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의 불행! 비유의 축복!
"어메이지잉 그레이쓰 하우 스윗 더 싸운드 ----- 댓 세이브 -----" 다음 소절이 생각이 잘 안난다. 외우려든지 한참 됐는데----. **! ^^! "내 입은 지혜를 말하겠고 내 마음은 명철을 묵상하리이다 내가 비유에 내 귀를 기울이고 수금으로 나의 오묘한 말을 풀리로다" -시편49:3,4- 비유의 숲을 거닐었다. 구원받고 교회에 들어와 거닌 길은 비유의 숲으로 난 길이었다. 끝도 없이 난 의미심장한 비유의 숲길을 거닐면서 난 생각했고 음미했으며 웃었고 기뻤다. 좀 안다는 우월감과 목사라는 특권의식에 휩싸여 있던 나는 그 비유의 길을 지나며 "brother"로 내려 앉았고 "servant"으로 팔렸으며 이제 믿음 안에서 "nothing"이 되었다. 다 구원하시고 붙들어 인도하신 주님의 크신 은혜다. 구원받기 전에 나는 예화의 숲을 거닐었다. 욕망으로 가득 찬 내게 그 숱한 기적과 대박의 예화는 불에 끼얹는 신나였다. 누구처럼 기도하다 피를 철철 흘리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고 어떤 잘나가는 목사처럼 금식 30일만에 불받아 능력있는 부흥사가 되고 싶었다. 믿음(?)으로 목회성공하여 세상적으로도 출세하고 보란듯이 자랑하며 살고 싶었다. 욕망으로 불타는그런 나의 귀에 들리는 기적과 대박의 예화는 그야말로 그 욕망의 불을 더 거세게 만드는 기름이요 신나였던 것이다. 동해의 어느 어부교인이 교회건축에 헌금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날 쳐 둔 그물에 방어(고래?)가 수도없이 잡혔다. 쳐 둔 그물의 작은 코로 방어떼가 일렬로 줄을 서서 들어갔단다. 있을 수 없는 기적이었다. 건축헌금이 모자라 다시 기도하고 그물을 쳤더니 그런 기적이 또 일어 났다. 얼마나 놀랍고 부러운 이야기인가? 내게도 그런 일이 있기를! 주여! 내게도 그런 축복을 허락하옵소서!! 모두가 기적과 대박의 주인공이 되고 싶을 뿐이다. 얼마 전에 한국교회 강단에서 연일 히트치던 예화다. 이런 류의 예화는 분명 한국교회의 큰 불행이다. 누가 고관이 되고 출세하면 간증문이 연일 신문을 장식하고 누가 사업에 성공하면 또 부흥회 강사로 나서기 시작한다. 자기 인생이 잘되고 잘 풀린것을 하나님의 은혜라며 자랑하고 다닌다. 대다수의 교인들은 그걸 들으며 욕망에 붙잡혀 휩쓸린다. 하나님을 끼우지만 결론은 자기가 잘해서 잘됐다는 얘기이고 또 무얼 먹고 무얼 마시냐는 식의 이방인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렇게 복받지 못한 나는 믿음이 없는자이니 더 열심을 내고 더 노력해야한다. 불행이다! 인간의 욕망에 뿌리를 둔체 끝없이 그 욕망을 부추기는 그 모든 예화는 분명 엄청난 불행이다. 그 불행의 마술속에 한국교회가 묶여있고 빠져있다. 비유는 나를 작은 하나의 퍼즐조각이 되게 하였다. 하나님께서 그리시고 맞추시는 완성된 그림의 퍼즐 한조각! 오직 주만이 그림의 완성도를 아실 것이었고 또 그 그림에 따라 정확히 맞추어 가실것이다. 나는 다 알 수 없는 자가 되었고 안다해도 그림의 극히 적은 일부분 만 알뿐이다. 구석이든 꼭대기든 어디든,하나님께서 옮겨놓으신 그 자리 말이다. 종들의 말씀 속에 있는 무수한 "비유에 내 귀를 기울이"며 나를 본다. 또 나의 마음을 살핀다. 그럴 때마다 과거의 육신의 욕망은 사라진다. 아니 설자리가 없다. 보이는 건 내가 아주 작은 퍼즐조각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럴 때마다 마음에 쉼이 온다. 예수님께서도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한다(마13:34,35). 나의 마음을 살피고 나의 행할 바를 가늠케 하는 비유의 숲을 오늘도 조용히 거닌다. 세미하게 들리는주의 설명을 통하여 드러나는 "창세로부터 감추인 것들을" 발견하고 기뻐하며 감사와 영광을 주께 돌린다. 이제 겨우 눈을 뜨고 보는 신기한 세상! 부디 긍휼히 여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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