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관심함
이산가족 상봉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아픈 일이었습니다.

생이별했던 가족을 몇 십 년만에 만났을 때, 그들은 목놓아 울었습니다. 세월이 안겨다 준 어색함도 잊고서, 오랜 사상의 다름도 아랑곳 없이, 그들은 다만 한 핏줄로서 끌어 안을 뿐이었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피는 속일 수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념과 체제가 달라도 피는 서로를 그리워 하는 숙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육체의 피보다 더 진한 피로 가족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육체의 피는 다만 육체일 뿐이므로, 그 영이 육체를 떠나면 유효기간이 끝납니다. 그러나 영으로 가족된 사람들의 피는 죽음 이후까지도 영원히 유효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형제요 자매라 부릅니다.

우리의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모든 사역은 이 반석 위에 서 있고, 또 서야 합니다. 약간의 서로 다른 관심이나 취향도 이 반석 위에 있는 다양함일 뿐입니다. 이 든든한 기초석 위에서 우리는 결국 같은 도착점에 다다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하나"여야 합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에게 하나의 생명이 있다면, 그 생명으로 인하여 하나되기 위해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당장 가시적인 것으로 드러나기는 어렵더라도 모든 그리스도 인의 입장은 이 "하나"를 지향해야 합니다. 조금씩 다른 다양함들이 그 하나됨의 우위에 군림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구원을 강조하든, 구원 이후의 삶을 강조하든, 혹은 사역자가 누구이든, 한 생명 받은 한 몸이라면 우리는 서로를 그리워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되지 못하게 하는 모든 요소는 어찌보면 "육"이 아닐까요?
이 육은 단연코 십자가로 가져가야 합니다.
선한 육이든 악한 육이든 모조리 가져가야 합니다.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다름은 부서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부활생명으로 우리는 하나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이후에라야 우리는 무슨 무슨 "파"가 아닌 다만 "그리스도 인"으로 불릴 것입니다.

생이별의 아픔은 당해보지 않으면 모를 것입니다.
몇 십년의 공백이 있다 하여도 그들이 한 피로 서로를 끌어 안을 수 있었던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진정 한 가족된 사람들이라면 서로를 가로막는 벽들을 허물어 가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하나이듯 몸도 하나여야 하며, 그분도 우리의 하나됨을 바라십니다. 참된 교회는 이러한 입장 위에서만 산출될 수 있을 것입니다.

"너희가 너희를 부르시는 한 소망 안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처럼 한 몸과 한 분 성령이 계시니 한 분 주요, 한 믿음이며, 한 침례이고 한 분 하나님, 곧 모든 것의 아버지시니 그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시며 모든 것을 통하여 너희 모두 안에 계시느니라."

이산가족 상봉을 보며, 오랫동안 제가 관심해 온 "하나"의 문제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서로를 만나보려는 애타는 마음조차도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 벽은 언제나 허물어 질까요?




Reply 윗 글에 대한 답글입니다.

3개월이 지난 글은 덧글 입력이 불가 합니다.
카카오톡 공유하기 URL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