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0일 영상교제 말씀
누가복음 16장 30절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제가 목사이기 때문에 사람들 개인적으로 신앙상담을 많이 하는데 신앙상담을 하다보면 강하게 느끼는 것이 사람 마음 안에 하나님 말씀이 들어가기 전에 뭔가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 태어나실 때에 베들레헴에 많은 방들이 있었지만 그 방들이 가득 차 있어서 예수님이 오셨을 때에 예수님이 누울 만한 방이 하나도 없었던 것처럼 사단은 어느 누구를 불문하고 사람들 속에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여러 가지 육신의 쾌락이나 욕망이나 아니면 다른 의견이나 주장이나 이런 것들을 가득 채워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순수하게 들어오지 않는 걸 느낍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제가 신앙생활하면서 똑같이 성경을 읽고 있는데 어떤 때는 성경말씀이 깊이 내 마음에 와 닿을 때가 있지만 어떤 때는 성경을 읽어도 그냥 책장은 넘어가는데 마음에 같이 공감이 안 되는 그런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이유는 어디에 있느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기 전에 내 속에 하나님 말씀과 다른 여러 가지가 들어있다는 거지요. 내가 뉴욕에 가면 제 손자들이 있는데 제 손자가 저를 그렇게 반가워합니다. 왜? 할아버지가 늘 선물도 사주고 사랑해주니까요. 제가 가면 꼭 그놈은 저하고 같이 자려고 제 방에 오고 그러거든요. 반가운 가족들은 만나면 반갑습니다. 나를 미워하는 어떤 사람들이 있으면 내가 가면 그들이 불편하고 나도 불편하겠지요. 손자가 할아버지를 반가워하듯이, 아니면 내가 아내와 헤어졌다가 모처럼 만나면 반갑듯이, 또 사랑하는 사람이 서로 만나면 반갑듯이 내 마음이 하나님과 가까워졌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들어오면서 진짜 기쁘게 내 마음이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내 마음이 하나님하고 다른 여러 가지 생각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들어오려고 하면 내가 자꾸 불편하고 반갑지 않은 손님이 되어버립니다. 왜냐하면 내 안에 있는 것이 하나님 말씀과 거리가 멀고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 읽은 누가복음 16장은 부자와 나사로에 관한 이야긴데 부자가 지옥에 가서 하는 이야기를 우리가 지금 듣고 있는데 지옥에 가 있으면서도 이 부자가 자기 속에 주장이 가득 있어서 아브라함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걸 봅니다. 부자가 왜 지옥에 갔습니까? 성경에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세상에서 부자의 행실을 기록한 건 이것밖에 없는데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으면 지옥갑니까?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면 지옥갑니까? 자색옷을 입고 고운 베옷을 입어서 지옥가는 게 아니고 화화로이 연락해서 지옥가는 게 아니라 그런 육의 것으로 가득 차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다 막아버렸다는 것이죠. 호화로이 술 마시고 즐기고 춤추고 놀다가 하나님 말씀 들으면 잘 들어옵니까? 정말 먹고 마시고 즐기면서 하나님의 말씀 읽으면 잘 들어옵니까? 안 그렇습니다. 저도 때때로 제가 그럴 때 내 육체의 욕구를 줄이기 위해서 금식을 한다든지 내가 또 내 육체를 제제했을 때 그때 내 마음 안에서 말씀이 너무 잘 들어오는 걸 느낍니다. 그러나 내가 육신과 더불어 세상과 같이 즐기면서 먹고 마시면서 그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 안에 들어와서 자리를 잡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지요. 그러면서 점점 하나님 말씀이 내게서 멀어지고 하나님 앞에서 점점 떠나가게 되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입니다. 부자는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고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자기 욕구대로 살았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육신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린다”고 둘이 서로 맞지 않고 대적해서 문제가 된다고 했기 때문에 내가 육체의 소욕대로 흘러가면 반드시 그것이 성령을 막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다 보면 육체가 나를 가로막는 걸 느끼기 때문에 ‘아 난 육체 때문에 큰일이야. 육체의 욕구가 너무 커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게 만들어. 난 육체의 욕구 그것 때문에 문제야.’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면서 때때로 금식도 하고 육체를 제한하기도 하고 절제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부자는 육신을 전혀 절제하지 아니하고 그는 부유하고 풍부했기 때문에 그 부를 가지고 육체를 즐겁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부로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오늘도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부유한 삶을 살면서도 하나님께 인색하고 육체의 쾌락대로 그 모든 걸 버리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도 점점 하나님 말씀과 멀어지기 때문에 말씀이 들어오지 아니하고 부자가 지옥에 가서 아브라함과 대화를 하면서도 자기 주장만 계속하지 아브라함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 모양을 봅니다. 이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말했습니다. ‘나사로를 내 아비 집에 보내서 형제 다섯이 있는데 저들에게 증거하여 이곳에 오지 않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거기는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으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부자가 뭐라고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렇지 않다는 말은 자기가 아브라함보다 더 안다는 이야기지요. 자기가 아브라함보다 더 잘 났다는 이야기고 더 옳다는 이야기니까 지옥에 가서도 아브라함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런 마음이면 얼마나 불쌍한 마음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열고 때때로 육체를 절제하고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고. 밥을 먹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옷을 입지 말고 즐기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즐기십시오. 그러나 육체가 마음대로 하도록 육체의 욕구에 종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육체를 다스려서 먹여주고 입혀주지만 강아지를 먹여주고 입혀주다가 강아지가 주인이 되는 게 아니듯 우리가 절제하고 어린 아이도 그렇고 나 자신도 개가 아니지만 절제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정말 내가 육으로만 달려가지 말고 하나님을 향해 달려가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 할 줄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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