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5회] 5월 29일 영상교제 말씀
야고보서 5장 17절, 18절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우리가 이 성경 말씀을 보면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냐 하면, 엘리야가 삼년 육개 월 동안 비가 오지 않게 기도하니까 비가 안 왔고 다시 기도하니까 비가 왔고 또 기도하니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모든 재물을 태우고 그런 일이 있었는데 이제 그 이야기는 뭐냐 하면 엘리야가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란 말은 “엘리야에게 역사하신 그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역사할 수 있다. 우리에게 역사하시기를 원하신다.” 그런 말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지요. 대부분 사람들이 믿음으로 달려갈 때 가장 어려운 게 뭐냐하면 마귀가 우리가 처음에 신앙생활 시작하려면 구원문제를 막아서 구원을 막 흔들어서 구원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을 막 넣는 거예요. 어떤 사람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는 이해는 가는데 믿어지지가 않는다.’ 이해는 가는데 안 믿어진다는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입니까? 사실 그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이야기가 아니고 속에 사단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하는 거거든요. ‘난 믿긴 믿는데 확신은 없다.’ 그런 성경하고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가지고 구원의 믿음을 막 흔들어서 구원이 흔들리면 신앙은 자체가 전부다 무너져 버리는 거거든요. 그래가지고 말씀이 아닌 어떤 생각을 넣어서 우리가 구원에 도달하지 못하게 하고 구원에 도달한 사람은 거기에서 막 흔들려서 믿음으로 달려가지 못하게 하는 일을 계속 합니다. 그 다음에 구원에 확신을 가진 형제나 자매들 속에 사단은 어떤 일을 하느냐 하면 ‘나는 믿음이 없어. 난 기도를 해도 역사 안 할 거야. 하나님은 나를 돕지 않을 거야.’ 그런 생각을 막 넣지요. 그런데 사단이 그런 생각을 그냥 넣는 게 아니고 우리가 죄를 짓거나 우리가 방탕하거나 성경을 읽지 않거나 율법을 지키지 않거나 그럴 때 ‘그 봐 너 그런데 뭐 하나님이 역사해. 너 그러는데 무슨 구원이야? 너 그러는데 무슨 하나님이 일하겠어?’ 그런 마음을 주니까 우리는 그 이야기 그냥 받아들이는 거예요. 공감이 되니까. ‘아 그렇겠구나. 나는 하나님이 역사 안 하겠구나.’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하는 거지요. 성경에서 엘리야 속에 역사하셨던 그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역사했던 것과 똑같이 엘리사 속에 역사하셨고 그 하나님이 똑같이 우리들 속에 역사하시도록 다 준비가 되어있는데 그러면 엘리야는 악한 마음이 없었는가? 시험에 안 들었는가? 욕망이 없었는가? 음란한 마음이 없었는가? 아니 우리와 똑같은 마음을 엘리야가 가졌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놀라운 일을 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그런 하나님이라면 우리 속에서도 얼마든지 그렇게 너도 엘리야가 그런 사람인데 엘리야가 뭐 선을 행해서, 잘해서, 성실해서, 죄를 안지어서, 정직해서 그렇게 하나님의 손에 쓰임받은 게 아니고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너무 죄악 속에 깊이 빠져서 아합이 타락하고 바알선지자 섬기고 하니까 하나님이 엘리야를 선택해서 엘리야를 통해서 그 일을 이루려고 엘리야를 만드신 거지 엘리야 자기가 하나님께 쓰임받도록 준비된 사람은 아니었다. 우리도 똑같다. 우리가 구원받을 때 우리로 인해 구원받지 않은 것처럼 우리 속에 하나님이 역사할 수 있는 그런 조건이 안 되어 있다면 누가 책임입니까? 예수님 책임입니다. 예수님이 그걸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 우리속에 역사하실 조건을 다 만드시는데 이미 만들어놨다. 너 볼 때 네가 약하고 연약하고 추하고 부족하고 하나님이 역사 안 하실 것 같지만 예수님 편에서는 우리속에 하나님이 역사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갖추어놨고 이루어놓았고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능력으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신다 그런 이야기라는 거지요.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그럼 여러분 우리도 엘리야와 똑같은 조건에 있으니까 성정이 같은 사람이니까 우리도 그렇게 기도하면 하나님 역사하는데 믿음으로 우리가 달려가지 않는다는 거지요. ‘아 나는 원래 부족해. 내 속에는 하나님 역사할 수 없어. 내가 부족하니까 예수님이 역사해서 하나님 내게 역사할 수 있도록 그렇게 했기 때문에 내가 되는 거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내가 연약하고 더럽고 추한 걸 아시고 죄를 사하셨을 뿐 아니라 내속에 하나님이 역사할 수 있는 그런 모든 부족한 부분들을 십자가에서 다 정리하셨고 내 속에 하나님 일하시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추어 놓았기 때문에 우리 속에 예수님이 일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다만 사단이 우리를 속여서 너는 이래서, 넌 저래서, 이것 때문에, 저것 때문에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어떨 때 복음을 전해보면 내가 성실하게 기도하고 간절하게 하나님 앞에 행했을 때도 구원받는 사람이 일어나지만 어떨 때는 제가 한번 어느 병원에 가다가 차선 두 개가 합쳐지는 곳인데 내가 좀 바빠서 양보를 안 하고 차를 밀어넣었어요. 그쪽 차도 양보를 안 하는 거예요. 그래 우리가 좀 약간 부딪혔어요. 속이 상했어요. 차가 부딪히면 속상하잖아요. 병원에서 그분들이 복음을 듣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데 ‘아 왜 이런 일이 일어나지?’ 내 마음속에 어떤 마음이 일어났냐 하면 ‘내가 언제는 선했나? 내가 언제는 의로워서 하나님 내게 역사했나? 내가 언제 잘나서 하나님 내게 역사하셨나? 내가 흠이 없어서 역사하셨나? 아니다. 난 여전히 부족했다.’ 저는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동안에 난 한없이 부족했는데 예수님께서 나를 온전케 하신 그 은혜로 된 것이지 난 아니다. 그날 병원에 가서 내가 차가 약간 부딪혀서 내 마음이 막 이렇게 낮고 병원에 가서 참 하나님 은혜를 베푸셔서 많은 사람이 구원받고 귀한 은혜를 입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를 보고 역사하는 게 아니고 내 안에 있는 예수님을 보고 역사하시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늙어죽을 때까지 육신은 육신다운 짓을 하지요. 추하고 더럽고 악하고 거짓된 그런 마음들을 계속해서 일으키고 그래서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신앙생활하기에 아무 문제가 안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믿음으로 되어지는 줄을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엘리야 같다면 깜짝 놀라겠지요. 야고보 5장 17절에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이 말은 “우리와 엘리야가 똑같다” 이 말이거든요. 그리고 우리 속에도 엘리야처럼 일할 수 있다 믿음을 가지시고 엘리야보다 더 크고 귀한 일을 이루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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