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몸부림!
선화동에서 옛 은사의 목회를 협동목사로 있으면서 돕기로 했다. 시간이 나면 골목으로 다니며 전도(?)를 했다. 웬지 가슴이 뜨거웠다. 겨울인데도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하루는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 지팡이를 짚고 불편한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 분을 붙들고 내 소개를 하고 안수기도를 했다. 알고보니 침례교회에 다니는 집사였다. 그 겨울을 그 분과 같이 보냈다. 큰 일식집을 경영하며 사업을 확장하다 부도를 맞았고 풍까지 와서 몸의 반이 마비가 된 상태였다. 마음이 선했고 곧았으며 여전히 재기의 기회를 엿보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나는 그 분을 기도로 일으키려 애썼다. 아침에 동네 슈퍼 앞 의자에 앉아 찬바람을 맞으며, 먼지와 매연을 마시며, 커피 한 잔을 나누며 얘기를 나누다가 점심에 헤어지면서 언제나 간절히 안수기도를 했다. 그 겨울 서너달을 거의 날마다 그렇게 했다. 이 분이 성경의 중풍병자처럼 일어날 수만 있다면 같이 한 번 교회를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일어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받을 돈이 있다길래 과감히(?) 헌금을 제안했다.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난 믿음(?)을 가지고 목회의 밑거름이 되도록 드려달라고 권유했다. 하나님께서 그 중심을 보시고 건강도 주시고 사업도 다시 일으켜주실 것이라고 부추겼다. 나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분은 내 말을 들을 수 없었다. 그 돈을 받지도 못했을 뿐 더러 받았다 해도 그 형편에 드리기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그 한겨울의 몸부림도 헛수고가 되고 말았다. 나는 서서히 꺾이기 시작했다. 임박한 구원의 날! 봄이 왔다. 나는 나의 삶과 주변을 돌아보았다.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는 것인가? 이미 오랜 전부터 부모,형제,친구들로부터 원망의 소리를 들어왔지만 좋은 날이 오리라 기대를 하며 견뎠는데----. 그 좋은 날이 올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돈이 문제였다. 돈을 빌려 쓴 나는 위축될 수 밖에 없었고 숨어들 수 밖에 없었다. 친구들은 나를 조롱했다. 두고보자 했지만 이젠 그 말도 할 수 없었다. 영원한 우군이었던 장모까지도 나에게 너무 심한 말을 했다. 내 잘못이 컸지만 나의 마지막 자존심에 상처가 깊이 났다. 미국에 공부하러간 후배가 무슨 일로 들어왔는데 전화만 하고 그냥 미국으로 들어가 버렸다. 목회를 그만두었다니 실망하는 듯 했다. 늘 형동생하며 지내던 관계인데 천안에서 일을 보고 날 보지않고 미국으로 들어간 것을 알고 난 후 난 큰 충격을 받았다. 너마저!!! 모든 관계가 불화로 종결되고 있었다. 난 친화를 원했는데----. 이럴수가! "응답받지 못한 자"라는 정죄가 나를 눌렀다. 서서히 나의 때가 끝나가고 있었다. 그 모든 기도가, 그 숱한 부르짖음이 응답되지 못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내 "주여!"하는 기도소리 한 번만이라도 하나님이 들으셨다면 내 처지가 이렇게 될 수는 없었다. 나는 하나님께 대들었다. 왜 나를 이렇게 속이느냐고! 언제까지 이렇게 속이실꺼냐고!! 그러나 하나님은 속이시는 분이 아니라는 지식은 있었기에 나는 나의 불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의는 내 안에 조금도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게 의롭고 선했던 나였지만 내 주위의 모든 것이 끊기고 깨지면서 나는 불의한 자로 드러났다. "하나님! 내 안에 당신이 받으실만한 의가 1%도 없군요." 시작된 구원! 난 더 이상 살 소망이 없어졌다. 생업에 뛰어들어 이리저리 다니며 지쳐 힘들어하는 아내를 보면 미안하고 암담했다. 두 아이에게 아무것도 사 줄 수 없는 내 형편앞에 나는 절망했다. 사지가 멀쩡한 내가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되었는지----. "주님! 나를 데려 가십시오. 이렇게는 더 이상 살 수 없습니다. 다시 목회를 하게 하시려거든 은혜를 베풀어 주시든지 마음대로 하십시오." 빈 1층에서 잠자러 올라오기전에 그렇게 떠듬떠듬 기도했다. 그러면서 성경 로마서를 읽었다. 4,5일 그렇게 기도하면서 로마서 5장 1절을 읽었다. 억!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이루자" 신기하게도 이 말씀이 마음으로 사-악 들어왔다. 아하! 그렇구나. 하나님과의 화목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야 되는데 나는 나의 열심으로 말미암는 줄 잘못 알았구나. 나는 이 말씀을 그대로 받았다. 물에 빠져 죽어가면서 잡은 지푸라기같이 여겨졌다. 아무것도 믿을 것이 없어졌으니 이 말씀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전에 없는 일이었다. 마음으로 이 말씀을 믿고 그대로 입으로 시인했다. 다시 입으로 확증한 나는 감사의 기도를 짤막하게 드렸다. 2007년 6월 28일! 나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내가 거듭났음을 느낄 수 있었다. 새 하늘과 새 공기였다. "어! 내가 거듭났네. 거듭났어!" 그날 내가 일어나면서 뱉은 첫마디였다. 아내가 그 말을 들었다. 그렇게 편안하게 잠을 자고 깬 것도 처음이었다. 자고나니 스타가 된 것이 아니라 자고나니 거듭나 있었다. 놀라우신 구원의 손길! 그 즈음에 주간 기쁜소식지가 두 주간 집 앞에 놓여 있었다. 읽어보니 너무 은혜가 되었다. 박목사님의 에스더서 말씀이었는데 내 처지와 마음이 거기에 그대로 나타나 있었다. 모르는 분은 아니었지만 말씀이 너무 좋았다. 그 와중에도 전도한다고 골목에 다니다가 한밭교회 모친을 만났다. 불편하게 걸어가시길래 안수해서 병고쳐드리면 교인되겠다 싶어 뒤를 따라갔다. 힘이 드셨는지 계단에 앉으시길래 말을 걸었다. 알고보니 전도지를 넣으신 분이셨다. 안수할 기회를 엿보며 대화가 시작되었는데 그 노인의 입에서 복음이 정확하게 고백되고 있었다. 어! 이건 보통 일이 아닌데----. 난 모친님께 더 읽을 것이 있으면 주십사 했다. 집에서 기쁜소식지를 두세권(?) 얻어다 읽었다. 너무 은혜로왔다. 난 읽을거리가 더 필요했다. 전화를 하니 남대전교회였다. 바로 달려가 전병규목사님과 짧은 대화를 나누고 책을 몇 권 얻었다. "회개가 빠진 시몬의 신앙"은 너무 좋았다. 집회초청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난 읽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견딜 수 없어 도마동으로 달려갔다. 마침 비치대가 있어 기쁜소식지를 많이 가져올 수 있었다. 나는 대적의 재료만 쌓는 카인임이 드러났다. 이럴수가? 선교회가 이런 곳이네. 박옥수라는 분이 이런 분이야. 책장을 넘기면서 감동을 받았고 충격에 휩싸였다.책 장을 한장 한장 넘기면서 난 신음했다. 으아윽!!! 가슴이 오그라들고 목이 막혔다. 책 자체가 너무너무 믿을만 했다. 다시 교회로 달려가 빠진 홋수를 챙겨온 것이 수십권은 됐다. 그 많은 책 중에 오자나 탈자가 거의 없었다. 사이비종교단체들이 보내는 인쇄물의 조잡함에 신물이 난 나는 기쁜소식지가 내용이나 사진, 편집 등등 어느것 하나 나무랄 것이 없어 너무 너무 믿음직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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