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8일 박옥수목사 토요영상교제 말씀

역대하 28 1절입니다.

아하스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세라. 예루살렘에서 십 륙년을 치리하였으나 그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치 아니하고.’

한절 읽었습니다.

이사야서 1장을 읽어보면,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에 이사야가 선지자로 일을 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사야는 선지자로 일을 하면서 웃시야 때, 그 다음에 그 아들 요담 시대에, 그리고 아하스 시대에, 그리고 이제 마지막 히스기야 시대, 4대 왕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종으로 일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거기 보면 웃시야도 하나님을 참 진실하게 섬겼는데 그가 실수해서 성전에 제사 드리려고 하다가 문둥이가 되는 벌을 받지요. 그 아들 요담은 정말 진실하게 하나님을 섬겼고, 또 이제 아버지가 성전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조심해서 아버지처럼 교만하지 않게 성실하게 나라를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28 1절에 아하시아스 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하스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 륙년을 치리하였으나 그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치 아니하고.’ 웃시야 왕도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겼고, 요담 왕도 하나님을 섬겼고, 그 다음에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도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겼는데, ‘왜 아하스는 하나님을 버리고 열 왕의 신들, 다른 우상에게 절하고, 아스다롯에게 절하고, 그런 삶을 살았을까?’ 생각해보면 정말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하스가 이제 어릴 때 할아버지 웃시야, 아버지 요담이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고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고 잘 보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데 관심을 두지 아니하고 자기 육신의 삶의 관심을 두니까 아버지 요담이나 할아버지 웃시야가 섬기는 하나님을 깊이 모르니까, 아하스가 하나님을 섬기는 게 참 부담스러운 겁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신앙 생활을 할 때 그냥 대충 신앙 생활을 하면 몰라도, 정확하게 신앙을 생활하려고 하면 어떤 마음이 일어나냐 하면 하나님을 믿을 자신이 없는 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을까?’ 그래서 이제 선지자 사무엘 시대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구하는 일이 있었는데 선지자 사무엘이 있는데, 하나님이 계시는데, 사무엘이 있는데, 또 무슨 왕을 구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나님도 그렇게 생각하고 사무엘도 그랬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구지 왕을 원했던 것입니다. 이유는 뭐냐 하면 하나님이 계시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고, 선지자 사무엘이 있지만 그는 너무 믿음이 깊은 사람이니까 나는 하나님에게 도달할 수도 없고, 사무엘에게 도달할 수가 없으니까 조금 더 인간적인 사람을 용납해주는 사람적인 사람을 그들이 왕으로 세우길 원해서 사울을 세웠던 것이지요. 우리 인간들이,  제가 사람들을 만나보면 내가 믿음으로 살려고 마음을 갖은 사람보다도 적당하게 살려고 하는 마음들이 참 많아요.

조금 전에도 어떤 청년하고 같이 상담을 했는데, 만일에 네가 복음 위해 살다가 어느 날 복음 위해 죽었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이 너 하는 일을 왜 안 돕겠냐? 분명히 도우시고 하나님은 너를 축복하시고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에 그보다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너는 아예 어떤 마음을 가지냐 하면, 난 믿음으로 완벽하게 살 수 없을 거 같아. 모자랄 거 같아. 아예 믿음 없는 쪽에 삶을 살려고 기울이는 거죠. 그런데 문제는 믿음은 믿음으로 살아도 되고 믿음 없이 살면 되는 게 아니고 믿음은 반드시 살아야 하나님이 역사하시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세상적으로 흘러가도 될 줄 알고 생각을 했던 거죠.

이 아하스가 왕이 되면서 우리 할아버지 웃시야는 하나님을 너무 진실하게 섬기셨어. 그런데 실수하셔서 성전에 제사 들어갔다가 문둥이가 되셨어. 우리 아버지 요담은 정말 침착하시고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이 복을 주셨어. 그럼 나는 어떡해 할까? 내가 할아버지처럼 잘 할 수 있을까? 그 다음에 아버지처럼 믿음으로 살 수 있을까? 나는 그러지 못할 거 같애. 그럴 바에야 하나님이 아닌 열 왕들이 섬기는 우상을 섬기는 게 좋지 않겠어? 우상은 신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우리가 정성만 들여서 자기가 뭐 우리를 삶을 간섭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우상이 내게는 훨씬 편하고 좋을 거 같애.’ 아하스가 생각하기를 할아버지가 믿은 하나님, 그리고 아버지가 믿은 그 하나님, 그 믿음을 따라 사는 게 좋긴 하지만 자신이 없으니까 믿음으로 안 살아도 될 줄로 아하스는 생각하고 믿음의 길이 너무 부담스러우니까 그냥 열 왕이 걸어가는 우상을 섬기고 그쪽으로 아하스가 마음을 기울이는 것을 정확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그냥 수천 년 전에 왕들의 역사에 일어난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 삶에도 이런 일이 참 많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게 어려울 거 같고, 부담스러울 거 같고, 사단이 그 마음을 주니까 내 육신의 생각대로 사는 게 편할 거 같고, 잘 될 것 같고, 안일할 거 같은 그런 마음이 드니까 참 많은 인간 방법으로 가는 쪽으로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죠. 아하스는 그래서 하나님을 버리고 열 왕을 따라 우상을 섬기고, 우상에게 절하는 그 쪽을 선택했습니다. 웃시야 때 부강했던 나라가, 요담 때 부강했던 나라가 아하스가 왕이 되면서 그 쪽 나라가 완전히 패망을 한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하고, 여기 5절에 그러므로 그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람 왕의 에 붙이시매 저희가 쳐서 심히 많은 무리를 사로잡아 가지고 사람 잡아가지고 다메섹으로 갔으며 또 이스라엘 왕의 에 붙이시매 저가 쳐서 크게 살륙하였으니 이는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르말랴의 아들 베가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이스라엘 왕인데) 유다에서 하루 동안에 용사 십 이만 명을 죽였고. 에브라임의 용사 시그리는 왕의 아들 마아세야와 궁내대신 아스리감을 죽였고 총리대신 엘가나를 죽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 형제 중에서 그 아내와 자녀 합하여 이십 만 명을 사로잡고. 예루살렘에서 십이 만 명이 죽고, 이십 만 명이 포로로 잡혀 가고, 그냥 그래도 될 줄 알았는데 그 결과가 유다가 완전히 망하는 그런 일들을 겪는 겁니다.

사람들은 내가 그냥 적당히 될 줄로 생각하는데, 그런 길들이 어떤지 전혀 깨닫지 못하는데 정말 그 길은 너무나 위험하고 험한 일입니다. 그래서 이제 아하스가 죽으면서 히스기야는 그것을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그래서 왕이 되는 그 때부터 하나님을 섬기고 그러면서 다만 유다 나라가 히스기야로 말미암아 부강해지는 모양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단은 지금도 계속해서 우리를 속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게 부담스러울 것 같고 인간적으로 보면 잘 될 거 같고, 행복할 거 같고 그런데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부담스러운 게 아니라 큰 축복의 길이 열리고 인간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저주고 멸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도 사단은 여러분들에게 속삭입니다. ‘복음을 위해 사는 것은 너무 힘들어. 고통스러워. 육으로 흘러가야 해.’ 그렇게 말합니다. 그 결과를 보면 너무나 무서운 것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그냥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한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사야 선지자가 있는 그 시대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길을 가지 아니한 그 아하스, 너무 비참해 졌는데, 여러분 믿음으로 달려가야 할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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