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3일 영상교제 말씀
룻기 1장 14절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나오미와 엘리멜렉과 말론과 기룐이 베들레헴을 떠나서 모압 땅으로 갔다가 엘리멜렉이 죽고 말론이 죽고 기룐이 죽고 세 과부가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는 길을 행하고 있습니다.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너희들은 너희 고향으로 가라. 너희 신에게로 돌아가라. 난 너희를 위해서 아무 것도 해줄 것이 없으니까 돌아가라.”고 이야기했을 때 여기 14절에, “그들이 다시 소리 높여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오르바는 자기 갈 길을 갔는데 룻은 그냥 시모를 따라 갔다는 거지요. 신앙 생활하는 가운데서 그냥 분위기 봐서 형편을 따라 가다가 어려우면 자기 길을 가는 사람들의 모양을 나타내고 있고 똑같이 며느리로 한집에 살았지만 룻은 어떤 이야기를 하든지 간에 자기가 확실하게 얻은 그 약속을 보고 베들레헴까지 따라가는 그 이야기를 성경은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외형적으로 하는 게 아니고 마음에서 그게 내게 임해야 하는데 오르바는 그냥 평범하게 그 집에 시집왔다가 남편이 죽어서 시어머니 따라가기가 부담스러우니까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그런 여자의 모양이고 룻은 어떤 신앙의 모양이냐 하면 룻은 나오미의 집에 시집을 갔다가 남편이 죽고 시아버지가 죽고 시동생이 죽고 하는 걸 보면서 ‘아 이들은 약속이 있는 하나님의 가족들인데 이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삶으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는구나. 그런데 이들이 지금 베들레헴으로 들어가는데 이들이 베들레헴에 가면 거기서 복을 받겠구나. 이들은 정말 여호와를 섬기는구나.’ 그걸 정확히 알았다는 거지요. 오르바가 떠난 뒤에 시어머니 나오미가 말합니다. “나오미가 또 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은 분명하게 여기에서 어머니의 하나님, 정말 자기가 믿던 그 허망한 신이 아닌 어머니가 믿는, 이들이 정말 저주를 받았지만 어머니가 믿는 그 하나님, 여호와 그를 룻은 마음에서 발견했거든요.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고” 하는 그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도 최근에 저들 교회가 복음 안에서 지내오면서 구원은 받았지만 여전히 자기 육신의 생각을 좇아 행하는 형제자매들이 참 많은데 형제자매들만 그런 게 아니고 전도자들도 그렇고 선교사들도 그런데 최근에 선교사들이나 전도자들이 하나 둘 자기가 신앙생활하면서 자기 생각을 따라갔던 것이 얼마나 허망하고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믿음위에 서는 그런 아름다운 일들이 교회에 일어나면서 우리 교회를 굉장히 밝게 소망이 넘치게 해주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거지요. 전에는 이 사람들이 그냥 구원은 받았는데 우리가 구원을 받을 때 사람들이 내가 옛날에 구원의 복음을 잘 모를 때 내가 율법을 열심히 지켜서 선을 행해서 구원을 받으려고 할 때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우리가 조용히 생각해보면 율법을 지키면 지킬 수 있을 것 같고 잘 될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들었지만 실제로 해보면 전혀 율법을 지킬 수 없고 잘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다가 나중에 우리가 뭘 느끼느냐 하면 ‘아 내가 율법의 행위로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이 사실을 정확하게 깨닫는 거지요. 그 사실을 정확히 깨닫고 난 뒤에 율법에서 벗어나서 자기행위가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십자가에서 허락해주신 그 보혈, 그 의, 그걸 믿고 나가는 것이 참된 신앙이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구원을 받고 난 뒤에 생활의 구원도 역시 그렇습니다. 죄에서 구원받을 때와 같이 생활의 구원을 받을 때도 역시 성령을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과 똑같이 우리의 행위가 아무 소용이 없고 하나님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야 하는데 우리가 영혼이 구원받을 때는 우리 행위가 아닌 예수님이 하신 것을 믿어 받아들임으로 받지만 또 내가 삶의 구원은 여전히 내가 하려고 애쓰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다는 거지요. 삶의 구원도 다른 게 아니라 옛날에 우리 영혼이 구원받을 때 내가 정말 아무리 노력해도 그게 무익한 걸 깨닫고 내 행위와 노력을 버리고 예수님의 은혜를 입음으로 죄에서 벗어난 것과 마찬가지로 내 삶의 구원도 내가 지금까지 열심히 일하고 노력한 그것이 아무 유익이 없고 무익한 것이고 예수님의 은혜만을 바라는 것이 참된 신앙인 것을 깨닫게 되면 자기 육신의 행위를 전부다 버리지요. 그리고 때때로 사단이 와서 우리를 유혹합니다. ‘이렇게 하면 네가 잘 될 거야. 성공할 거야.’ 그런 유혹을 줄때 옛날에는 거기에 빠져 넘어갔지만 이제 빠지지 않는다는 거지요. 왜? 너무 정확히 알기 때문에. 룻은 정확하게 뭐라고 하느냐 하면 어머니가 믿는 그 하나님, 참된 여호와 그를 따르면 그가 은혜를 베풀 것을 확실히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오르바는 그런 믿음의 세계가 아닌 인간 눈에 보기에 좋은 대로 좇아 행하는 그런 여자가 되었다는 거지요. 우리 신앙도 그와 똑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역사한 그 역사라야지 내 인간 노력과 수고한 것이 정말 내 삶에 조금이라도 변화를 주거나 도움을 못준다는 걸 알면 내 방법을 다 버리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위에 서게 된다는 거지요. 그러나 그 사실을 정확히 몰랐을 때는 옛날에 구원받기 위해 내가 노력해서 구원을 이루려고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열심히 잘하면 구원이 될 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삶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도우셔서 우리가 복을 받고 사는데 신앙도 역시 그렇다는 거지요. 오르바는 믿음의 세계를 모르고 그냥 따라갔다가 돌이키지만 룻은 정확하게 여호와를 알고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베들레헴에 가서 복을 얻는 걸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도 이론으로 알아야 하는 게 아니라 정말 믿음이 내 마음에 임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행할 때 우리 삶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내리실 줄로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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