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0회] 1월 29일 영상교제 말씀
요한복음 21장 15절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제가 신앙 생활하면서 성경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의 많은 은혜를 입습니다만, 그 중의 하나가 이 성경이 말하는 그 세계의 마음하고 내 마음하고 다르다가 어느 날 성경에서 하나님 마음을 발견하고 내 마음이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가 되었을 때 느끼는 그 힘의 전달, 그리고 평안함, 자유로움, 그런 것이 말할 수 없이 내 마음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기도를 하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뭘 해도 자유가 없는 것은 주님하고 나하고 마음이 다른 것 외에 다른 이유가 하나도 없고 또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확실한 믿음을 갖지 못하는 것도 주님하고 나하고 마음이 다른 것 외에 다른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주님은 우리 마음을 예수님 쪽으로 이끌기 위해서 일을 하셨는데 하나님의 사람들이 주님의 이끌림을 받아 어느 경점에 도달했을 때 주님과 같은 마음의 세계가 되었을 때 그때 하나님의 사람들이 놀랍게 변하는 걸 볼 수가 있었습니다. 저도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 말씀이 말하는 말하고 내 생각하고 참 차이가 있는데, 그것이 마치 비행착각에 걸린 조종사가 “자기가 볼 때는 이게 하늘처럼 보이는데, 비행계기에는 이쪽이 바다라고 이야기한다. 어느 쪽을 믿어야 하느냐?” 그런 이야기지요. 전투기 조종사가 비행착각에 걸리면 굉장히 위험한데 그 가운데 하나가 자이언트 암이라고 하는 비행착각이 있는데, 자이언트 암이 어떤 거냐 하면, 그 스틱은 손으로 아주 쉽게 그냥 건들면 움직여지는 그런 스틱인데도 자기가 비행착각에 걸렸다고 생각하면 1초 만에 생명을 잃을 수 있으니까 스틱이 움직이기가 힘이 들어가지고 꼭 큰 거인이 자기 손을 꽉 잡고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는 그런 감을 느낀다는 거지요. 생 땀을 뻘뻘 흘리면서 스틱을 움직이려고 애를 써도 전혀 움직여지지 않는 그런 것을 보고 자이언트 암이라고 하는 비행착각이라고 조종사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비행착각에 걸렸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제 어떻게 다르냐 하면 내가 보는 판단이나 내가 느끼는 느낌하고 비행조종석에 앉아서 볼 때 비행기 계기가 내게 보여주는 것하고 다를 때 일어나는 현상이거든요. 내가 현재 가고 있는 이 비행 조종하는 조종하고 계기하고 일률적으로 같이 되어간다면 내가 느끼는 느낌이 비행착각이 아니고 정상이지요. 그런데 어떨 때 분명히 나는 이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계기는 반대쪽을 가리킨다든지, 나는 지금 올라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비행기 계기는 내려가고 있다고 가르쳐 준다든지, 내가 지금 바로 가고 있는데 계기는 내가 거꾸로 뒤집어서 날고 있다고 보여주었을 때, 사실 전투기 조종을 하다 보면 거꾸로 뒤집어 날아가도 자기는 전혀 못 느낀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느낌이나 판단 그 모든 걸 버리고 계기를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 우리의 신앙을 우리에게 자세히 가르쳐주는 이야기인데 우리가 볼 때는 이게 잘 될것 같고 내가 보기에는 이게 옳은 것 같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사단에게 속아서 그렇지 성경말씀이, 예수님의 말씀이 옳은 거라는 거지요. 시몬 베드로가 어느 날 비행착각에 걸렸듯이 착각에 한번 걸렸습니다. 어떤 착각에 걸렸습니까? 예수님이 “너희가 오늘밤 다 나를 버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뭐라고 말했습니까?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주를 버리지 않겠습니다.” 예수님하고 다른 방향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시몬아 네가 오늘밤 닭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말합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베드로가 하는 그 이야기하고 주님의 이야기는 정 반대였습니다. 자, 베드로는 ‘나는 죽어도 주를 부인하지 않는다.’고 하고 주님은 ‘부인한다.’고 하고 베드로는 ‘죽어도 버리지 않는다.’고 했고 주님은 버릴 거라고 했고 어느 이야기가 맞겠느냐는 것입니다. 자 비행계기하고 내 생각하고 어느 쪽이 맞느냐? 베드로는 조종했으면 반드시 사고를 냈지요. 왜? 계기보다 자기 판단을 믿었고 주님의 말씀보다 자기 생각을 믿었으니까요. 그날 밤 베드로는 세 번 주님을 부인하고 통곡을 했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지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베드로가 이제 자기는 ‘나 같은 사람이 무슨 사도야? 나 같은 사람이 무슨 예수님의 제자야? 나는 어부야.’ 고기를 잡으러 갔는데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에 오셨습니다.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예수님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전에 같으면 베드로가 “아 예, 예수님 나 주님 사랑해요. 주님 잘 아시잖아요. 내가 주님 안 사랑하면 누가 사랑합니까? 주님 사랑하는 사람이 나 외에 누가 또 있습니까?” 그렇게 담대히 이야기 했을 텐데, 자기가 하는 판단이 틀렸고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고 난 뒤에 그렇게 말하기가 이제 두려워진 거지요. 베드로가 뭐라고 말합니까? 베드로가 말합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제 그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내 생각에는 이렇습니다.”가 아니라 “계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뜻입니다. 자기를 믿는 마음이 아니고 주를 믿는 마음이지요. 베드로가 이제 요한복음 21장이 지난 뒤에 사도행전에 들어가면서 베드로가 하루에 3천 명을 구원으로 이끌고 5천 명이 거듭나도록 하고 죽은 사람을 살리는 능력을 행하는 일이 나타납니다. 예수님하고 베드로하고 같은 마음이고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한 마음이 되어 달려가면 정말 우리 속에 전에 없던 믿음이 형성되고 그 다음에 능력이 나타나고 그 다음에 평안이 오고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 판단을 믿기 때문에 베드로처럼 주님은 나를 부인한다고 하는데 ‘나는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하는 자기 주장을 믿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자기가 무너지고 자기 생각보다 주를 믿는 믿음을 가지면서 그때부터 능력 있는 일을 행하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참된 신앙은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를 믿는 그 믿음, 자기 판단을 버리고 계기를 믿을 때 안전하게 비행기 조종을 할 수 있는 것과 같은 그런 신앙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 당신의 양을 맡겨 당신의 일을 맡기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Reply 윗 글에 대한 답글입니다.

3개월이 지난 글은 덧글 입력이 불가 합니다.
카카오톡 공유하기 URL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