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5회] 12월 10일 영상교제 말씀
열왕기상 19장 2절 이세벨이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이 말씀은 여러분이 잘 아는 대로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 450명하고 내기를 해서 엘리야의 제단에 불이 와서 바알 선지자 450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3년 6개월 동안 오지 않던 비가 왔고 이스라엘 나라가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합이 이세벨에게 그 이야기를 하니까 이세벨이 굉장히 분노하면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 엘리야에게 사람을 보내서 엘리야를 죽이려고 하는 거지요. “내일 이맘때에” 참 이 말씀이 너무 놀라운 것은, 이 말이 열왕기하에도 나오고 열왕기상에도 나오는데 열왕기하에는 거기 나오지요.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 하리라” 하나님이 보신 내일 이맘때는 참 소망이 있는데, 이세벨이 말하는 내일 이맘때는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의 하나와 같게 하리라. 저 죽은 바알 선지자 450명처럼 나도 너를 죽이겠다.” 그렇게 이세벨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다윗을 사울이 죽이려고 그렇게 애를 써도 사울은 다윗을 죽이지를 못했고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려고 했지만 못 죽였습니다. 왜? 우리는 그냥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이고 하나님의 복음을 우리 안에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가진 우리 껍데기는 건강한 사람도 있고 약한 사람도 있고, 잘난 사람도 있고 못난 사람도 있고, 많이 배운 사람도 있고 못 배운 사람도 있고, 그리고 돈이 많은 사람도 있고 적은 사람도 있고, 우리 껍데기는 다 각각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는 하나님의 귀한 복음이 우리 안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이든지 간에 그 사람을 구원받도록 인도하면서 우리 속에 역사하고 있는 걸 느낄 수가 있습니다. 제가 복음을 전했던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면 처음에 저한테 이야기할 때는 막 자기가 불행한 일들, 슬픈 일들, 그런 이야기를 죽 하는데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 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이분이 이런 일이 없었더라면 나한테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겠느냐? 나를 만날 수 있었겠느냐? 이분이 이런 고통이나 괴로움이 없었다면 나하고 만나 대화를 했겠나? 아니다.’ 그런데 이런 고통과 괴로움이 이분이 나를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든 것이고 하나님께서 이분에게 나를 만날 수 있도록 마음을 낮추시고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런 일을 허락하셨다는 생각이 드니까 내 마음에는 그게 고통스럽다고 이야기를 하는데도 마음이 기쁜 거예요. ‘아 하나님 정말 이 사람을 사랑하셨다. 그래서 이렇게 일을 하셨다.’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지 말로 다 할 수가 없는 거예요. 베트남에 가서 저희들이 행사를 했는데, 어떤 부인이 있었습니다. 부인이 너무너무 괴로워서 바닷가에 가서 이제 막 자기가 고통하고 있다가 가슴에 품고 있던 성경을 떨어뜨렸습니다. 그때 우리 호치민 교회 형제가 그걸 보고 하나님 믿느냐고 이야기를 걸었습니다. 난 이 도시에 안 살고 호치민이라는 도시에 산다고. 아 저도 호치민에 사는데요? 이 부인이 연결되어서 나중에 알고 보니까 이 부인이 대안학교를 하면서 자기가 학생들에게 정성을 기울이면 학생들이 잘 따라줄줄 알았는데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학생들이 방탕하고 그래서 실망가운데 있다가 우리를 만나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고 그 대안학교 자체를 우리 호치민에 있는 교회에다 넘기면서 교회에서 이끌어주면서 학교가 굉장히 좋아졌어요. 그 학교하고 연관해서 집회 허가를 받았는데 우리가 집회를 허락 받아서 천여 명 되는 대학생들 불러놓고 집회를 하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다 할 수가 없다는 거지요. 그 자매가 학교를 하면서 어려웠던 일들, 죽고 싶었던 일들, 그런 일들은 복음으로 연결하기 위하여 일을 하시는데 지금 여러분들이 계시는 도시, 제가 있는 서울, 이 도시에도 하나님이 수많은 사람들 마음속에 역사해서 그들에게 절망도 주고 어려움도 주고 시련도 줘서 그들의 마음을 낮춰서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그들을 이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정말 구원받도록 준비해놓은 사람을 하나님이 복음 가진 사람과 연결해서 복음이 그 속에 들어가도록 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구원받기 전에 그리스도를 핍박하다가 다메섹에 가서 빛을 보고 쓰러졌을 때, 하나님 구원받은 아나니아를 통해서 사울에게 복음을 전하고 사울이 구원받고 예수를 위하여 살 수 있도록 그렇게 한 것처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 그들이 영원한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주셨을 뿐 아니라 그 속에 많은 일을 해서 그들이 구원받기에 가깝도록 하나님 일을 하시면서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시느냐 하면 우리 복음을 가진 사람들과 부딪히게 하는 그 일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복음을 가진 사람들이 어느 시대고 어느 나라고 어느 민족이고 할 것 없이 하나님의 마음과 이 복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이 지키고 보호하시기 때문에 사울이 다윗을 그렇게 죽이려고 해도 죽일 수가 없었고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려고 해도 죽일 수가 없었다. 우린 죽지 않는다. 어려움이 있고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망하도록 하지 않는다. 의인은 절대로 겁절하게 되지 않는다. 이런 약속들이 너무 감사한 거지요. 이세벨이 엘리야를 보고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 했을 때 엘리야는 죽었다고 생각이 되었고 굉장히 두려웠겠지요. 엘리야 죽지 않습니다. 안 죽었습니다. 다윗도 사울이 곧 죽이려고 했지만 죽을 것 같았는데 그때마다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해 피할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해 주었다는 거지요. 복음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 안에 있기 때문에 절대로 그냥 죽거나 그냥 어려움을 당하는 게 아니고 그 어려움을 통해 복음의 진보를 더하게 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서 복된 길로 인도한다는 사실을 말씀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못나도 연약해도 믿음이 없어도 복음을 가졌다는 건 정말 그 그릇이 중요한 게 아니고 그릇이 어떻든 그 안에 보배가 들어있을 때 그 그릇의 가치를 느끼는 것처럼 우리가 못나도 못 배워도 가난하고 어려워도 예수님의 복음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정말 감사하고 감사할 일이라는 이야기를 말씀해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시대에 복음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삶 속에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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