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1서) 자백에 대한 짧은 소견
밑에 궁굼이님과 말씀님께서 쓰신 글을 읽고
짧은 소견이나마 몇자 저의 생각을 올려봅니다

모든 성경은 각 성경마다 관점이 있고 그 맥을 가지고 쓰여졌슴을 압니다

요한 1서는 그 아들안에서 참되고 영원한 교제와 사귐에 대해서
그 관점을 가지고 쓰여 졌기에
빛가운데서 영원한 교제에 촛점을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끗게 하실 것이요" "사하시며" 이러한 단어들은
우리의 죄가 씻어진다는 의미가 아니고
죄를 씻음 받은 사람들이 빛되신 하나님과의 교제와 사귐의 회복을
말씀하신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성경에 구원이라는 단어도 똑 같이 구원으로 쓰여져도
죄에서 구원만의 의미로 쓰여질 때가 있지 않고
각 상황에 따라 여러 각도로 쓰여집니다

구약에서 종종 쓰여진 구원은 땅에서의 구원 대적으로부터의 구원을
의미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참된 영원한 구원의 그림자로서
사용되었겠지만요

언핏들은 이야긴데 "깨끗게 하실 것이요" 라는 단어가
원어에서 삶에서의 불의한 죄로 부터 멀어지고 깨끗게 되어진다는
의미라고 들었습니다(저는 원어 잘모릅니다)

내 죄를 씻어주십시오라는 기도는 맞지 않을 것이지요

요한1서의 자백은 말 그대로 자백하는 것이겠죠

죄를 지어놓고도 내가 죄를 안지었다고 합리화 시키고 빡빡 우기는 것이
아니고 내가 범죄했음을 마음으로 인정하는 것이겠고
내 자신의 모습이 원래 그럴수밖에 없는 자임을
고백할 수 밖에 없슴은 당연한 것입니다

성경에서의 죄의 기준은 결코 유교에서 말하는 도덕적인 죄의 기준이
아님은 확실합니다
이제 죄를 씻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새언약과 새법안에서
살기에 주님의 마음에 슬퍼하는 것은 다 악한 죄일 것입니다
아무리 옳은 길일지라도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의 생각에 옳은 길들을 개척해 나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마음에 부담을 주시겠고 길들을 막으실 것이지요
그 길은 나의 생각을 따라 걷는 길이지 빛가운데로 걷는 길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사실 도덕적인 범죄는 구원을 받은지 조금만 지나도 거기에서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도덕적인 범죄의 문제뿐 아니고 주님의 기뻐하신데로
우리 마음과 행동과 삶과 인생을 옮기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때 주님과의 관계가 불편해 지는 것입니다
은혜안에서라는 그 언약은 끊어지지 않지만
사귐이 불편해 지는 것입니다

그때 내가 악한 자임을 시인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는 나 외에는 생각이 ?은 사람이고 주님의 나라 대신에
나의 성과 왕국을 쌓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주님께서 나의 인생과 삶을 또 나의 마음을 다스려 주시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더욱 죄로부터 정결한 삶을 살게 되어지고
하나님과의 사귐이 회복되어 빛가운데서 걸어가는 것입니다

기도하기 전에 하나님 오늘은 무슨죄 무슨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이런것이 당연히 아니겠지요
죄사함의 확신이 없는 사람들의 행사입니다


Reply 윗 글에 대한 답글입니다.

3개월이 지난 글은 덧글 입력이 불가 합니다.
카카오톡 공유하기 URL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