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계!
마음의 세계! 나를 부인하는 세계! 믿음의 세계! 죄사함과 구원을 통한 거듭남의 세계!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아내의 배려로 시간이 충분했던 형편은 나에게 행운이었다. 나는 마음껏 믿음의 세계로 빠져 들어갔다. 나를 세우면 그 즉시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 질 수 밖에 없으며 자기 의와 열심으로 행하다가 하나님께 대적의 자료만 쌓을 수 밖에 없다는 글은 나에게 쇠망치였다. 자기가 죽어야 한다는 글이 나오면 끄윽끄윽 눈물이 났다. 거듭남, 죄사함, 구원, 생명, 변화, 감사, 하나님, 예수님,소망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마음이 그냥 녹아버렸다. 나는 새로와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나는 웃고 있었다. 나는 윗니 양 쪽으로 덧니가 나서 늘 시원하게 웃질 못했는데 어느순간 애들 앞에서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교정해야 웃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내가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놀라운 일이었다. 한없는 평안이 내 안에 있었다. 그 깊이와 넓이를 알 수 없는 평안이! 모든 것이 새로와지기 시작했다. 이전의 내가 아니었다. 말씀이 믿어지고 매사에 분별이 왔다. 방송으로 듣는 목사들의 설교가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자가당착에 빠진 이야기인지 들을 수가 없었다. 전에는 대단하게 보며 너무 부러워한 분들의 설교였는데----. 교회와 종들을 통하여! 한밭교회 저녁예배에 처음 참석했다. 꼼짝 못하고 말씀을 들었다. 장로님들께서 교제해 주셨다. 그럴 때마다 신앙의 의문이 하나씩 풀리면서 깨달음의 기쁨이 밀려왔다. 하나님의 말씀은 죽은 자에게 들리며 오직 의인이 믿음으로 산다고 하실때 난 흔쾌히 동의했다. 죄인이라 믿음으로 살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내 신앙이 왜 제대로 안되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구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죄인인데 믿음으로 살려 했으니 안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거늘!! 박목사님 대전도집회가 기다려졌다. 유의규목사님 예비집회는 신선하고 은혜로왔다. 김성훈목사님의 말씀은 나로 이유없이 눈물짓게 했다. 고대하던 박목사님 대전도집회에 다 참석했다. 그렇게 고상하고 차분한 집회는 처음 보았다. 내가 알던, 내가 해 오던 감정적인 집회와는 차원이 달랐다. 옳다 싶었다. 나는 나를 인도해 준 모친님 옆에 앉아 말씀을 들었다. 김태호목사님이 수영을 배우려면 몸을 쭈욱 늘어뜨려야 한다는 짧은 멘트가 나를 눈물쏟게 했다. 박목사님의 레위기 4장 말씀은 참으로 은혜로왔다. 넷째 날 이사야 53장 6절 말씀이 믿음으로 내 마음에 들어왔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기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나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다 넘어가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후속집회는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일본에서 오신 주종식목사님이 금요일 말씀에서 구원 이후에 자기를 보고 슬픈 사람은 그 삶이 참 복되고 아름답게 되더라는 한마디에 나는 전율했다. 나는 그 당시 내가 알 수 없는 서글픈 마음에 시도때도 없이 눈물을 흘렸었다. 서럽고 슬프고 안타깝고 애잔하고 잔잔한 내 마음의 눈물! 대체로 서럽고 쓸쓸한 눈물이었다. 지난 날의 나의 선과 의로 살아온 어리석은 삶에 대한 회한? 나는 그 눈물속에 잠기고 싶었고 또 잠길 수 있었다. 기분이 좋았고 행복했다. 영원히 그렇게 머물고 싶을 뿐이었다. 교회에서의 간증! 나는 은혜로 교회에서 세 번 간증했다. 자꾸 간증하고 싶었다. 나는 두서없이 간증할 수 밖에 없었다. 나를 인도한 모친께서는 여러번 전도를 했으나 실패하자 마음 밭이 좋은 사람을 전도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었다고 한다. 과연 내가 마음 밭이 좋은 사람인가? 하나님께서 내 안의 의를 다 부수신 것은 너무 분명했다. 나는 한없이 높고 좁은 탑 안에 꼭 낀채로 비명도 못지르고 갇혀있는 내 모습을 보았다. 내 영혼의 실상이었다. 새 집을 지으려면 터에 있는 집을 완전히 다 허물어 아무것도 없이 평탄하게 해야 제대로 지을 수 있다는 마음도 일으켜 주셨다. 교회로 가면서 나는 늘 울었다. 내 안의 어둡고 더러운 죄악의 기운들이 안개의 사라짐같이 빠져 나가고 구름이 걷히는 것처럼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난 의인이야! 죄사함 받았어! 난 거듭났어! 난 구원받았어! 이런 고백이 내 입에서 계속 터져 나왔다. 나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나 홀로 걸어왔다. 피곤하고 힘들었으며 많이 서러웠다. 나는 흑암에 묻혀 갈 길 몰라 방황하는 한마리 길 잃은 양이었다. 나의 앞 길에 가끔 불이 나타났지만 그건 다 도깨비 불이었다. 캄캄한 중에 비추는 불이니 반갑게 달려가 잡으면 그 불은 곧 사라졌다.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원수 마귀의 속임수에 놀아나며 난 끝없이 조롱당했고 상처를 입은체 내버려졌다. 내가 내 아버지 집에 들어와 내 지난 날을 돌이켜 보니 내 삶은 목이 날아간 체 죽어 끔찍하게 썩어 뼈만 남은 흉칙한 짐승의 모습이었다. 그 참상이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내가 한다는, 내가 옳다는, 나는 의롭다는 생각은 지긋지긋하고 징그러운 일이 되었다. 나를 의롭게 보고 나를 세우는 일이란 얼마나 어리석은가? 주의 일을 내가 할 수 없는 일 인줄은 알았지만 정작 그 방법까지도 할 수 없음을 알았어야 했다. 무조건 열심히 기도하고 구하면 되는 줄만 알았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제라도 바른 길을 알았으니 얼마나 다행스럽고 복된가? 마음의 선을 긋고! 마음을 정해야 했다. 이미 옳고 그름을 판단했던 나에게 고민이 생겼다. 그냥 기존의 교단과 위치에서 다시 목회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교제를 하면 기도하라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대전도집회 기간 중 이한우목사님으로부터 기도는 핑계이니 마음의 선을 그으라고 말씀해 주셨다. 기도가 핑계라고? 그 말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생각할 수록 너무도 옳은 말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버리고 교회와 종들에게 속하기로 선을 그어 버렸다. 이후로 그 문제로 인한 근심은 사라졌다. 죽은 내가 무얼 한다는 것이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교회와 종들에게 순종하는 길이 내 살 길이라는 생각이 견고해졌다. 추석에 집에 가서 수십년 믿으신 어머니와 부딛혔다. 인간은 죄인이라며 죄 없으면 지금 당장 기도응답을 받아내라는 호통에 참 막막했다. 부여 형님에게로, 옥천 누님에게로, 대전 월평동의 작은 어머니에게로 달려가 복음을 전했다. 모두 건강을 잃으신 분들이라 말씀을 잘 들었다. 시내로 골목으로 복음을 전하러 돌아다니다가 아내와 다투었다. 아내는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내에게도 주의 은혜가 필요하다. 나를 위하여 수고하고 희생한 아내는 나의 변화의 행로를 받아들일 수 없으리라! 왜 하필이면 거기냐고 하소연한다. 다시 교단에 속하여 목회하라고 사정도 하고 엄포도 놓는다. 그러나 나는 담대하다. 내 아내도 나처럼 되어야 한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마치며! 인간이 어떻게 죄 없다 할 수 있는가? 정색하고 세 번 물으면 다 죄인이라고 자백할 수 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구원 받고 보니 내 죄는 씻은 듯 사라졌다. 어디를 보아도 내 안에 죄는 없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었다. 구원의 날도 분명 있었다. 교회와 종들로부터 받은 은혜가 너무 크다. 주의 은혜로 갚을 수 있길 바랜다. 대전도집회 때 박목사님을 뵈었다. 조금 위축되었지만 평온한 가운데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너무도 인자하시고 점쟎으신 분이셨다. 마칠 때 하나님이 쓰시는 종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다. 난 깜짝 놀랐다. 난 정말 하나님이 쓰시는 종이 되고 싶었다. 내 원함이 아닌주의 은혜로 쓰임받길 기도한다. 집회때 받은 "회개와 믿음"을 읽고 감탄한 부분이 생각난다. 행위를 통해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가르치는 목사들이 한국강단에 설 수 없는 날을 열겠다는 각오의 말씀! 이미 오래 전에 이 마음을 품으셨음을 생각하니 입이 다물어지고 할 말이 없다. 상상할 수 없는 세계임이 분명하다. 나는 마음이 조급하다. 뛰고 싶고 달리고 싶다. 아니 차라리 날고 싶다. 그러나 ----. 날기 위해서, 이기기 위해서, 뛰기 위해서 모든 일에 절제해야 한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 까 두려워 함이라"(고전9: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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