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서 벗어나...
. 신앙 생활에서 가장 어렵고 잘 안 되는 것이 있다면 마귀가 주는 이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일 겁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벗어나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는데 생각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는 분들을 보면 대부분 어떤 큰 사고(?)나 사건이나 마음이 무너질 만한 그런 일들을 통해서 벗어나는 간증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너무 무서웠던 것이 그렇게 꼭 일을 당하고 내가 생각에서 벗어나야 하는지 굉장히 궁금했고 제 자신을 볼 때 '나'란 인간이 과연 그런 일들을 당한다고 나라는 존재를 싫어하고 부인하겠는가 굉장히 의문스러웠습니다. 만약 술을 마시고 싶은 생각을 주는 사단이 나에게 붙어 있다면 그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술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고 힘들고 어려워야 하겠지요. 또 만일 게임을 좋아하는 생각을 좋아하는 사단이 나를 어릴 때 부터 붙잡아 놓았다면 며칠씩 잠도 안자고 피곤한데도 게임을 할 때까지 그렇게 게임을 하고 정말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어야 되겠지요. 다른 예를 들면 만일 음란한 것을 좋아하는 마음을 주는 사단이 나를 붙잡고 있다면 그 음란함으로 인해서 큰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창피를 당해야 그 사단에게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겁니다. 저의 경우는,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큰 어려움을 당하고 부끄러움을 당하고 창피를 당해도 그 생각에서 전혀 벗어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아무리 부끄러워도 성경을 보는 것보다 음란한 것이 더 좋고(?), 아무리 힘들고 피곤해도 술을 마시고 즐거워 하는 것이 찬송을 부르는 것보다 좋고, 또 게임을 하고 그 안에서 상상하며 사는 것이 말씀을 듣고 보는 것보다 좋은 것을 어떻게 합니까? 나란 인간은 너무 이런 것을 좋아하고 또 사랑하니까 하나님과 지내고 싶은 마음도 있고 성경을 읽고도 싶고 또 전도도 하고 싶고 기도도 하고 싶은 등, 많은 [원함]은 있지만 내 안에 그것을 하고자 하는 동기나 마음이 부족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분이 혹시 계십니까? 음란함을 좋아하는 것 때문에 엄청나게 큰 부끄러움을 당한 일이 있습니다.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지요.. 그렇다고 해서 그 후에 내가 음란함을 질색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나에겐 그 고통을 어떻게든 피해서 그 음란함을 즐겨보고자 하는 그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음란한 영상을 보고 또 즐기고 있더라구요. 제가 그 부끄러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고개를 잡고 귀를 막고 속으로 큰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괴로워 하지만, 그 괴로움도 뭐 10초 정도 이상 잘 안가고 머리를 흔들어서 잊어버리고 또 다른 쾌락을 향해 달려 가니까 별로 소용이 없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 세상에서 거듭나게 되면 3가지의 마음의 세계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죄사함을 받고 모든 죄책감에서 자유를 누리는 마음의 세계가 있고 두번째는 사단이 주는 생각을 깨닫고 그 생각에서 벗어나는 마음의 세계가 있고 마지막으로 성령님의 이끄심을 받는 마음의 세계가 있습니다[이 세계를 세째 하늘이라고 표현합니다] 대부분 구원을 받은 이후에 어떤 모양을 갖추었든지, 많은 분들이 죄사함을 받고 그 세계에 머물러 있는 것을 봅니다. 구원을 받은 후에 하나님의 은혜로 대부분 큰 죄악에서는 떠납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오셨기 때문에 더러운 것을 싫어하는 마음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같은 팔푼이 같은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한 번 그 은혜로 죄악에서 떠났다가 어떤 계기로 다시 타락해서 세상으로 돌아가 즐겁게 지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다들 죄악에서 떠나거나 거룩해 지거나 구원 받기 전에 누렸던 즐거움에서 벗어나진 않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은혜도 받고 안하던 전도도 해보고 성경도 많이 읽고 믿음을 경험도 해보고 말씀대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보기도 하지만, 세상의 즐거움도 '가끔' 누립니다. 내가 좋아하는 취미도 하고 또 시간나면 교회 일도 합니다. 죄악을 아주 쬐금 즐기고 있지만 그리 큰 죄는 아닙니다. 양심에 기스나는 정도의 죄를 즐기는데, 뭐 가끔가다가 야한 영화 한편 보는 정도의 즐거움이랄까요? 이 정도는 괜찮지 않나요? 야한것도 너무 야한 것은 아니고 쬐금 야한거... 뭐 이런 세상의 즐거움 말입니다. 게임이라면 재미 없는 약간의 게임... 술이라면 뭐 와인 한잔 정도? 또 뭐가 있나요... 만화책을 좋아한다면 아주 가끔씩 재미로 한편씩 보는 것 말입니다. 이 정도는 괜찮지 않습니까? 오직 성경만 보고 기도만 하고 살수는 없지 않습니까? 너무 지겨운데... 외형적으로보면 참 하나님을 사랑하고 많은 물질로 하나님께 연보도 하고 기도도 열심히 하고 교회 일도 열심인 한 형제가 있었습니다. 누구도 그 형제가 교회를 떠나리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죠. 어느날 어떤 계기로 인해서 그 형제가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나중에 알게된 일이지만 사단이 웬만한 일로는 교회를 불신하지 않으니까 교회 안에 있는 한 형제를 통해서 카운터 펀치를 한 방 먹인 것입니다. 거기에 사단이 뽀너스 양념으로, 교회 목사님도 별 거 아닌 일로 예배 중에 꾸짓는 일을 통해, 또 교회 안에 있는 형제 자매들이 별로 좋지 않은 반응을 보이는 일을 통해, 완전 KO해버렸습니다. 그 형제가 교회를 나오지도 않고 다른 곳에 간 것을 몇 년간 보지 못했었는데... 하나님이 그 형제를 통해 일하신 일이 많아서 자주 즐거워 하며 하던 간증도 안하고 교회에도 잘 안나오고 하는 모습을 보고다들 참 멍했습니다. 베드로가 왜 하나님의 큰 일꾼이 될 수 있었을가요? 과연 3년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그 베드로와 예수 그리스도를 3번이나 부인하고 저주한 후의 베드로와 무엇이 그렇게 달랐습니까? 요한복음 21장에서 나오는 베드로의 말을 들어보면 그렇게까지 큰 변화가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주 적은 차이인것 같은데 예수님의 질문에 대답이 조금 달라진 것 같은 것 밖에 없습니다. 신앙은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고 여러분도 알고 계시죠..회개와 믿음으로 이루어지는데 이 회개는 아주 큰 일을 당해야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큰 일을 당해도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회개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예수님을 판 큰 죄를 범한 가룟 유다는 자기 자신의 행위을 회개했지 자신의 생각에서 회개하지 않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저같은 경우 아무리 큰 부끄러움을 당해도 그렇다고 음란함을 버리지 않는 것과 같았습니다. 회개에서 내가 한 행동을 자세히 생각해 보고 내가 당한 부끄러운 일들을 자세히 생각해 보아서 내가 생각을 따라 한 결과가 어떤 것인가 알게 된다면 '도움이 됩니다'. 도움이 되는 것이지 그 일 자체가 나에게 회개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회개를 하기 위해서는 도움이 되는 것 중에 하나는 정확히 사단의 정체를 아는 것입니다. 최근에 수양회 말씀에서 많이 중요하게 말씀하는 것 중에 하나가 내 자신의 생각을 따라간 결과가 어떤 것인가? 나라는 정체가 누구인가? 내 육신, 이 육신을 즐겁게 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가? 이런 것을 자주 생각해 보게 합니다.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정확하게 다시 한 번 말해보겠습니다. '나'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 현재의 '나',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음란함을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는 '나'는 누구입니까? 성경에 보면 이 '나'는 육신이고 사단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육신을 '나'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 알고 있다고 말하지 마시고 실제로 여러분이 생각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면 정확히 말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이 육신, 사단입니다. 이 '나'에게 생각을 넣어주는 존재가 누구입니까? 요한복음 13장 2절에 보면 '사단이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라는 말씀이 나오죠. 문제는 이 부분을 사단이 항상 생각치 못하게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사단인 것을 알기 위해서는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말씀에 보면 '나'라는 육신은 이미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혀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라는 말씀과 같이 우리에게 생각을 넣어주는 그 생각대로 따라간다면 우리는 사망입니다. 이 말씀을 믿으면 우리 생각을 따라가는 부분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너무 간단하죠? 그럼 왜 그 사실을 알고도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습니까? 왜냐면 정확히 말씀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세히 말하면 내가 정확히 말씀을 알고 있다고 사단이 생각을 넣어줌과 동시에 '그런데 나는 이 생각에서 벗어 날 수 없어'라는 생각을 같은 시간에 집어 넣어 줍니다. 그러니까 '나'라는 존재가 이미 사단이고 육신의 생각이 사단인데, 그 생각을 우리가 믿고 있기 떄문에 이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단의 전략 중에 가장 잘 쓰는 것이 '생각에 반응하게 하기'입니다. 생각을 넣어주고 듣는 그 자체만으로도, 그 말에 반응을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사단의 전략은 '반은 성공'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사단이 내 안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라는 말씀을 읽을 때, 사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희미하게 하는 생각을 같이 넣어줍니다. 사망은 참 무섭고, 죽는다는 것인데, 마음에 그런 불안함을 없애주죠. 느낄 수가 없게 만들어 놓았으니, 그 말씀을 듣고 믿어야 하는데, 내 마음에 웬지 느낌이 잘 안오면 믿지도 못하는 우리를 사단이 잘 알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을 때 동시에 '그래 사망이지, 따라가면 안되지'하면서 그냥 마음에서 깊게 생각하지 못하게 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하는 말씀은, 내가 느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기 떄문에 육신의 생각을 반응하면 죽는구나! 지금 당장 죽는 것은 아니지만 반드시 내가 죽는구나! 이거 나를 망케 하는 것이구나! 하면서 말씀을 믿어야 하는데, 사단은 '그런가?'하는 생각을 넣어 줌으로서 우리의 마음을 무디게 합니다. 사단이 생각을 넣어 줍니다. '그런데 나는 음란한 것이 좋은데'라는 생각을 넣어주고 그 생각을 믿게 합니다. 그러면 그 말씀대로 사망인 것은 알지만 '설마 지금 죽을라구?'라는 생각을 같이 넣어주기 때문에 '말씀을 무시하게 합니다'. 예전에는 에덴 동산에서는 사단이 우리와 다른 마음에 세계에 살았기 댸문에 우리 눈에 나타나 말을 시키는 방법 밖에 없었지만, 에덴 동산 이후에 사단의 말을 듣고 우리 생각에서부터 사단과 하나가 된 후로 다시 그런 전략을 쓸 필요가 없는 것이, 생각에서 방해해버리면 그만이거든요. 그냥 머리에서 '그런데 나는 무엇무엇 하단 말이야'하는 생각만 일으키면 '아 맞네' 하게 되거든요. 인간을 요리하기 너무나 쉬운 위치를 점령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가 큰 일을 당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느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 받을 때와 똑같이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지금 바로 믿으면 됩니다. 몇 초 안걸립니다.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면 이미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생각에서 벗겨 놓아서 하나님의 마음의 인도를 따르도록 다 해 놓았기 때문에 그 사실을 믿으면 됩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로마서 6:14) 저를 생각에서 벗어나게 한 말씀인데요. 하나님의 이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계속 하도록 하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믿어보니까 생각이 나를 망케 한다는 사실을 내가 알게 되었고, 내가 그 생각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세계로 들어오면 하나님이 나에게 반드시 복주고 나를 이끌어가신다는 믿음이 일어나면서, 사단이 주는 생각을 계속 버리고 부인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 자신이 사단이라는 것과 여태까지 사단인 내 육신을 즐겁게 하고 살았다는 것을 '믿고'(내가 느낀 것이 아니라 믿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생각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은 굉장히 쉽습니다.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말씀보다 더 믿기 쉬운 것이 박옥수 목사님이 하신 말씀을 믿으면 더 쉽습니다. 박옥수 목사님께서 생각을 따라가면 어떻게 되는지 말씀해 주셨지 않습니까? 그러면 자세히 생각해 보세요. 나도 생각을 따라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비참하게 죽겠죠. 망하겠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은 받았지만 비참한 인생을 살겠죠. 나를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슬프게 한 인생 살다 가겠죠... 이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진리는 성경이 진리지 내 생각이나 내 느낌이나 내 감정이나 내 상상력이 진리는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진리고 이 말씀이 진리인데, 이 말씀이 성경을 통해 증거하시길, 육신의 생각이 사망이라고 했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마치 나를 위하는 것처럼 넣어주는 그 사단이 넣어주는 생각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왜 생각을 부인해야 하냐면, 왜 자신을 부인해야 하냐면, 자신을 부인하지 않고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교회에서 모임을 가지고 말씀도 듣고 기도도하고 성경도 100번 읽고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결정적인 순간이되면 내 자신의 생각을 눈꼽만큼이라도 믿는 그 눈꼽으로부터 사단이 완전히 카운터 어택, 즉 한방에 KO시킬 수 있는 빌미를 주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 생각에 영향을 받는 것을 깨닫게 되기 전에, 이미 사단은 '나'라는 존재가 어떤 생각에 영향을 받는지 분석이 끝이 났습니다. 남은 것은 시간만 주어지면 그 '눈꼽만큼의 생각'을 이용해 나를 넘어트리고 시험에 들어서 교회와 띠어 놓은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하고, 그 말씀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슬픈 생각을 주는 마귀가 가끔 우리를 낙심하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나를 낙심하게 한다면, 그 생각에 나를 내어주지 말고 바보같이 한쪽 코에 손가락을 넣고 '하!하!하! 사단아 난 기쁘다! 약오르지 하!하!하!'하면서 웃어버리면 사단은 절망하진 않지만 우리를 그 생각으로 계속 끌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누굴 미워하는 마음을 사단이 넣어주는 것을 깨닫는 다면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내가 당신을 정말 좋아해요!'하면서 말해주세요. 내 생각을 믿지 말고 내 생각과 정 반대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이 있으니 누굴 미워하는 마음을 준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을 믿고 (사단과 하나님은 정 반대니깐요) 가서 '정말 감사합니다 당신 덕분에 하루가 즐겁습니다'라고 말해버린다면 사단은 우리를 더 이상 그 생각으로 끌어 갈 수 없게 됩니다. 그렇게 하기 부끄러우시면 그냥 마음으로 하셔도 됩니다. 말씀을 믿길 바랍니다. 생각 그거 사단이에요.. 믿어야지 느끼는 것이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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