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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말하였던가? ‘물은 건너 보아야 알고 사람은 지내 보아야 안다’고-. 그렇다면 역사와 교리는 어떻게 해 보아야 알수 있겠는가? 여기에 대한 대답은 철저하게 그 실체의 근본을 드러내 본질을 밝혀보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역사가 지나가 역사속에 묻혔다고 모두 끝난 것이 아니며 드러나지 않는다고 모두 죽어 버린 것은 아니다. 지금도 그 정통은 살아 있고 최삼경씨가 주장하고 그것으로 여전히 이단정죄하고 이규호 총회장이 이끌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해명해야할 칼빈에 대한 역사와 마각의 정통교리에 대한 진면목을 드러내 그 진실을 밝혀볼 때가 되었다.
 
총신대학교의 정성구 교수는 칼빈총서 제8권 ‘칼빈의 예정론’이란 책의 서문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치고 누구나 칼빈을 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 결국 2000년 기독교 역사 가운데 정통신학의 맥으로써 -”라고(한국 칼빈주의 연구원. 기독교문화협회 刊, p.6. 1986) 주장하였다. 이는 적어도 정통주의라고 하면 칼빈의 사상에 기초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이 주장은 최삼경씨가 외치는 “이단을 정죄하는 일이란 - 정통적인 교리에서 나와야 한다”는 정통교리의 맥을 말해 주고 있으며 교리적 배경이 무엇이냐를 시사해 주고 있다. 따라서 칼빈의 교리와 사상이야말로 정통주의를 표방하는 교회와 사상가들의 보루이며 흔히 말하는 정통교리의 핵심체를 형성해 주는 근거가 되고 있다.

 또한 정성구 교수는 자신의 저서 ‘칼빈주의 사상대계’라는 저서에서 “한국 교회에 있어서의 칼빈주의는 도리어 교회가 분열될 때, 자신들의 신앙이 역사적 정통신앙임을 내외에 천명할 때 써 먹는 구호가 되었다”고(정성구. 총신대학출판부. p.17. 1995) 말하고 있는데 이 지적에서 보듯이 정통주의 교회란 곧 칼빈주의 위에 서 있을 때 정통성이 주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정통교리에서 칼빈의 교리와 사상이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 뿐만 아니라 현대교회는 칼빈의 교리는 물론이거니와 칼빈의 생전에 어떤 마각적 행태들을 보였는지 최소한의 역사에 대해서 너무도 모르는 것이 많다. 칼빈의 정통만이 기독교 전부인양 맹신하는 것은 자기가 눈 X에 주저 앉아 있는 꼴이며 모기가 불보고 무조건 달려드는 것과 같이무모하기 이를데 없다. 왜냐하면 아무리 그 교리를 들추어 보아도 성경같이 보여 무조건 믿으려 들기에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지도 모르고 믿어 대고 있기 때문이다. 명백한 마귀사상인데도 가증스럽게도 기독교 교리라고, 성경이라고 맹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삼경씨가 정통교리를 내세우기에 그 교리를 말하라고 했더니 못밝히고 있는데 그 교리적 진상을 발본하기 전에 칼빈이 그 교리를 가지고 무슨 일을 자행했는지 그것부터 접근해 보자.
 
 1) 생사람을 불태우고 목잘라 죽인 현대판 가인인 칼빈과 종교국
 우리말에 ‘의붓 아버지 떡치는데는 가도 자기 친 아버지 도끼질 하는데는 안간다’는 말이 있듯이 소위 정통교리자들이 대충적으로, 동굴안에 돌던지기 식으로 번드름한 칼빈의 교리와 역사는 열심히 좇아다녀 대충 알고 있으리만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자기 교리에 맞지 않는다고 주먹과 법이 하나되어, 법치고 주먹치고 주먹치고 법치는 악부(惡婦)의 친 아버지 도끼질한 역사와 교리에 대해서는 제대로 가 본적이 없을테니 한번 제대로 가 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정통교리에 근거한 가증스러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란 명목하에 카톨릭과 마르틴 루터, 그리고 칼빈이 자행한 마귀사냥으로 희생된 사람들이 무려 10여만명에 이르는데 여기서는 칼빈이 행한 부분에 대하여 이를 증언한 것을 실으며 이 모든 일은 칼빈이 파렐과 함께 제네바 시에 직접 세운 종교국을 통해 자행하였으며 그가 실질적인 통치를 한 것을 장로교 지도자들은 거의 알고 있는 것이다.주린 고양이 쥐를 만난듯 살인을 일삼은 칼빈의 행적부터 먼저 살펴보자.
 
칼빈은 자신의 교리에 일치하지 않는다고 일생은 고사하고 통치를 시작한지 5년동안에만도 다음과 같은 만행을 저질렀는데 그 진상은 다음과 같다. “비교적 작은 이 도시(제네바)에서 35명이 산채로 화형 당하고, 13명이 교수대에 매달리고, 10명이 목이 잘리고, 76명이 추방 당했다. 테러를 피해서 도망친 사람의 수를 포함하지 않은 것이 그 정도다. (‘폭력에 대항한 양심’ Stefan Zweig, 자작나무. 1998, 4. p.128)라고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증언자는 칼빈에 대해서 “그는 교활한 살인 음모를 꾸미고 행하였다.”고(앞의 책, p.134) 증언하는데서 볼 수 있듯이 칼빈의 살인마적 음모는 누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자신에 의해서 끊임없이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죽인 예는 다양하다. 80세의 노파와 그의 딸을 사형시켰는데 그 처형이유란 그 딸의 자식들에게 세례 주는 것을 반대했다는 이유가 사유의 전부였다. 증언자에 의하면 “80세의 노파와 그녀의 딸이 처형장으로 함께 끌려 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 딸은 여섯 아이의 어머니였습니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세례주는 것을 거부한 것 외에는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습니다”고 (앞의 책, p.177) 하였다. 자식에게 세례주는 것을 거부했다는 것이 사형의 이유였다.
 “제네바의 토박이와 이민 온 사람 사이에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고 돌에 맞아 두 사람은 다쳤다. 마침 칼뱅은 그런 핑계거리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참이었다. 이 자그마한 난동은 금세 ‘끔직한 반역행위’로 부풀려졌다. 가장 끔찍한 고문으로 쥐어짜낸 폭동 계획에 대한 거짓자백을 근거로, 그리고 꾸며낸 국가 반역을 근거로 형리는 자기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때맞춰 제네바에서 도망치지 못한, 칼뱅에게 조금이라도 반대했던 사람들은 모두 처형 당했다.” (앞의 책, p.225) 이 단순한 사건이 대량살상으로 이어졌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데 이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제거작업으로 확대시켜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탈취했던 것이다.
 
토박이와 이민 온 사람 사이에 격렬한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그것을 반역으로 꾸며 칼뱅에게 조금이라도 반대했던 사람들은 모두 처형 했는데 그런 사람이 종교 개혁가인가? 한마디로 그가 종교 개혁가라는 것은 벙어리 시울 만지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허기진 강아지 뭉찌똥에 덤벼들듯이 무조건 믿어댄다면이야 무엇을 못믿겠느냐마는 칼빈이 이같은 엄청난 살인을 자행하고서도 종교개혁가라면 무슨 말을 더하겠는가? 이미 그의 마각의 사상적 토대가 인간사냥을 행하는데 결정적인 배경이 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수도 없는 사람들을 학살한 칼빈! 그는 영락없는 현대판 가인 그 자체였다. 칼빈은 자신의 예정설에 공공연히 반대 발언을 한 어떤 남자는 도시의 교차로에서 피가 날때까지 채찍질을 하고 난 뒤에 화형시켰고, 자크 그뤼에라는 사람은 칼빈을 위선자라고 불렀다는 이유만으로 고문당하고 처형당하였다.
 칼빈이 죽였든 그가 지배하고 주도하는 종교국이 죽였든 누가 죽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칼빈과 그 정통주의자들인 그들이 죽인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 칼빈이 그의 교리에 근거하여 그 살상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 칼빈은 종교를 빌미로 사람을 죽이는 살인마였던 것이다. 그가 죽인 사람들은 앞의 할머니와 여섯 자녀를 둔 어머니를 죽인 것에서 보았듯이 그들이 사형선고를 받을 만한 이유도, 명분도 없이 죽이고 싶으면 죽이는 것이었다.
 
 자식에게 세례를 받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 사형시켜야 하는 이유가 되는가? 토박이와 이민 온 사람 사이에 격렬한 싸움을 했다고 그것이 사형의 이유가 되는가? 칼빈을 위선자라고 불렀다고 그것이 사형의 이유가 되는가?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그것이 사형의 이유가 되는가? 칼빈과 그가 지배하는 종교국은 그런 이유들을 빌미로 닥치는대로 사람의 목을 자르고 산채로 화형에 처하였다. 그것도 샹펠광장에서 살아 있는 채로 불질러 처참하고 잔혹한 처형이 집행되어 광란의 거리로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우리가 직시해야만 하는 사실은 거룩한 광란을 일삼는 칼빈의 만행들이 과연 예수의 가르침에 근거한 기독교 종교개혁이었느냐 하는 것이다. 자기와 다른 의견을 가졌다고, 자신의 손에 권력과 힘이 있다고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무참하게 짓밟고, 남의 생명을 두꺼비 파리 잡아 먹듯이 수없는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그런 사람을 기독교 개혁가로 부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의 이름을 비난했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태워 버리고 목 잘라 버리는 것이 종교개혁이며 예수신앙의 정통인가 하는 것이다. 그런 살인자의 정통을 이어 받았다고, 그런 정통교리에 의거하여 오늘도 같은 성격의 정죄를 일삼는 최삼경씨와 그 정통의 가장 중심자리에 서 있다는 통합측 장로교의 이규호 총회장은 신앙양심을 가지고 한국교회 앞에 해명하시라.
 제네바시의 샹펠광장에서 생사람을 장작더미위에 올려 놓고 불태워 그 처참한 살상의 피바다가 온 도시를 덮었다. 이 일을 직접 주도한 흉악한 짐승처럼 거룩하게 날뛰는 칼빈과 종교국이 정녕 기독교의 정통인가 하는 것은 기독교 정체성을 밝히는 차원에서 철저하게 가려지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처참한 살인 사건들을 주도해 나갔던 칼빈이 살인자이지 종교개혁가라고 누가 말하던가? 더구나 그의 교리가 성경이 말하는 사상과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에 칼빈의 이런 살인마적 행위가 기독교 정통이라는 주장은 뒷간에 버려진 X묻은 걸레같은 괴변 (怪變)에 지나지 않는다.
 수백명을 교살한 칼빈은 살육의 맛을 아는 광신의 살인자이며 성경과 아무 상관없는 살인마적 요괴(妖怪)에 불과하다. 그의 교리와 신학의 진면목을 밝히고 나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그의 교리와 신학의 전모를 철저히 밝힐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 사상을 알고 난다면 그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이유를 능히 알고도 남는다. 칼빈과 그가 직접 지배하고 주도한 종교국의 행태들이야말로 간악하기 이를데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성경을 이용했을 뿐이지 성경과 아무 상관도 없는 사상를 가지고 살생을 밥먹듯 하였다. 그 배경에는 그 교리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살생은 성전(聖戰)이 아니라 살인, 그 자체인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보고 칼빈을 종교개혁가라고 부르는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획기적인 성경적 세계관을 새로이 열어 놓았는가? 아니면 새로운 성경에 근거한 새로운 세계를 위한 희망적 평화의 세계를 열어 놓았는가? 그가 성경을 말했는가, 예수의 가르침을 따랐는가? 그가 수많은 사람을 처참하게 죽인 것도 그냥 죽인 것이 아니다. 그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알듯이 그가 행한 행태들이 성경을 앞세웠지만 그것은 얼굴마담에 지나지 않을 뿐 그 사상의 내면을 드러내 보면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마귀사상이며 그것으로 살상적 행위가 가능했다는 것을 능히 알 수 있다. 그 나무에 그 열매라는 것이다.

 기독교 강요! 그 세계관적, 교리적 신학적 특징을 정통교단의 책임자들은 내놓아 보아라. 그것이 마귀의 사상이지 어디 성경이란 말인가? 이러한 세력들이 권세를 부리던 17세기에 아무 말도 못하던 서구의 세계가 시민사회와 시민운동이 도처에서 일어나면서 이러한 인간사냥과 살상이나 일삼던 정통교리에 근거한 기독교에 대해서 회의를 가지고 떠났던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보다 궁극적인 차원에서 세계관이나 학문과 문화등에서 중점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해체작업이 광범위하게 진행되어져 가기고 했지만 정통에 기초한 기독교인들이 저지른 엄청난 살상과 종교전쟁으로 인한 회의와 반대급부로 부상(浮上)한 시민사회 출현이 결국 1750년대 이후 급격한 기독교의 퇴조를 가져오는 결정적인 원인이 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여기에 바로 일명 정통교리자들의 마녀사냥으로 불리는 인간사냥에 의한 엄청난 살상과 테러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것이 서구인들이 기독교에 모멸적인 염증을 느끼게 한 심각한 원인중에 하나이다.
 
막스 웨버가 칼빈의 사상이 자본주의에 기여했다고 해서 대단한 사상가 처럼 떠 받치고 있고,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강제로 죽여 가면서 종교를 개혁했다고 개혁사상가로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막스 웨버가 말한 것들도, 그가 종교개혁했다는 마각의 역사도, 그의 교리적 신학사상도 신약성경에 기초하여 원천적이고 근본적인 재평가가 이루어 지지 않으면 안된다. 특히 정통교리에 대한 마각이 성경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야말로 기독교가 해결해야할 우선순위 제 1번의 과제이다.
 
 2) 칼빈과 그가 지배한 종교국은 사람들을 이런 방법으로 죽였다.
 칼빈은 세르베토라는 자신의 의견에 반대되는 사람을 산 채로 샹펠광장에서 화형에 처하면서 살인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와 종교국이 행한 흉잡한 행위들이란 차라리 악마가 발톱을 모두 내 놓고 벌인 거룩한 포식의 잔치자리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칼빈이 자행했던 그의 명령과 고문 방법을 살펴보자. 그는 “물에 빠트려 죽이고, 창자가 튀어 나오도록 꼬쟁이로 쑤시고, 소금으로 문지르고, 칼로 찢고, 불에 그을려 죽이고 죽음에 이르기 까지 가능한 한 천천히 온갖 방법으로 고통을 주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사람의 가죽을 벗기고 절단내는 살상을 저질렀다”고(앞의 책, p.193) 증언하는 살인마다운 끔찍한 명령과 고문을 보라. 그리고 “- 단순히 혐의만 받고 있는 사람에게도 너무도 잔인한 고문이 행해졌기 때문에 고발된 사람들은 고문실로 끌려가기보다는 차라리 목숨을 끊었다. 오히려 그(칼빈)의 권고에 따라 심문할 때에 나사로 엄지손가락을 조이는 고문과 밧줄로 잡아 당기는 고문외에 발바닥을 불로 지지는 고문까지 더해졌다.”는(앞의 책, p.80) 사실들이 무엇을 말해 주고 있는가?
 그의 입에서 나오는 ‘불에 그을려 죽이고 죽음에 이르기 까지 가능한 한 천천히 온갖 방법으로 고통을 주라는 명령이 과연 누구의 명령인가?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인가, 마귀의 명령인가? 살인마의 명령인가, 복음의 명령인가? 살인마가 사람 죽이며 식사하자는 소리가 아닌가! 마귀가 천사의 옷을 입고, 낮에는 수단을 사용하는 성경이란 화려한 옷을 입고 밤에는 칼을 들고 살륙하며 입맛 다시는 살인마 칼빈의 두얼굴을 보고 있지 않는가!

 이러한 살륙이 과연 어느 복음서에 나오는 소리인가? 악마의 땅 마련하여 미친여자 날뛰듯이 피로 물들여 가는 칼빈의 잔혹한 행위는 살인귀(殺人鬼) 그 자체이다. 이 마각의 정통주의자들은 중세 시대라고 변명해 댈 것이나 예수의 가르침이 중세시대라고 달라졌겠는가, 현대라고 변했겠는가? 자신의 의견에 반대된다고 창자가 튀어 나오도록 꼬쟁이로 쑤시고, 소금으로 문지르고, 칼로 찢고, 불에 그을려 죽이라고 명령하는 소리가 흡혈귀의 소리인지 예수의 소리인지 가려보아야 하지 않는가? 예수께서 이런 명령을 내리셨는지 이규호총회장은 해명하라.

 칼빈 자신의 권고에 따라 심문할 때에 나사로 엄지손가락을 조이는 고문과 밧줄로 잡아 당기는 고문외에 발바닥을 불로 지지는 고문까지 더하는 칼빈이 살인마인가, 복음에 기초한 기독교 개혁가인가? 그 정통을 말하는 이규호총회장은 해명하라. 이러한 살륙이 정통 기독교의 진면목이란 말인가? 만약 이것이 기독교라면 부패한 시체만도 못한 패자역체(悖子逆體)의 고물딱지를 당장 공동묘지에 갖다 묻어 버리든지 벽제 화장터에 가서 화장시켜 버려야만 하는 기독교가 아닌가? 성경을 도둑질한 도둑이 성전(聖戰)을 가장한 권력적 만행을 목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칼빈의 사상을 더욱 밝혀 보아야만 하는 것이다. 성경을 도둑질 했으면 그 도둑질한 흔적이 있을 것이 아닌가? 우리는 그 흔적을 밝혀 보아야만 칼빈이 자행한 살륙이 성전(聖戰)이 아니라 마귀의 요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한 칼빈의 정통을 이어 받았다는 이규호 총회장은 그렇게 자랑하는 ‘기독교강요’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그리고 자신들의 조직신학을 중심으로한 세계관적, 신학적 특징들과 교리적 특징들을 공개하라.

 카스텔리오가 지적하기를 “언제나 성서에서 자기에게 가장 유리하게 알맞은 부분들을 인용하는 칼뱅(칼빈)은,- 평범한 남자가 자기 집에 우상숭배에 물들고 가족 중 한 사람이 하나님께 저항하여도 칼을 빼들지 않으면 죄가 되는 판인데, 종교가 손상을 입는데 영주가 눈을 감고 있다면 이런 게으름은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서(칼뱅은 폭력사용을 정당화 하기 위해 계속해서 이 말을 함부로 쓰고 있다) 쓰라고 그들에게 칼이 주어진 것이다” (앞의책 p.175) 우리가 바로 보아야 하는 것은 “언제나 성서에서 자기에게 가장 유리하게 알맞은 부분들을 인용하는 칼뱅(칼빈)”이라는 것과 영주들에게 칼을 쥐어주어 살상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증언자는 칼빈이 다스린 이 도시(제네바)가 “칼뱅이 하나님의 이름을 내 걸고 지배하던 시기보다 더 많은 사형집행의 형벌, 고문, 추방 등을 제네바시는 겪은 적이 없었다”고 (앞의 책, p.80) 증언하고 있다. 이런 기독교와 성경의 탈을 쓰고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테러리스트를 기독교 정통이라고 천둥에 개 뛰어들듯 하는 것은 그 사상의 실체가 사탄사상이듯이 사탄의 농간이라는 말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한 천천히 온갖 방법으로 고통을 주라고 명령하는 명령’하면서 창자가 튀어 나오도록 꼬쟁이로 쑤시고, 소금으로 문지르고, 칼로 찢고, 불에 태워 죽이는 칼빈이야말로 성경을 앞세워 살상을 즐기는 점잖은 광병에 걸린 미치광이였다. 그의 사상이 기독교의 정통이라는 말은 죽은 자식 눈 열어보기다. 이제는 그의 정통교리야말로 역사이래 최대의 사기극이었다는 것을 밝힐 때가 되었다. 정통교리가 성경이라는 거짓말은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뱀머리보다 높이 쳐든 가장 사악한 마수(魔手)의 논리이다. 우리는 가시적으로 드러난 논리에만 맹신할 것이 아니다. 두눈 똑바로 뜨고 두터운 겹겹으로 둘러싸인 숨겨진 마각의 속껍데기를 지나 그 속내를 철저히 밝혀야만 한다.

 칼빈처럼 자신의 의견에 반대되는 사람들을 살상하는 것이 기독교 정통이라면 오늘날에도 칼빈주의에 어긋나면 칼빈처럼 광화문 네거리에서든지 아니면 서울시청앞 광장에서든지 장작더미 위에 사람을 올려 놓고 불질러 죽이든지 아니면 목잘라 죽여야 하는 것 아닌가? 왜 칼빈의 사상과 그 행동을 따른다는 사람들이 칼빈을 따라 사람을 그렇게 못 죽이는가? 그 정통을 이어 받았다면 그 정통을 따라 그렇게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사명감이 찌그러 들었는가? 아니면 시간따라 변화난측(變化難測)하게 변하는 칼빈의 하나님이 또 변통을 일으키셨는가? 그것도 아니면 오늘의 시대에 칼빈의 교리자들이 칼빈과 같이 마구 사람을 죽이지 못하는 것은 그럴 힘이 없는 미물로 진화 되었는가? 궁극적으로 성경과 상관없는 칼빈이 누구이기에 그의 이름만 비난해도 사람을 처참하게 고문하며 칼로, 교수대로, 불타는 화염으로 남의 생명을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인가! 도대체 그의 교리가 무엇이길래 사람을 온갖 방법으로 난도질 할 수 있다는 것인가!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결단코 그의 사상적 기초는 성경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칼빈이야말로 성경을 빌미로,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빌미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권리가 없는 인물이다. 칼빈이 자신의 사상에 어긋난다고 사람들을 죽인 것은 명백한 살인이며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칼빈에 대한 살인적 역사는 재조명되지 않으면 안된다.

 칼빈의 사상이 ‘바울에 기초하고 있다’고 틈만 나면 주장하는데 바울의 몇마디를 자신들의 이마에 붙여 놓고 그래서 자신들의 사상이 정통이라고 외치며 유형무형의 살인을 일삼았던 것이다. 그들은 마치 서울에서 부산을 가고자 출발하였는데 얼마쯤 가다 큰 도시 천안이 나오니 천안에 내려 여기가 부산이라며 우기고 있는 것이다. 거기가 부산이 아니라 천안이라고 하면 자신의 주장과 다르다고 그 사람을 죽이는 살인행위를 일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어디 그 뿐이랴 그 정통은 천안이란 명칭을 아예 부산으로 바꾸어 놓았고 그 바꾸어 놓은 거짓부산 즉 천안같이 안생겼으면 모두 이단이라고 매도하고 있는 것이다. 하도 최삼경씨가 거짓부산이 아니면 이단이라고 하기에 지도를 펴들고 거기가 천안이지 부산이라는 증거를 보이라고 하니 말을 못하고 서 있는 것이다.
 
거짓교리인 정통신학은 반드시 규명되어져야만 한다. 그나마 정통교리라는 사상이 성경이라고 한다면 명분이라도 있겠지만 결단코 그의 사상은 성경이 아니다. 성경과 상관없이 살인마적 행위를 자행한 칼빈이야말로 종교 테러리스트인 것이다. 시대적 양상은 다르지만 최삼경씨가 주장하는 그 정통이라 전자에 대한 정통이며 대표적인 교단이 최삼경씨가 소속하여 활동하고 있고 이규호 총회장이 이끄는 통합측 장로교단이다. 칼빈과 최삼경씨가 같은 것은 같은 교리를 가지고 행한다는 것이 같고, 다른 것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구조물, 그 말도 되지않는 정통교리라는 것을 지키기 위해 칼빈은 사람들을 얼마든지 죽일 수 있는 권력이 주어져 있었고 최삼경씨에게는 그 권력이 없다는 것 뿐이다. 최삼경씨가 정통교리에서 벗어나면 이단이라고 외치는 그 행태의 원조가 칼빈에게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정통교리의 축성자 칼빈에 의한 정죄가 최삼경씨에게 정통으로 이어져 내려 오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정성구 교수는 ‘칼빈주의 사상대계’란 저서에서 ‘장로교는 칼빈주의 사상에 기초한 것이다’라고( 정성구. 총신대학출판부. p.43) 주장하고 있는데 그의 신학을 정통으로 이어 받았다고 주장하고 자랑하는 통합측 장로교의 이규호 총회장은 과연 칼빈이 살인자인지 종교개혁가인가를 밝히고 해명하라. 우리가 똑바로 서서 지켜보고자 하는 것은 최삼경씨를 등에 업은 이규호 총회장을 위시한 정통교단의 정통주의자들은 칼빈이 연출해낸 열매들의 나무가 되는 그 전래지풍(傳來之風) 악독(惡毒) 교리를 그 뿌리에서부터 낱낱이 드러내 보여야할 책임을 얼마나 성실히 이행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추접스러운 교권밖엔 가지고 나올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한가지 유념해 두어야 할 것은 이 시점의 역사가 요구하는 바, 얼굴없는 교권이 아니라 그 교권의 칼자루 되는 교리를 내놓으라는 것이다. 정녕 귀하의 교단들이 신앙양심이 있다면 그 교권이 무슨 세력에 의한 교권이며 어디에 기원된 교권인지 성경적 근거들부터 밝히고 다음 문제를 생각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는가? 과연 그 교리가 성경인지 강도의 교리인지 그것부터 가려야 할 것이다.

     2000년 7월 9일
     21세기 교회신앙 연구원
     원장 심 상 용 목사
     ☎ 02<&23927>834<&23927>7964   2000년 7월 9일(일요일) 들소리신문 제941호10전면광고최삼경 씨에 대한 공개질의 (8) 최삼경씨의 정통교리 축성자 칼빈, 그가 목자르고 화형시킨 형제들의 핏소리! 이규호총회장은 해명하라후원자를 찾습니다* 한국교회 대개혁을 위해 교회와 역사 앞에 이 글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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