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쪼록 말씀에 젖게 하셔서 - 초창기의 수양회


우리 교회의 초창기에는 수양회를 할 때마다 물질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요즘이야 형제 자매들이 많아져서 수양회 준비하는 데 물질적으로는 별로 부담이 안 되는 편이지만, 그때에는 수양회는 시작해야 하는데, 날짜는 점점 다가오고 물질은 하나도 없어 애가 탔다. 시작하는 날 준비해야 할 것도 있지만, 열흘 전쯤에 준비해 둬야 할 것도 있었다. 김치나 밑반찬 같은 것은 늦어도 삼사일 전에는 준비되어야 하는데, 물질이 전혀 없어서 우리는 기도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하나님, 수양회는 당신이 기뻐하시는 것이니까, 당신이 알아서 하십시오. 없으면 없는 대로 저희들은 그냥 하겠습니다.”
기도는 그렇게 하면서도 마음에는 자꾸 염려가 되어 다시 기도를 했다.
“하나님, 물질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수양회가 임박하여 하나님께서 물질을 조금씩 주셨는데, 당시에는 하나님이 그렇게 인색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우리에게 백만 원 가량 필요하다면 팔십만 원쯤이라도 주셔야 하는데, 이, 삼십만 원밖에 안 주시면 진짜 고민스러워진다. 그래서 머리를 맞대고 이 물질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했다. 나는 수양회를 여러 번 준비해 보았는데, 인원 몇 명이 식사 몇 끼를 하면 얼마 정도의 물질이 필요한지를 잘 알았다. 한 끼당 드는 주식비와 부식비의 합을 차례로 곱하면 계산이 딱 나온다. 그래서 장부 한번만 보면 돈을 많이 썼는지 적게 썼는지 다 아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고 드니까 사람들 보기에 나는 까다로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내 아내가 돈 쓴 것을 보면서, “세상에, 당신은 돈을 땅에서 캐내는 줄 아나?” 하며 짜증도 내 보지만, 사실 짜증도 뭐가 어느 정도 있어야 나는 것이지, 부족한 것이 너무 많으니까 짜증낼 나위도 안 되었다. 아내는 아내대로 바짝 긴장하여 최대한 아껴쓴 흔적이 역력히 보이는데, 그것을 가지고 짜증낼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결국 우리는 이런 기도를 하게 되었다.
“하나님, 이젠 딴 방법이 없습니다. 모기가 이렇게 많아도 모기약 살 돈이 없습니다. 아무쪼록 이번 집회 때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말씀 속에 젖어서 모기에 물리는 것을 느끼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잠자리 준비도 제대로 안 되었는데, 말씀 속에 젖어서 전혀 잠자리가 불편한 줄을 못 느끼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우리가 준비한 음식은 너무 박한 식물인데, 그들이 말씀에 충만하게 젖어서 음식이 나쁜 줄을 전혀 못 느끼게 해 주십시오.”
수양회가 임박하여 마지막으로 하는 우리의 기도는 대부분 그런 내용이었다. 그런데 수양회를 마치고 난 후에는 우리에게 눈물겨운 일들이 참 많았다. 우리야 아무렇게나 먹고 살던 사람들이지만, 도회지에서 잘 먹고 살던 사람들이 수양회에 와서 우리가 준비한 그 음식을 먹고는 맛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잠자리도 불편했고, 화장실도 엉망이었지만, 사람들이 전혀 그런 것을 느끼지 못했다. 모기에게 뜯겨가면서 말씀을 듣느라 여기저기서 연방 박수 소리(?)가 났지만, 그렇게 말씀을 들으면서도 전혀 불편한 것을 느끼지 못하니까 우리 마음이 얼마나 주님 앞에 감사했는지 모른다.

요즘 수양회는 그때에 비하면 너무 편하고 좋은 환경 속에서 치러진다. 수양회 일 주일 전에 전국의 사역자들이 다 모여서 송호 솔밭 일대에 소독약을 뿌리고, 모기약과 살충제를 써서 모기나 벌레를 다 제거하며, 토치 램프를 켜서 벌도 다 내어쫓고, 뱀도 다 잡아낸다. 잡초나 나무 뿌리를 다 캐내고, 텐트 칠 장소를 다 정리해 놓는데, 그렇게 모든 준비를 다 해 놓고 수양회를 시작하니까 좋지만, 그때는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래도 그때 사람들이 말씀 속에 젖으니까, 그들 마음에 음식, 잠자리, 화장실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수양회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죄 사함을 확신했으며, 그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기쁨과 평안을 충만히 가지고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볼 때에 우리들 마음에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한, 부족함과 어려움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에게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고, 모든 형편이 원만하다면 우리가 그 가운데서 주님 앞에 기도해야 할 일이 어디에 있고, 은혜를 입어야 할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30평 짜리 아파트에 어찌 사노!’ 하고 불평을 한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지 않기 때문에 30평 짜리 아파트가 문제가 되지, 복음을 전한다면 층계 밑 방에 사는 것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개구리는 올챙이 시절을 겪지 않고서는 절대로 개구리가 될 수 없듯이, 예수 안에서 우리도 고통과 어려움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기쁨과 소망을 얻을 수 없다. 주님은 하늘의 위로를 만들어 주시려고 먼저 우리에게 환난과 어려움을 주신다. 예수 안에서는 슬픔이 언제까지나 슬픔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기쁨으로 바뀌는 것이다. 만일 슬픔이 여전히 슬픔이고, 고통이 여전히 고통이라면 그 사람은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아니다.
해마다 수양회를 치르면서 우리를 뜨겁게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며 깊은 감사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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