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 손가락에 돋아난 무사마귀
10여년전 새끼 손고락 끝에 무사마귀가 하나가 돋아났다.
그 무사마귀는 공알만큼 크더니 겉이 하얗게 피었다.

점잖은 체면에 보기도 싫고 무용지물인 그 무사마귀가 항상
눈에 거스리고 신경이 쓰였다.

차를 마실때라든지 누구와 이야기를 할때든지 의식적으로
가리우고 보이고 싶지 않았다.

여러 방법을 써보았지만 제거되지 않았다.
나는 궁리 끝에 담배를 한갑사다가 담배에 불을 붙여 담배불로
무사마귀를 지졌다.
무사마귀가 하얗게 익었다.
면도칼로 쓸어냈다. 매끈해졌다. 그런데 15일쯤 지난후 다시
돋아나기 시작하드니 두어달쯤후에는 다시 그전만큼 컸졌다.

담배불로 다시 지졌다. 먼저 보다 더욱 지져 태웠다.
이번에는 죽었겠지!
그러나 또 돋아났다. 아! 지독한 놈이다.
꼭 나의 자아의 혼과도 같은 것이다. 나라는 것에 대한 애착과
나의 생각. 내가 발견한 것에 대한 애착. 나의 발명특허에 대한
애착.내가 이룬 공로에 대한 애착.나를 나타내려는 애착.나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애착.

자아에 대한 애착은 새끼손고락 끝에 돋아난 무사마귀 같이
쉽게 죽지않는다. 태워 죽였는가 하면 그 뿌리가 남아있어
다시 돋아난다.

그것은 가나안 땅 안식의 믿음에 들어가서도 성령님의 능력과
말씀에 의하여 무너트려야하는 원주민(자아의 옛사람)의 성
여리고 성과 아이성과도 같이 강력한 성이다.
그 성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말씀의 법궤를 앞세우고 6일 동안 하루에 한번씩 일곱번(완전수)
돌고 마지막 7일째날은 7번 계속 돌은 후에야 무너지는
여리고성과도 같은 것이 자아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고 말씀을 따라 주님 가신 길을
가다보면 주님과함께 십자가에 못박히는 날이 이른다.
내가 죽었음이 진정 믿음으로 이루어진 것이 확인된후
그렇게 죽은 것같이 장사되었다가 오직 주님의 생명만이
나의 생명의 주인임이 믿어지는 날이 오는데 그날부터 주님의
생명이 나를 주관하고 이끌어가는 계획에 나를 맡기고
조금씩 순종하게 되며 주님의 생명을 더욱 깊이 깨달아가며
주님의 생명이 나를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이 부활하신 주님의 생명에 동참하는 삶이다.

그렇고 다시 무사마귀 이야기로 되돌아가서.....
그 무사마귀는 죽지않고 다시 돋아났다.
나.나.나. 자아의 뿌리는 쉽게 죽지 않는다.
잠시 기절했다가 되 살아나는 불사조 같은 놈이다.

나는 이번에는 마른 쑥을 비벼 다시 돋아 자란 무사마귀위에
올려놓고(콩알만큼) 불을 붙였다.
그 뜨거움이란...
이번에는 그 무사마귀가 까맣게 탔다.
그후로 다시 돋지 않았다. 자아와도 같은 무사마귀의 뿌리까지
죽은 것이다.
주님도 우리의 자아를 죽이기 위해 이렇게 불같은 시험도
연단도 주시는데 그붉은 자아가 완전히 죽을때까지 계속된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5:24)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갈2:20)

나는 자아가 죽었고 주님이 나의 생명이 되었다고 말하고
설교하는 사람들은 보았지만 정작 그에게서 주님의 생명이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오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그리스도의 사람을 찾아 보기는 드문일이다.
주님은 이런 자를 통해 진정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을 전하기를
기뻐하시고 주님 자신의 생명으로 심으시는 것을 본다.

나는 박옥수 목사님에게서 그런 향기를 조금 느끼고 맛보았다.
그분의 겸손을 보았다.
몇년전에 비록 삼사분여 짧은 만남이었지만 나의 영은 그의 영을
감지했다. 그 분도 나를 감지했다.
그후 박옥수 목사님이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이끌어 나가는
기쁜 소식 선교회에 소망을 걸고 기대를 두었다.

또한 주님께서도 계시로 보여주시기도 하셨다.
이 선교회에서 추수의 열매들이 나타날 것도 보여주셨다.

나는 주님의 말씀만이 나타나기를 원한다.
주님의 향기만이 나타나기를 원한다.
주님만이 영광받기를 원한다.
나를 밝히면 육체로 판단하고 무시한다.
"그는 누구다. 그의 아버지는 누군데 어찌 그곳에서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느냐?"

영의 눈을 뜨지 못하고 육(자아)에 속한 자들의 판단은
항상 그렇다.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나는 그들과 논쟁하고 싶지 않다. 내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다.

"들을 귀 있는 자들은 성령이 교회 들에게 하시는 음성을
들을 것이다."

나는 누가 무슨 소리를 하여도 그 말로 인하여서가 아니라
그가 진정 죽고 부활한 자인가를 영으로 그 영을 감지한다.
그 분별은 어긋난 적이 없다.

누구의 말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쀼ㄹ라의 땅에 산다면 그 땅에서 난 열매를
보이라고 할 것이다. 쀼ㄹ라의 땅에 산다면서 들포도 열매를
보인다면 누가 쀼ㄹ라의 땅에 산다는 것을 인정할 것인가?

나는 이곳에 올려지는 글을 쓴 분들의 마음상태도 감지한다.
그래서 어떤때는 크게 위안 받고 영의 친밀한 교류를 느끼지만
어떤 글을 볼때는 걱정스러울때도 있다.

그 견고한 자아의 성은 언제 무너질 것인가!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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