들 , 도망가고 싶은 마음들 이런 마음들이 교차하면서 많이 어려웠다.
하나님도 많이 경험했지만 그것들은 다 이야기 할수없고 정말 힘든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같이 살던 청년회장 형제님이 선교학교를 가게되어서 그 후임으로 그 직분이 내게 맡겨졌다.
평소에 사모하고 있는 직분이라서 감사한 마음으로 하고 있었는데 목사님께서 어느날 기도회를 마친후 청년 자매들 가운데 인도자를 한명 세우라는 말씀이 마음에 얹혔다.
대충했으면 모르는데 너무 열심히 했던터라 분한 마음과 섭섭한 마음이 가득했다.
이런 마음으로 있었는데 며칠후 바로 서산 비행장 전속희망자 조사가 있었다.
교회의 인도없이 종과 형제 자매님들과 교회에 아픔을 주고 서산으로 오게 되었다.
제 정신을 차리고보니 내가 너무 엄청난 짓을 했다
교만해서 나의 모습을 모르고 엄청난 죄를 저질렀구나!하며 괴로운 마음으로 전속을 왔다.
마음에서 많이 울었다.
짐을 꾸리는데 자동차에 옷하고 몇권 책 밖에 가져갈것이 없었다.
자동차를 타고 오면서 "이제는 부대에서도 복음 전하기 않고 조용히 살아야지!"
"적당히 신앙 생활하고 교회도 종교인 수준으로만 나가야지" 하고 마음에 정하게 되었다.
참 악한 마음이었다
도착해서 예배당에 들어왔는데 아무도 없었다.
피곤해서 상의를 벗고 잠을 자고 있었는데 전도사님께서 깨우셨다.
교재를 하고 잠을 잤다.
다음날 출근해서 바로 부대 관사 독신자 아파트를 배정받아 들어갔다.
그리고는 교회를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
일요일이나 되면 잠시 얼굴만 비치고 들어와 버렸고 어떤때는 예배도 안보고 점심식사 시간에 들어가서 밥만 먹고 나와버리곤 했다.
전도사님께서 많이 어려워 하셨다.
그렇게 두 달을 싸웠다.
나 자신과 교회와 하나님과 .......
차를 타고 예배당 앞을 지나는데 집회기간 이었는지 장년 형제님이 혼자서 전단지를 나누어주고 계셨다.
모른척하고 부대로 돌아오긴 했지만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나도 구원받은 사람인데 ......
수요일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운전을 하고 오면서 하나님께 "나 좀 살려주세요"하고 고함을 질러대고는 전도사님께 교회 근처로 나오겠다고 했더니 기뻐하시면서 예배당으로 들어오라고 하셨다.
예배당으로 들어와서 사는데 서너달 지나니까 대전 본부에서 소령
형제님이 전속을 오셨다.
그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한번도 혼자서 살도록 버려 두시지 않으시고 항상 두 명 이상 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대한 기대가 있었는데 그 기대를 이루신 것이다.
그 형제님은 본부에서 비디오집회를 하려다가 문제가 생겨서 서산으로 오게 됐다고 하셨다.
예배당에 들어와 살면서부터 전도사님과 부딪히기 시작해서 많은 시간을 싸웠다.
큰 교회 안에 있을때는 작은 시골교회에서 종들의 인도를 받지않고 거슬리는 못된 형제들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어떤 못된 형제가 그래 "하면서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나는 그런 형제들보다 더 악한 사람이었다.
교회를 떠날까!
신앙생활을 그만둘까!
하는 수많은 생각들이 있었지만 가족들이 모두 구원받아 갈곳도 없고 ........
하나님이 두렵고........
죽어도 교회 안에서 죽자 하는 마음으로 버틴 것이 세상과 싸우고 영혼들과 싸워야할 수많은 시간을 교회와 싸우고 종들과 싸우고 내 자신과 싸웠던 것이다.
지난해 말부터 몇 달간은 부대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너무 어렵게 하셨다.
보직이 항공기 기장인데 항공기 지상시동 점검을 하다가 조작 미숙으로 로케트연료(유독)를 터트리기도 하고 서류도 정리하지 않고 비행지원을 해서 사고가 나는 등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몇 달을 너무 어렵게 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돌이키라고 하시는데도 나의 마음은 오히려 더 악해져서 마음을 꺽지 않았다.
이런 일들 외에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생략하고 ...
하나님께서는 "뒤로 물러가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셨는데 한번 품었던 종교생활을 해야겠다는 악한마음을 하나님께서는 돌이키게 하시기 위해 내게 많은 고통을 더하신 듯 하다.
이런 악한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이제 돌이키게 하셨다.
하나님 앞에 , 교회 앞에, 종 앞에 , 형제 자매님들 앞에, 나의 강한 세계가 무너져 내리고 굴복되어진 것이 참 감사하다.
예레미야 20장 6절에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나를 이기셨다는 말씀이 있다.
내 세계가 하나님의 세계와 겨루고 굴복되어지지 않아 얼마나 많은 힘든 시간들을 보냈던가!
한때 교회 안에 내가 설자리가 없구나!
하는 암담한 마음으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기도 했다.
권투선수가 K . O를 당하고 난 후 마음이 어떨지 이해가 된다.
아직도 죽는 날까지 많은 고비와 역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구원받고 난 후 나의 삶을 인도하신 주님께서 앞으로 살아야될 수많은 일들 앞에 주님께서 문제들을 해결해 주실 줄 믿는다.
많은 형제자매들이 신앙생활을 하다가 중도에 포기하기도 하는데 내게 지금까지 교회에 거할 수 있는 큰 은혜를 베풀어주신 주님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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