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본문의 글은.....
본문의 글은 누군가가 형제의 이름을 도용하여
8월 기쁜소식지에 실린 박옥수 목사님께서 쓰신
`아나니아와 삽비라`에 대한 말씀을 곡해하여
비난한 글을 올렸기에 그에 응답하였던 글입니다.
본문에 대해 궁굼해 하실 분들이 계실 것 같아
이에 간단히 해명드리며..........

저는 전도자라는 분에 대해 전혀 모릅니다.
요며칠내 전도자라는 가명으로 글을 올리시는데
어떤 배경을 가지고 무슨 목적으로 올리는 글인지
전혀 종을 잡을 수 없는 글이어서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그냥 한번 읽어보는
정도입니다.

처음부터 저의 글들을 읽어오신 형제자매님들은
저의 말씀의 길을 따라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온 일관된
간증과 말씀의 배경을 아실 것이라 믿어 지나

전도자라는 분이 밑두 끝두없이 값자기 뛰어들어
저한테 형제님이라 하면서 또 고넬료의 글을 예로
올리며 돌아보라니
과연 전도자라는 분이 형제님인지도 저는 확인 할 수
없습니다.
그런 분이 이선교회 소속이라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말씀을 다시 올려 주셨으니.....

지금 어떤 한분이 여러가명으로 바꾸어 가면서 형제인것
처럼 꾸며 들어와 이긴시키는 글을 올리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할 분은 없을 것입니다.

제가 본문으로 응답하였던
`작정하기`라는 글이 대표적인 그런 글 이었습니다.
아무 근거없는 비난을 위한 헐뜯기 글이었습니다.

일부러 초를 치고 촛점을 흐리게 하여 오도하려는 의도가
역역한 글이었기에 응답하였던 글이었습니다.

어쩌튼 관심을 가져 주시고 염려해 주는 것은 고맙지만

돌아 보고 점검해 보아야 할분이 누구인지 본인부터

되돌아 봄이 순서가 아닌가요?

주님의 보혈로 죄사함받은 간증을 올려달라고 부탁하면

그 가명을 바꾸어 다른 이름으로 올리드군요!

제가 올린 글에 반론을 하실려면 그동안 제가 올린

글들을 한번쯤은 읽어보고 반론하는 것이 정상적인

순서이요 예의라고 생각되어 지는군요.

"금붕어 살때 끼워넣준 지그라미 한 마리"(3956)를
읽어 보십시요.

그 지그라미는 형제자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와주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아십시요.

*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응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를 얻는 이것이니....`(요한6:40)

"내가 하느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 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한6:39)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요한5:24)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아담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한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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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님이 작성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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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돈과 헌금과 주님의 일과 성도를 섬기는 일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들,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건강도 돈도 직장도 허락하셔서
잘사는 것은 아니지만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자족하며
산다. 나는 그래서 늘 감사한다.

교회에 헌금도 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도 관심을
쓰기도 하고,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도 돈을 쓰기도 한다.

그런데 헌금하거나 도웁거나 돈을 쓸때마다 나에게 이
모든 것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하며 어떤때는
적게 쓴 것 같은 나의 인색함에 아쉬워하며 반성해
보기도 한다.
주님이 이 모든 것을 허락하셨는데, 허락하셨을때 주님의
일을 위해 성도를 돕기위해 쓰여진다면 얼마나 기쁘고
아름답고 감사한 일인가?

내 육신과 수고로 번돈이 값진일에 더욱 한 영혼을 구하는데
쓰여진다면 얼마나 보람있는 일인가?

주님은 너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놓으라고 하셨다.
너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도 하셨다.

사람들은 누구나 돈을 아끼고 사랑하고, 금전에 관계된
일에는 예민하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당연히 설교 해야 할 경우에도
꺼리고 자제하는 것을 보게 된다.
나부터도 그렇다.

여자는 교회에서 조용히 잠잠하라는 말씀도 꼭 필요한
말씀인데도 예민한 문제이기 때문에 말하기를 꺼리는 것과도
같다.

헌금은 믿음의 분량대로하는 것이다.

체면 때문에 만원 해야 하는 믿음의 분량인데 십만원하고
아까워하고 후회한다면 주님께서 기뻐하시겠는가?
주님은 기뻐내는 자를 기뻐 받으신다.
그리고 축복하셔서 오병 이어의 기적도 이르키신다.

주님의 큰사랑으로 죄사함을 받은 동네의 죄 많은 여자는
눈물로 주님의 발응 적시고 그 머리털을 풀어 발을 닦고
생명같이 모아놓은 향유를 그 발에 부어 영광과 감사를
돌렸고 주님은 이를 말씀하여 성경에 기록하셨다.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자가 함께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
(누가8:1-3)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의 새벽에 무덤을 찾아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뵙고 주님의 부활을 제릴먼저 알리고 전하자가
되었다.그는 또한 주님 십자가에 못 박히는 현장에서
지켜보기도 했다.

주님은 생명을 던져 마지막 한방울의 생명의 보혈을 흘리고
부어 영원한 지옥에서 우리를 구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랑과 생명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생명을 던져 순교하기도 했다.

헌금은 우리의 믿음의 분량대로 하면 된다.
믿음이 없으면 억지로 할 수없다. 마음에 허락 되는대로
기까이 하면된다.

나는 사랑의 리퀘스트를 보면 참으로 눈물겨운 사연들도 많다.
그들을 위해 한통화 1천원을 보낼 수있다.

그렇게 걸은 전화가 수십만통 수억원이 모여져 그들을
돕는 것을 볼때마나 한통의 전화를 거는 그 손들을 사랑하고
축복하고 싶고 감사한다.
우리민족에 대한 사랑과 소망도 가져본다.
작은 것이 모여 큰일에 쓰여 진다면,나하나 적은 돈이지만
모여지고 주님이 축복해 주시면 얼마나 보람있는 일에
쓰여 지는가?도 생각해 본다.

박옥수 목사님이 하신 아나니아와 삽비라에 대한 말씀은
단지 헌금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께 맡기고
의지하는 믿음으로 사는가? 육신과 물질에 의지하여 사는가?
를 반성해 볼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하신 것으로 믿어진다.

성경에도 한 달란트를 당에 묻어 두지 말고 은행에 맡기라
그리하면 이자라도 찾을 것이 아니냐?라고 하신 말씀도 있다.

나 하나는 아무 쓸모 없어보여도 내가 드린 작은 돈은 아무
쓸모 없어 보여도 그것이 모여 주의 일이나 성도 돕는 일에
쓰여 진다면 큰 기적과 축복을 이루실 것이다.

저도 평소에 이문제에 대해서 생각한 점이 있었기에
님이 올린 글을 보고 저의 평소 생각과
느낌을 간단히 적어 올리는 바이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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