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8회] 박옥수 목사 2월 8일 영상교제 말씀

요한복음 8 7절입니다.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요한복음 8장은 제가 하도 말씀을 많이 전해서 제가 다 외우다시피 하는 이야기이고, 우리가 너무 많이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새로 볼 때마다 이 성경 말씀 속에 새로운 하나님의 세계가 있고 말씀이 너무 감사합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왔습니다. 와서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런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늘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서기관들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이 대답할 것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돌로 치라고 하겠지. 그러면 말이 안 되는 것이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이 돌로 치라는 것이 말이 안되고, 돌로 치지 말라고 하시겠지? 그러면 모세의 율법에 돌에 치라고 하니까, 이래도 걸리고 저래도 걸리니까 이런 예수님의 목덜미를 잡았다고 생각하고 그들은 자신만만하고 의기 양양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하고 예수님의 생각의 대답하는 것은 전혀 다른 대답이었습니다.

 

간음한 여자가 간음하다가 잡혀서 돌에 맞아 끌려 가다가 예수님 앞에 왔습니다.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이 말했지요.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돌로 치라 그랬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간음한 여자가 생각했을 거예요. ‘예수님 뭐라고 하실까? 안될거야. 나는 간음하다가 현장에 잡혔는데. 예수님이시라도 나를 구원하지 못할거야. 난 죽어야 할거야.’ 아마 그렇게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생각은 우리 생각하고 다르시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생각했던 그 범위하고 훨씬 다른 방향의 예수님의 마음은 머물러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입니다. 우리의 마음하고 예수님의 마음이 있는데 우리의 마음은 악하고, 추하고, 거짓되고, 변덕이 많고 그런 마음입니다. 우린 그런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면 될 줄 생각하고, 그런 마음으로 선을 행할려고 하고 있고, 그런 마음으로 열심히 기도하면 잘 될거라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리 내가 선을 행하고 싶어도 원래 마음이 더럽기 때문에, 막 의식하고 선을 행할려고 할 때마다 선을 행하는 척하지만 금방 악으로 내 마음이 변해버리고, 내가 아무리 진실히 하고 싶어도 우리 마음 자체가 진실하지 않기 때문에 진실해야지.’ 하면서 잘하면 될 것 같은데 금방 진실에서 내가 떠나버리고 그래서 우리 인간의 삶이 망쳐지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더럽고 추한 마음 안에서 진실할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더러우니까. 더러운 마음 가지고 선하게 살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악하고 더러운 이 마음 가지고 우리가 기쁘게 행복하게 할려고 하는데 그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려면 예수님이 가진 그 마음이 있어야 선이 되는 것이고 진실하려면 예수님이 가진 그 마음이 있어야 진실해지고 거룩해지려면 예수님이 가진 그 마음을 가지고 해야 하는데 우리는 우리 마음을 좀 고쳐서 이제 오늘부터 나 게임 그만할거야.’ 하면 그만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오늘부터 술 그만 마실거야.’ 하면 술 그만 마실 수 있을 줄 알고, ‘오늘부터 난 담배 안피워도 돼, 안피울 거야.’ 하면 담배 끊을 수 있을 줄 알고, ‘오늘부터 내가 율법을 잘 지킬거야, 하나님을 위해 살거야.’ 그렇게 생각들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진실히 행하려면 진실한 마음이 있어야 하고, 거룩한 삶을 살려면 거룩한 마음이 있어야 하고, 선한 일을 할려면 선한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나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각오하면 선해 질 수 있을 줄로 사람들이 참 많이 속고 있다고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성경에서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성경 속에 있는 예수님의 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처음에 성경이 마음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성경에서 뭘 느꼈느냐 하면 , 성경에 있는 예수님 마음은 내 마음하고는 너무 달라.’ 그걸 느꼈습니다.

 

이런 마음은 예수님에게만 볼 수 있는 마음이야. 이런 마음은…’ 그 강도 만난 자의 이야기 속에서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강도 만난 자를 도와 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내가 지나갔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을 해봤어요. 강도 만난 자가 강도 만나 있는데, 강도 만나서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을 보면 여기 근방에 어딘가 강도가 있다는 이야기지요. 강도가 이 사람을 거의 죽게 만들었는데 나도 내 모든 것을 빼앗아 가고 저렇게 할 것이 틀림이 없는데, 사마리아인이 와서 강도 만난 자를 구해 주는 것은, 그냥 구해 주는 것이 아니고 자기 생명을 버릴 각오를 가지고 내가 죽더라도 저 사람을 구해야 한다.’ 그런 마음이 없으면 안 된다. 그래서 제사장이 그런 마음이 없으니까 피해갔고 레위인도 그런 마음으로 피해 간 것입니다.

 

성경에서 사마리아인에게는 우리가 갖지 못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 속에 그런 마음이 있느냐. 없다. 그러면 우리는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 그랬지요. 예수님이. 못합니다. 그것 없으면 절대 못하는 거지요. 그 어디에 강도가 있기 때문에 내가 강도 만난 자를 구하려고 한다면 나도 강도를 만날 각오를 해야 하고 나도 저렇게 죽을 각오를 해야만 할 수 있는데 그런 마음이 없이 안됩니다. 그냥 하면 될 줄 알지만 율법사는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했습니다. 하면 될 줄로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성경은 나에게 너무 신선한 책인 것입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마음의 세계를 느낍니다. 나는 성경 속에서 세상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마음의 세계를 얻었습니다. 지금도 보면 신비한게 내게 없는 신비한 마음의 세계가 성경 안에 있고,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내가 그 예수님의 마음을 내 마음에 받아 들였을 때;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예수님의 마음을 받아 들인 것이 아니고 자기가 열심히 하면 될 줄을 알고 선한 일을 하면 선하게 될 줄을 알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여러 곳에 예수님의 마음이 나타나 있는데 쉽게 말하면, 그것은 우리 마음하고는 다른 마음입니다. 그래서 그 마음을 가져야, 우리가 그 마음을 받아야 우리도 그 예수님처럼 살 수 있지, 내 마음 가지고 절대 살 수 없기 때문에, 여자가 애기를 낳으려면 남자 씨를 받아야 하는데 애기 잘 낳는 여자들은 옛날에 열 명도 낳고, 다섯 명도 낳고 했습니다. 아무리 애기를 잘 낳는 여자라도 남자의 씨를 받아야 애기를 낳을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귀한 일은 예수님의 마음 만이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내가 그렇게 하려고 하지 말고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받아야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성경은 이렇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내게 없는 마음, 세상 어디에도 없는 마음을 예수님에게서 발견하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발견하면서 그 말씀으로 그 세계 속에 내 마음이 잠겨 들면서 은혜롭고 복된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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