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1일 영상교제 말씀
창세기 27장 19절 야곱이 아비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청컨대 일어나 앉아서 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의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저는 옛날에 장로교에 다닐 때 신앙을 선악의 기준으로 굉장히 많이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해가 안 가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기생 라합이 구원을 받았는데 실제로 기생 라합은 거짓말을 했거든요. 자기 집에 정탐들을 숨겨놓고도 없다고, 그 집에서 나갔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어떻게 거짓말한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가 있느냐? 그런 부분이 잘 이해가 안 갔고 또 이제 야곱이 축복받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자세히 읽어보면 실제로 야곱은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가 아닌데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입니다” 하고 이야기하는데 그걸로 말미암아 야곱이 축복받는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옛날에 내가 구원을 받기 전에 내 선이나 의의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을 때 이런 게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거예요. ‘아니 하나님께서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거짓말 하는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냐? 그리고 거짓말한 사람이 어떻게 복을 받느냐? 이건 아니지 않느냐?’ 그런 이야기들이 생각에 생각을 이어 떠오르니까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다는 거지요. 그런데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우리는 사단에게 속아서 선악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선한 사람이 천국 가고 악한 사람을 지옥 보내는 게 아니고 또 인간이 가진 선의 기준과 하나님이 가진 선의 기준이 전혀 다른데 인간은 도둑질하고 거짓말하고 살인하고 간음하면 그걸 악하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세계는 전혀 그것하고 다르다는 거지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선한 분은 하나님 한분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하고 다른 마음을 가진 것이 다 악한 것이고 하나님의 기준에 가장 선한 것은 뭐냐하면 하나님하고 같은 마음을 가진 그게 가장 선한 것이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가진 기준하고 하나님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자세히 보면 하나님이 노아홍수 당시에 누구를 멸했습니까? 도둑질한 자, 거짓말한 자, 살인한 자를 멸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 마음하고 다른 마음을 가진 자를 하나님은 멸하셨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자기 기준대로 선한 기준을 가지고 살지만 하나님 마음하고 다르면 그건 전부다 악한 거라는 거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가진 선악의 기준하고 하나님의 기준은 너무너무 다르다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이 성경 말씀을 보면 야곱이 아버지 앞에 복을 받기 위하여 나갔는데 야곱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분명히 야곱은 둘째 아들 야곱인데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하고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만일에 야곱이 정직해서 그 소리를 못하고 “에서가 아니고 나 야곱이예요.” 그랬으면 그날 야곱은 복을 못 받고 저주를 받았을 거라는 거지요. 그런데 야곱은 말하기를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한 거예요. 이야기를 자세히 읽어보면 이건 야곱의 자기 마음이 아니고 자기 마음에는 도저히 자기가 에서라고 이야기를 못하고 ‘양심이 있지 내가 야곱인데 어떻게 에서라고 말해? 아버지께 발각되면 어떻게 돼? 말도 안 돼.’ 야곱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을 읽어보면 야곱은 자기 마음이 아닌 어머니의 마음을 받는 거지요. 자기가 야곱인데 에서라고 거짓말한 게 아니라 자기 마음을 이야기한 게 아니라 어머니의 마음을 이야기했다는 거지요. 어머니가 “니가 에서라고 말해라.” 그 이야기를 했다는 거지요. 그래서 야곱이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복을 받은 게 아니라 자기 마음을 나타낸 게 아니라 ‘어머니의 마음을 받았다.’ ‘어머니 마음을 이야기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가장 악한 게 뭐냐하면 아담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게 될 때 하나님이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고 그랬는데 그 마음을 버리고 뱀의 말을 듣고 사단의 음성을 듣고 그걸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만가지 죄악이 되어졌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실제로 죄의 근본은 뭐냐하면 하나님의 마음하고 다른 마음이 죄라는 거지요. 아담이 하나님의 마음하고 다른 뱀의 마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인간이 죄악 속에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데 이제 우리가 돌아가야 할 것은 내 어떤 선한 기준, 내 어떤 의로운 기준으로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 안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거지요.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선하다고 할 때 난 선한 거고 악하다고 하면 악한 건데 이제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 ‘내 생각에는 내가 더러운 죄인인데 분명히 내 생각에는 내가 죄인인데 하나님은 나를 의롭다고 했다. 그럼 내 생각으로는 내가 죄인이지 의인이라고 소리를 못 한다.’ 내 생각에는 분명히 죄인이지만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셨다면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니까 난 의인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거지요. 그게 믿음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는 것. 야곱도 그랬습니다. 자기 마음에는 도저히 자기가 에서라고 이야기를 못해요. “아버지 저는 야곱입니다. 제가 아버지의 둘째입니다. 저는 에서가 아닙니다.” 그래야 하는데 야곱은 자기 마음을 버렸습니다. 자기 생각을 모두 다 버리고 어머니의 말, 리브가의 말을 받아들여서 “난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라고 야곱은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지요.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야곱처럼 그렇게 되질 못한다는 거지요. 자기 양심을 믿고 자기 생각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에 ‘내가 야곱인데 어떻게 에서라고 말해? 난 그렇게 말 못해.’ 똑 같애요. 우리가 구원받는 이야기나올 때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하는데 내 생각에 내가 죄인인데 어떻게 의롭다고 그래? 난 악해. 난 추해. 난 절대 의롭다고 못해. 난 죄인이야.’ 자기 생각을 말하는 거지요.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 마음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옛날에 제가 장로교에 다닐 때는 선악의 기준이 착하고 악한 것, 죄를 짓고 안 짓고 거짓말하고 안하고 거기다 기준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나중에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느껴지는 게 선악의 기준이 하나님의 마음하고 같은 게 선한 것이고 하나님 마음과 다른 게 악한 거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 수가 있었습니다. 가장 악한 건 하나님의 마음을 떠난 겁니다. 그래서 내 생각을 따라서 사단은 내 의를 세우기 위하여 내가 내 양심을 가지고 이야기한다고 자기 말을 하는데 쉽게 말하면 하나님 말씀 아닌 모든 것은 악한 거고 하나님 마음 아닌 모든 것이 악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떠나면 절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선악의 기준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이 의롭다 하면 의롭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이 선하다면 선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자기 양심의 기준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에 자기 양심에 선한 것 같지만 하나님을 대적하는 거기 때문에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거지요. 에서는 자기 양심대로 했는데 멸망을 당했고 야곱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기준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일 때 그게 선한 것이고 의로운 것이고 거룩한 것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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