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0일 영상교제 말씀
요한복음 8장 1절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다 성경에 보면 감람산이 있는데 예루살렘과 아주 가까이 있는 산입니다. 사람들이 거기 올리브 나무가 많아서 감람산이라고 말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감람산에 대한 이야기는 상당히 여러 곳에 있지요. 주님께서 승천하실 때 감람산으로 승천하셨고 또 주님께서 구름을 타고 다시 내려오실 때 그의 발이 감람산에 다시 닿을 거라고 성경은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 하루 종일 복음을 전하시고 피곤하고 지친 몸을 가지고 계셨습니다만 저녁때 예루살렘에 수없이 많은 방들이 있고 집들이 있지만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그 베들레헴에 많은 방들이 있었지만 예수님 태어나실 곳이 없어서 마굿간에 주님이 태어나셨는데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주님은 주무실 곳이 없어서 감람산에 가셔서 산등성이에 엎드려서 기도하시다가 주무시고 아침에 다시 성전에 나오고... 그렇게 되어있지요. 제가 예수님의 삶을 이렇게 봤습니다. 저희들도 처음에는 어렵고 가난하고 배고프게 살았는데 우리 교회가 형제자매들 수가 많고 또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 저희들을 사랑하고 위해줘서 정말 뜻 아니게 좋은 집도 주님이 준비해 주셨고 좋은 차도 준비해 주셨고 저에게 부족함 없이 모든 걸 허락해 주셨는데 내가 깊이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 주님 앞에 너무 부질없는 인간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 주님이 그 당시에 수많은 병자를 고치고 그랬기 때문에 주님이 좀 더 편안하게 나귀라도 한 마리 구해서 타고 다닐 수 있는 그 정도는 하실 수 있었을 건데, 주님이 정말 수많은 병자를 고쳤는데 그 병자들 가운데 왕의 신하도 있었고 신하의 아들이 나았지요. 회당장 야이로의 딸도 살리고 그랬기 때문에 아마 그들이 주님 앞에 감사해서 주님 앞에 나귀라도 한 마리 드릴 수 있었겠고 돈이라도 얼마 줘서 주님이 돈을 가지고 계시다가 필요할 때 음식도 사드시고 또 ‘아 오늘은 피곤한데 내가 샤워나 하고 여관에 가서 하루쯤 쉬어야겠다.’ 쉴 수가 있었고 그러셨는데 주님은 전혀 그러시질 않으셨습니다. 충분히 그렇게 하셔야 하고 할만도 한데 제가 제 삶을 보면 제가 이제 나이도 많이 들어서 기억력도 많이 없어지고 몸도 젊을 때하고 좀 다르니까 자꾸 제가 저를 좀 편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그러다가 문득문득 내가 주님을 생각하면 ‘우리 주님은 정말 이렇게 안 사셨는데 정말 우리 주님은 험하게 사셨는데...’ 그런 생각들을 해봅니다. 주님이 감람산에서 하루 종일 말씀을 전하시다 식사도 제대로 못하시고 감람산에 가서 거기 이불이 있었겠습니까, 요가 있었겠습니까, 베개가 있었겠습니까? 그냥 입은 옷 그대로 한쪽에 엎드려서 잠을 청하시고 아침에 일어나셨는데 주님이 목욕을 자주 하실 수 있었겠나? 머리를 자주 감으실 수 있었겠나? 입고 다니시던 그 단벌옷을 자주 세탁할 수 있었겠나? 외형적인 면으로 보면 그 당시에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이나 제사장들에게 진짜 무시를 받으실 만큼 주님께서 허술한 옷을 입고 계셨고 허술한데서 주무시고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 보기에 흠모할 만한 게 아무 것도 없었지요. 저도 제가 사역을 하다보면 종종 그런 경우가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않지만 어떤 사람은 저를 보고 좀 많이 무시하고 저를 업신여기는 그런 분들이 좀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있겠지만 교회 안에도 있습니다. 그래 보면 ‘아 내가 하나님의 종인데 저 사람이 나를 업신여기면서 내 말이 그 마음속에 들어가 힘이 있겠나? 신앙이 잘 되겠나?’ 보면 진짜 그런 분들이 신앙이 잘 안되거든요. 어떨 때 막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내가 좀 괜찮은 사람으로 사람들 앞에 서서 남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지 아니하고 그러면 성도들 신앙생활에 훨씬 도움이 안 되겠나?’ 그런 마음을 가질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주님의 모습을 보면 난 주님보다 너무 잘 사는 거고 너무 화려하고 진짜 너무 내가 부요하고 복되게 살고 있는 나를 발견하지요. 주님 앞에 한없이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 내가 진짜 이 흙덩어리 하나인데 이 흙덩어리를 가지고 주님이 너무 귀히 여겨서 정말 좋은 집에 좋은 방에 좋은 삶을 살게 하고 형제들 나를 많이 도와주는데 진짜 내가 복음을 전하니까 또 많은 길을 다니고 하니까 차도 좀 편한 차 타면 한곳에 갈 것을 두 곳에 갈 수 있고 또 여행가서 바로 말씀을 전하니까 타당성이 있기도 하고 또 내가 살면서 ‘적어도 집에 좀 평안히 잠을 자야 일을 할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러나 어쩌다 한 번 씩 내가 내 자신을 보면 괜찮은데 주님의 삶을 보면 너무 부끄러운 거예요. 그냥 성경은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다.” 그 앞에 7장 마지막에 보면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다른 사람들은 다 각각 집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집이 없어서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다.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있는데 참 제가 주님 앞에서 ‘예수님 나는 진짜 당신처럼 그렇게 못합니다. 당신은 수많은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그랬기 때문에 돈을 조금씩만 받아도 많은 돈을 얻을 수가 있고 삶을 잘 사실 수가 있지 않았겠느냐?’ 정말 나귀 한마리라도 가지고 타고 다니셨으면 그 사마리아 우물가에 그렇게 지쳐가지고 그대로 앉으셨다 그렇지 않으셨을 거고, 피곤해서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그냥 쓰러져 주무시고 그러지 않으셨을 텐데, 주님 충분히 나귀를 가지실 수 있고 좋은 집에 돈을 가지고 하다못해 복음 전한 예루살렘에 숙소라도 하나 마련해놓고 허술하지만 예루살렘에 가면 제자들과 같이 거기 모여서 기도도 하고 쉬고 그렇게 충분히 할 수 있으셨을 텐데, 예루살렘에 열두제자 모여서 좀 복잡하면 웅크리고 자고 그냥 거기서 얼굴이나 씻고 나올 그 정도 준비할 수 있었고 사마리아 갈 때 ‘아 예루살렘 우리 방에 가서 자면 된다.’ 조그만한 숙소하나 마련할 수 있었을 텐데 주님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는 거지요. 우리가 늘 같은 마음으로 살지는 못하지만 우리가 자주자주 예수님을 보면 우리가 너무 마음이 높아져 있고 예수님을 보면 우리가 화려해져있고 예수님을 보면 우리가 태만해져 있고 예수님 바라보지 않으면 그럴 수 없지만 예수님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렇게 되어가는데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면 소망과 힘도 얻지만 진짜 예수님 바라보면 소망을 얻고 힘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자신이 자주자주 주의 은혜 주의 모습이 우리 속에 임했으면 더 귀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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