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2회] 박옥수목사 9월 19일 토요영상교제 말씀

누가복음 15 17절입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너무 잘아는 이야기인데, 최근에 우리가 마인드교육이라고 해서 많은 젊은 분들이 마인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깜짝깜짝 놀라고 세상 어디에서도 만나질 수 없는 그 귀한 마음의 세계들을 성경을 통해 만나면서 성경 속에 역사하신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살아 일하시는걸 볼 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많은 재산을 들고 먼 나라에 갔습니다. 그 허랑방탕하여 모든 재산을 다 낭비하고 난 뒤에, 탕진한 뒤에 그는 돼지우리에 와서 삶을 시작합니다. 추하고 더럽고 춥고 배고프고 비참한데, 자주자주 이야기를 했지만 예수님은 탕자에게 두 가지 그림을 그렸는데 인간의 가장 처참한 모양과 가장 밝은 모양을 그림으로 그리셨습니다. 탕자가 돼지우리에 있을 때 인간의 가장 어두운 삶을 그려낸 모양 그대로였고, 반대로 탕자가 아버지 집에 돌아왔을 때 제일 좋은 옷을 입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고 살진 송아지를 먹으며 사는 그 삶이 인간의 가장 복되고 영광스런 삶을 가리켰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 살다 보면 자기가 원치 않지만 어려운 가운데 고통 가운데 괴로운 가운데 처절한 가운데 비참한 가운데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 성경은 그러한 가운데 빠져있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거기서 벗어나서 밝고 복된 삶으로 나가는 길을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이 핵심적인 이야기가 오늘 읽은 17절인데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야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이 탕자의 말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느냐 하면은 탕자가 몸이 아버지의 집에 못 가고 돼지 우리에 있는데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만들 때 몸과 마음을 전혀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몸은 감옥에 갈 수가 있고 몸은 쇠사슬에 잡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어떤 사슬로 마음을 묶습니까? 어떤 철창으로 마음을 가둬놓습니까? 전혀 불가능 하다는 거죠. 마음은 전혀 불가능합니다. 근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몸이 병들면 마음도 병들고 몸이 어려우면 마음도 어려워하는 것입니다.

 

마리아와 마르다가 있었는데 어느 날 오빠가 병듭니다. ‘아 오빠가 이러면 죽을는지 몰라.’ 죽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 마음 속에 동일하게 아 우리 오빠가 죽었다.’ 마음도 같이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근데 성경을 제가 읽어보면 예수님은 우리가 고통 속에 있을 때 괴로움 속에 있을 때 몸이 가난에 빠지고 병에 걸리고 어려움을 당하고 교통사고, 그런 건 몸이 당하는데 마음은 같이 몸에 따라 같이 고통 속에 있으면 거기서 벗어날 수가 없죠. 마음을 먼저 거기서 끄집어내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리로 이끈다는 거죠. 그러기 위하여 하나님이 마음을 만들 때 몸과 같이 만들지 않았고 몸처럼 어디 묶을 수도 없고 가둬둘 수도 없도록 마음을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아프리카 갈 때 비행기표를 돈을 많이 주고 사고 그 다음에 또 여권도 준비하고 옷도 준비하고 여비도 준비하고 그리고 이제 아프리카 여행을 시작합니다. 그건 몸입니다. 마음이 아프리카 가는데 하루에 몇 번씩 왔다 갔다 비행기 안 타죠. 비행기표도 필요 없고 여권이나 비자가 전혀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은 몸보다 훨씬 자유로운데 몸이 매인다고 마음이 매여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뭐를 가르쳐주냐 하면은 몸은 병들었지만 마음을 이제 거기서 끄집어 내는 법, 몸은 돼지우리에서 비참하게 살지만 마음은 거기서 나와서 아버지 집에 가는 법, 그걸 가르칩니다. 그래, 누가복음 15장 탕자이야기에서 가장 결정적인 이야기는 돼지우리에 쥐엄열매를 먹고 더러운 돼지와 함께 누워있는 둘째 아들의 마음을 끌어서 아버지 집으로 달려가게 만듭니다. 마음이 여전히 돼지우리의 더럽고 추한 것만 본다면 문제가 되는데, 마음은 돼지우리를 떠나서 아버지 집에 가 봅니다. 비행기 표도 안 들고 여비도 안 들고 돈도 안 들잖아요. 가서 이른 아침에 아버지를 보니까 아버지가 나와서 품꾼들에게 일을 맡기고 종들에게 일을 시킵니다. 그리고 점심 때가 되어서 수레에다 밥을 잔뜩 싣고 논 한 가운데로 오죠. 수많은 일꾼들이 나와서 수레에 음식을 내어 같이 먹습니다. 둘째 아들의 마음이 거기까지 가보니까 아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풍족하고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아버지 집에 가니까 품꾼들도 배부르게 먹는데 나는 이제 주려 죽네. 아버지 집이 좋네.’ 마음이 먼저 아버지 집에 가보니까 정말 그 품꾼들도 배불리 먹고 있는 겁니다. 자기는 아들인데. 그걸 보고 둘째 아들이 아버지 집을 향해 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집을 향해 갔을 때 아버지를 만납니다. 아버지가 제일 좋은 옷을 입혀 주시고 손에 가락지를 끼워주시고 발에 신을 신기시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내 잡게 해서 복되게, 영광스럽게 하는 모양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하시는 것은 우리 몸과 마음을 같이, 똑같게 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몸이 감옥에 있어도 마음은 아버지 집에 가 있을 수 있고 몸은 돼지우리에 있어도 마음은 기쁜, 즐거운 연회 장소에 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우리 몸이 병들었다고 마음까지 난 병들어 못 걸어가.’ 그러면 거기서 벗어날 수 없는데,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 마음을 일으킵니다. 몸이 병들어 베데스다 연못가에 누워 있는데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 넌 걸어갈 수 있어.’ 무슨 얘기 합니까? 마음에게 걸어가 보라고 내 말을 믿어 보라고 따라 보라고. ‘나 안 되는데. 몸이 병들어... ’ ‘그래! 내 말 들어봐! 따라봐!’ 38년 된 병자가 몸은 누워있는데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그 마음이 몸을 일으켰습니다.

 

둘째 아들이 마음이 아버지 집에 가니까 몸도 따라가 복을 받듯이, 우리는 항상 어려우면 마음도 절망 속에 빠지는데 여러분들의 마음도 몸하고 다르게 지었기 때문에 여러분 마음이 절망이나 고통이나 병이나 근심에 빠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어려움 속에 있을 때 병에 젖어 있을 때 그래. 내겐 하나님이 계셔. 하나님 나를 축복하셔. 하나님 능히 나를 건질 수 있어. 낫게 할 수 있어.’ 그래서 병든 나 보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마음이 그쪽으로 향하면 내가 낫겠다는 믿음 쪽으로 마음이 기울여지면 그 때 하나님은 우리 속에 능력으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참 많은 사람들이 마약에 빠지면 마음도 마약에 빠지고 아이 나는 안돼. 해봐서 나는 안돼.’ 도박꾼도 그렇고 게임 중독자도 그렇고 잘못된 습관 속에 빠진 사람도 몇 번 벗어나 보려고 해도 아 난 안 되는구나그렇게 말합니다. 참 하나님의 사람들은 내가 도박에 빠졌지만 내가 보는 형편 말고 성경은 뭐라고 말하는가.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시네. 나 온전하다고 하시네. 십자가의 피로 거룩하게 됐다고 하시네. 그러면 그 말이 맞아.’ 내가 볼 때 분명 죄인인 것 맞지만 성경 말씀에서 날보고 의롭다고 거룩하고 죄가 씻어졌다고 하시면 나는 이제 그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말씀대로 믿음대로 이루어져서 38년 된 병자가 걷고 문둥병자가 낫고 눈 먼 소경이 눈을 뜨고, 그렇듯이 우리 삶을 그 예수님 말씀 믿는 믿음으로, 지금까지 내 모양, 형편에 빠져있던 마음을 떠나서 하나님 약속을 믿는 믿음을 가졌을 때 하나님 그렇게 일하신다는 사실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성경다운 삶을 삽시다. 우리 형편을 보지 말고 우리 속에 역사하시는 주님에게 기대와 소망을 가지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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