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에 대하여(부족하지만 나누어 보고 싶어서)
저는 교회안에 10년 된 형제입니다. 장로교에 다니다가 우리 기쁜 소식 선교회를 만나 죄사함 받고 거듭난 형제이지요. 구원을 받기 전에 저는 방언을 7가지 종류로 해대곤 했답니다. 구원을 받고도 이 방언의 문제가 풀리지 않아 마음에 짐이 되었었는데 구원 받기 전에 온 은사이니 분명 사단이 준 것이기에 방언이 가짜라는 것엔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성경엔 사도 바울도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 고전14:39에 기록해 놓으셨기에 마음에 혼선이 지워지지 않아 이 부분을 놓고 기도 할수 밖에 없었답니다. 그러다 주님이 고전13장8절로 12절 이하를 보여주면서 오랜 고민의 문제가 풀려지게 되었답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 이 세상엔 고전13장8에 나오는 부분적으로 하는 예언과 방언과 지식이 언제 폐하여 질것인가? 에 대한 크게 네가지 이론이 있는데 온전한 것이 올때는 이 세가지 부분적으로 하던 은사가 폐하여 진다 기록하시고 게시기 때문이지요. 그 첫째가 온전한 것을 종말(Judgment day)이라 보고 해석하는 이론과 둘째 재림(second coming)을 보고 온전한것이라 말하는 이론 세째가 고전13장10절에 나오는 온전한 것(perfect, mature, complete)이란 단어의 헬라어 원어는 "teleios"는 단어로 사도 바울의 서신서에는 이 단어를 종종 쓰셨는데 "성숙, 장성함"이란 뜻으로도 쓰였기에 온전한 것이 오면 이란 뜻을 "장성하여지면" 이런 부분적으로 하던 것을 버린다 해석하는 이론이 존재하지요. 네째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서의 성취(the fullness of the Gospel of christ)를 온전한 것으로 보는 이론입니다. 첫째와 둘째는 대개 Pentecostal 교회 곧 순복음 교회 같이 은사주의 교회에서 대부분 이 이론을 채택합니다. 예수의 재림이 온전한 것이기에 혹은 심판날이 온전한 것이기에 그날이 되면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보듯이 부분적으로 하던 은사가 사라질것이라는 이론이지요. 그러나 이미 우리가 영원히 온전하여 졌고(히10:14) , 엡2장6절을 보게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하면서 과거 완료로 우리가 주님이 부활한 그날부터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았다 기록하시고 계시지요. 은사주의자들의 이론은 온전한 것이 오는 것이 재림이나 심판의 끝날인데 이 고전13:11의 문맥에서는 온전한 것이 오면 어린아이가 유치한 것을 버리고 장성한 사람이 될때를 말하기에 현존하는 세계를 말함이지 영원속의 세계를 말함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우리가 천국에서 사나 지금 우리가 사나 우리가 영원히 온전하게 된것은 기정 사실인데 다른복음을 가진자는 이것이 보이지 않겠지요. 또한 고전13:12에 나오는 "그때에는 , 그때에는"이란 해석을 시간적 해석으로 풀어서 재림의 시기나 심판의 때로 은사주의자들은 보았지만 원문은 시기와 때를 말하기 보다 완성과 성취에 두고 있음을 보게되지요. 한글 성경 번역은 영어 해석보다 더 시기와 때로 비추어 볼수 있는 "그때에는"이란 문장이 나타나서 더욱 사람들로 하여금 종말이나 재림이란 때와 시기에 촛점을 맞추는 그런 해석으로 보이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베드로 후서3징16잘에도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라는 말이 응하게 된것이지요. 세번째 이론을 볼때 또한 "온전한 것"이란 헬라어 원어의 "teleios,성숙, 장성함"으로 해석하면 문맥상 재림이나 심판의 날을 온전한 것이 온 것으로 해석하는 것보다 더 매끄럽긴 하지만 해석에 있어 또 큰 오류가 나타나지요. 고전13:10절에서 "온전하다"는 "TELEIOS"원어의 뜻을 "장성함"이나 "성숙함"으로 해석할때는 "장성하여 지면 부분적으로 하던 것을 폐하게된다"는 해석이 나오는데 이런 해석의 이유는 어릴적에는 유치한 짓을 하다는 장성하여 지면 이런 방언 같이 부분적으로 하던 것을 폐한다라는 해석이 나옴으로 좋게 해석이 되는 것 같이 보이나 진정 거듭난 성도인 우리가 어린 아이 같이 막 구원을 얻을때, 곧 성령이 임할때 방언을 받은 적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영적으로 어릴때 받았다면 박옥수 목사님부터 초신시절 어린 아이 같은 믿음을 가지실적엔 방언을 하다가 장성하면서 이 하던 방언이나 예언 같은 은사를 버려야 했어야 하는데 그런 간증은 들어 본적도 없고 모든 거듭난 형제들이 어릴적에 방언을 하다 장성한 분량이 되어서 그 하던 방언이 사라졌다는 간증도 전혀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이 이론도 받아 들일수 없었답니다. 끝으로 네번째 온전한 것이 올때라는 것을 (The fullness of the Gospel of Christ)복음서의 완성, 성취로 보는 이론인데 이것이 가장 성경적이라 저는 믿습니다. (When the Gospel of Christ had been fully deliverd, the imperfect disappears) 그 이유는 "teleois"는 헬라어 원어중 "완성 , 성취, 완전"이란 뜻이 있는데 고린도 교회는 AD 50년경에 존재한 교회로써 그 당시 BC 350여년전에 만들어진 구약 70인 성서는 존재하였지만 지금 우리가 가진 복음서와 여러 서신서들은 존재하지 않았을 당시였답니다. 고린도라는 도시는 항구 도시로 이방신전이 존재하였고 천여명의 창녀들이 존재 할 만큼 타락한 도시로 이방의 더러운 우상숭배와 기타 문화가 혼잡하게 존재하던 도시로 그곳 고린도 교회는 이런 여러가지 문제로 바울의 머리를 많이 아프게한 그런 교회였답니다. 근친 상간의 문제도 우상의 제물에 관한 문제, 여러 은사의 문제로 인한 혼잡 등등 그 중 방언의 문제는 아직까지 복음을 전하다 보면 많이 부딪히는 문제로 방언을 받은 것을 성령을 받은 증거로 내세우는 우매한 다른 복음에 빠진 자들이 많은 것이지요. 성경은 1500년 동안 약 40명의 기자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한 책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딤후3:16) 그 40여명의 직종은 다 다르나 한결 같이 성령의 감동으로 같은 주제로 끝을 맺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라는 주제였고 온갖 죽음과 고난속에서도 그들의 주제를 포기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성경을 변질시키려 부활하신 예수님의 묘에서 조차 로마병들에게 돈을 주고 거짓을 유포케 하였지만 그 거짓이 세상에 많이 유포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가 진리를 말씀을 통해 듣고 있다는 것은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졌으며 하나님이 스스로 당신의 말씀인 성경을 지켜 오시고 완성하신 완멱한 진리이기 때문이란 것이지요. BC 380년 경에 유대 랍비 72인이 모여 히브리어로 존재하던 구약 성서를 그리스어인 헬라어 성서로 처음 번역 한 것이 70인 성서입니다. 예수님 당시 예수님이 언급하셨던 성서가 바로 70인역인 이 성서이지요. 그후 AD 50년에 고린도서를 쓸 당시엔 이 구약 70인서밖에 없었고 아직 복음서의 완성이 이루어지지 않았을때라 이 당시 베드로후서, 야고보서,유다서, 히브리서, 요한 2,3서, 요한 계시록 등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을 당시였기에 예언도 방언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도 사람을 통하여 필요 했던 것입니다. (참조:고린도 교회에서 쓴 헬라어 원어로 예언이란 본뜻은 미래를 말하는 그런 점치는 것 같은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설교를 뜻하지요.) 행전18장24이하를 보면 알렉산더에 살던 아볼로가 에베소에 가서 예수에 관하여 주의 도를 열심히 전파했답니다. 그는 유대인으로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인데 여기서 말하는 성경은 바로 70인서인 구약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 브르스길라와 아굴라가 그를 데리고 가서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주었답니다. 구약만을 가지고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전 할수는 있지만 완전하지 않고 부족하다는 것이지요. 바로 복음서의 완성이 이루어 질때 우리에게 온전한 것이 도착하게 되는 것이고 그 성취가 이루어지면 부분적으로 하던 방언이나 예언이나 ,부분적으로 알던 지식은 폐하고 말씀 하나만으로 모든 계시가 충분하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가진 지금의 성경 하나면 모든 계시가 충분하게된 것을 사람들은 믿지 않기에 지금도 성경보다는 신비적인 체험을 따르려 하기에 예언과 방언 같은 은사를 사모하다 사단의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이라 봅니다. 고전13장10절에 나오는 "온전한 것"은 바로 AD 100년 사도 요한이 죽은후 계시록을 끝으로 하나님이 40인으로 1500여년 동안 만들어 우리에게 보내주실 성경의 내용은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도착한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지금 처럼 보게된 성경을 정경으로 채택한 것은 AD 280년 유대인 랍비들의 모임에서 구약 39권을 정경으로 책택하였고 AD397년 경에 COUNCIL OF CARTHGE 회의에서 27권의 신약 성서가 정경으로 채택 되었답니다. 그후 AD1520년경에 우리가 보는 장과 절이 나누어진 킹 제임스 성경이 최초로 나오게 되었고 그후 많은 성경이 해석되어 우리앞에 존재하게된 것이지요. 처음으로 돌아가서 방언과 예언과 지식이 폐하게된 이유는 그 은사로 하나님의 뜻이 계시되어야 할 시기에는 존재의 가치가 분명하였기에 사도 바울도 방언하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지만 복음서의 완성이 된 그 온전한 것이 올때에는 거울을 보듯 희미하게 보이던 것이 이제는 온전한 말씀으로 인하여 우리가 더이상 희미하게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씀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대하듯 분명하게 알게 되었기에 방언 같은 은사들을 통한 하나님의 부분적인 계시가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된것이지요. 완벽한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이 우리에게 존재하기에 이제 더 이상 부분적으로 하는 방언 같은 은사는 "cease" "그만두다, 중지하다~'라는 뜻으로 폐하게 된것으로 봅니다. 끝으로 "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아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후3: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벧후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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