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허물 많은 믿음의 사람들
박옥수 목사님의 창세기 강해입니다. 97. 허물 많은 믿음의 사람들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창세기 20장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브라함이 거기서 남방으로 이사하여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우거하며, 그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보내어 사라를 취하였더니”(창 20:1,2) 지난 시간에는, 창세기 19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과 고모라 성에 들어가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이야기를 말씀드렸습니다. 창세기 20장에는, 아브라함이 가데스와 술 사이의 그랄에 우거하면서,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두 번이나 자기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거짓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자기 아내 리브가를 누이라고 속인 일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 율법은 없었지만, 그것은 명백한 거짓말이었고, 하나님 앞에서도 큰 실수였습니다. 아브라함, 노아, 야곱, 다윗, 엘리야 등 믿음으로 살았던 하나님의 귀한 종들을 보면, 그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믿음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들 속에 나타났던 인간적인 약점과 허물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노아가 포도주에 취하여 옷을 벗고 누웠던 일이 그렇습니다. 또 엘리야가 한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고 비가 내려오게 하는 그런 놀라운 믿음의 역사를 보이고 나서도, 이세벨이 두려워 벌벌 떨면서 하나님 앞에 죽기를 구한 일도 그렇지요. 그리고 우리가 아는 대로 야곱의 생애나 다윗의 생애에도 참 많은 허물이 있었고, 특히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생애 속에서도 많은 허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성경 속에 왜 이들의 허물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계십니까? 물론 하나님은 그들의 허물을 기록하지 않을 수도 있으셨겠지만, 굳이 그런 모습들을 보여 주시는 이유는, 우리가 흠이 없고 완벽해야만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를 짓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죄를 짓게 되면 쉽게 실망해 버리고 좌절해 버리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합니다.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성경 읽기도 싫어하고, 기도하기도 싫어하며, 마음에 부담만 갖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를 짓기 때문에 고통하고 슬퍼하면서 죄를 짓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참된 은혜는 죄가 없고 완벽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입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로마서 5장에는,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은혜’는, 죄를 짓지 아니하고 정직하고 올바르게 사는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십일조도 잘 내고 기도도 잘하고 주일 잘 지키는 사람들이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말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고 저주를 받아야 마땅한 추하고 더러운 사람들이 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은혜’는 죄가 없어야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범죄한 사람이라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도움은, 완벽해서 아무 흠이 없거나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족하고 허물투성이인 사람이 받는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살펴보면, 주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에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만났지만, 자기 나름대로 잘 믿으며 온전하여 흠이 없다고 생각했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어느 누구도 주님 앞에 은혜를 입지 못했습니다. 반대로 간음한 여자나 더러운 세리나 창녀 같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주님 앞에 나와서 은혜를 입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당신 앞에서 자기의 완전함을 드러내고 자기의 깨끗한 것을 드러내고 자기의 정직한 것을 드러내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간은 연약하고 추하고 부족한 것을 인정하고, “하늘나라에 가려면 우리의 어떤 행위나 노력으로도 안 됩니다. 다만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하나님, 저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하는 자에게만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이나 다윗이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정말 인간적으로 대단하고 완벽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와 동일하게 죄가 많고 연약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해야 했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을 때에 비로소 그들은 온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능력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고,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만 합니다. 저는 신앙 생활을 하면서 세월이 가면 갈수록 제가 하나님 앞에 정말 무익한 인간임을 깨닫습니다. 참 놀라운 것은, 제가 연약하고 부족한 인간임을 깊이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많이 입는 자가 되더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제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을 때에 비로소 제 속에 하나님의 능력과 선과 의와 거룩함이 나타나고, 아름다운 부분도 나타나게 되더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앞서 믿음의 길을 걸어간 하나님의 종들은 허물이 없거나 온전해서 하나님 앞에 은혜를 입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정말 하나님 앞에 추하고 부족하기 짝이 없었지만, 오히려 그들은 그러한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었고, 그 은혜로 온전해지고 거룩해졌습니다. 아브라함이나 다윗과 같은 사람도 범죄한 것을 본다면, 우리가 완벽해져서 죄를 짓지 않으려거나 스스로 정직하고 깨끗하게 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완벽해지면 완벽해질수록, 정직해지면 정직해질수록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병을 고쳐 주시는 은혜를 입을 수 없습니다. 부유한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물질을 공급받는 은혜를 입을 수 없습니다. 슬픔 속에 젖어 보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위로를 맛볼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슬픔이 있고 고통이 있고 추함이 있고 더러움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에 가장 적합한 상태라는 사실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더러운 죄가 있다면 하나님의 거룩함과 의로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난하다면 하나님의 부요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연약하다면 하나님의 강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함과 의와 온전하심과 평안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하여, 우리 인간의 삶을 좋게만 하지 아니하시고 삶 속에 고통이나 슬픔이나 범죄나 연약함이나 실수를 허락하셨습니다. 우리가 죄 속에 빠질 수 있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통에 빠뜨려 좌절과 절망을 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죄 속에 빠진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은혜를 입게 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의롭지 못하고 거룩하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입혀 주시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를 받는 것은, 우리가 말씀대로 신앙 생활을 잘하고 온전하게 사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온전해졌다면, 그것은 우리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얻어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생애에 많은 허물을 드러냈습니다. 다윗도 많은 허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볼 때 하나님의 귀한 종들은 다 연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방송을 듣고 있는 청취자 여러분에게도 연약함이 있습니까?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죄악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에 부끄러운 과거가 있습니까? 아니면 여러분 속에 남이 알지 못하는 병이 있어서 고민하고 있습니까? 그런 모든 것들은,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위하여 허락하신 조건들입니다. 연약하고 부족한 것들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입을 수 있습니다. 잘하고 온전해져서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연약하고 부족하다고 슬퍼하거나 괴로워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범죄를 했더라도 좌절하고 실망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을 때, 하나님의 귀한 손길이 우리에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하나님의 종들이, 악하고 추하고 더러웠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신약에 나타난 사도 바울은 누구보다도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가 공부를 많이 했거나 똑똑하거나 잘났거나 착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하나님과 교회 앞에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그는 죄인 중에 자신이 괴수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하나님 앞에 은혜를 입어 의롭게 되었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의는, 자기가 착하게 살아서 얻은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얻은 의였습니다. 사랑하는 청취자 여러분! 오늘 아침, 여러분의 연약함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조건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부족할수록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고, 은혜를 입을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온전해진 뒤에 은혜를 입으려는 생각을 버리시고, 부족하고 연약함 때문에 하나님과 더욱 가깝고 복된 삶을 사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이 시간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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