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퍼온 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은 정확성과 완전성을 기본으로 한다. 우리가 세상이 말씀으로 창조되었다고 믿는 것은, 말씀의 정확성과 완전성에 대한 신앙고백과 같은 것이다. 말씀의 창조력이 정확한 성취력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어느 민족이든 이러한 믿음으로 성경을 붙잡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민족을 변화시키셨고, 그 민족을 사용하셔서 말씀을 성취시켜왔다. 히브리 민족이 그러했고, 시리아 민족이 그러했으며, 잉글랜드 민족이 그러했다. 그러나 우리 한국 민족은 어떠한가? 한국 기독교가 1200만을 자랑하고 세계적인 교회성장의 나라로 발전했다지만, 왜 우리 민족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했으며, 오히려 거품투성이의 한국교회란 평가를 받아야만 했는가? 다리가 무너지고 백화점이 무너지고 하늘을 날던 비행기가 추락하고 배가 침몰하고 지하 공사장이 폭발하고, 급기야는 온 나라 경제가 기반부터 무너져내리는 이 유래 없는 연속 재난들이 대체 누구를 위한 경고일까? 모래 위에 세워진 한국교회가 성경의 기초에 대해 안일하고 오만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던 무렵, 그 때부터 줄지어 터지는 대형사고들이 한결같이 근본 기초의 중요성을 경고하고 있는 것도 결코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근본 기초에 위기가 찾아왔다면, 이는 또한 근본 기초를 새롭게 다질 수 있는 기회를 의미하기도 한다. 진정한 위기는 이 기회마저 헛되게 하는 어리석음이다.

오류 없는 "완전한 성경"을 판가름하는 열쇠는 비평학이 아니라 거듭난 자의 믿음이요 영적 판단력이다. 완전한 것은 학문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가 학적 비평의 잣대만으로 킹 제임스 성경을 함부로 비판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처사이다. 본문의 영감성과 보존섭리를 믿는 것이 광신이요 미신이라 말하는 자들은 대체 무엇을 믿는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는 것은 미신이고, 학문을 숭배하는 것은 객관이란 말인가? 바른 성경의 전승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성경신자들)의 증거와 본문 자체의 영감의 증거,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증거 등을 통해 주로 확인되며, 학적 증거는 그 다음에 뒤따라야 한다. 하나님의 증거는 바른 성경과 바른 성경의 기초 위에 세워진 바른 교회의 증거이다. 바른 성경이 바른 교회를 증거하고, 바른 교회가 바른 성경을 증거한다. 한국교회가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학문의 증거에만 매달리면, 성경문제의 진정한 답은 찾을 수가 없다. 그나마 웨스트코트, 호르트와 그들의 추종자인 메츠거의 이론에만 편중된 왜곡된 지식으로 일관하고 있으니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완전한 성경이라 함은 인쇄상의 오탈자조차 없다는 말이 아니다. 언어와 인쇄술과 책 자체는 불완전할지라도 본문은 완전하게 보존될 수 있는 것이 성경의 신비다. 바른 본문만 확인될 수 있으면 인쇄상의 오탈자는 언제든지 정정할 수 있으므로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옛 문체를 현대 체로 바꾸는 문제도 성경 무오성을 손상시키지만 않으면 문제될게 없지만, 현실적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더욱이 언어 발달이 정지해 있지 않는 한, 오늘날과 같은 초고속 정보화 시대에는 해마다 성경을 개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변하지 않는 진리의 책이기에, 이러한 실용적인 생각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일단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이라고 확인되면, 그 성경의 언어는 따로 "성경언어"로서 존중할 필요가 있다. 뉴 킹 제임스 성경의 경우도 약간만 고친 것이 아니다. 실제로 킹 제임스 성경과 비교해 보면 8만 군데 이상 차이가 난다고 하니, 뉴 킹 제임스 역본(NKJV)이란 명칭 자체가 정직하지 못한 것이다.

수맣은 구절들이 삭제되었어도, 심각하고 치명적인 교리적 손상을 주거나 믿음의 기반을 해칠 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주장이 과연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이는 마치 비행기 부품을 수없이 빼내 버렸어도, 겉만 멀쩡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우기는 것과 같다. 얼마간은 괜찮아 보일지 모르지만, 추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단지 5 퍼센트의 오류가능성만 가진 성경으로 설교하며 돌아다닌다고 생각해 보라. 당신의 모든 설교에는 항상 5 퍼센트 틀릴 가능성이 따라다닌다. 그 설교가 영혼들의 영원을 책임질 수 있을까? 그러나 변개된 성경은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하며 치명적이다. 직접 구절들을 비교하여 확인해 보면 얼마나 심각하며 치명적인지 실감할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밝혀 주는 결정적 구절들이 상당부분 삭제되거나 변개되었고, 구원, 속죄, 부활에 대한 교리는 말할 것도 없고, 예수님의 이름이 수도 없이 삭제되었으며, 심지어는 성경 무오성에 대한 구절들도 예외가 아니다. 여기에 대한 명백한 증거들이 이미 숱한 자료들과 책들을 통해 밝혀졌는데도, "하나도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려는 것과 매일반이다. 삼위일체 교리의 사례도 반론의 여지가 없다. 성경 전체에서 삼위일체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요일 5:7의 단 한 곳뿐이다. 이 구절만 없으면 나머지는 해석하기 나름이므로, 이 한 구절이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자들(아리우스파와 여호와의 증인들)에게는 결정적이요 치명적이다. 이 결정적 구절에는 삭제할 수 없도록 시건장치가 되어 있다. 본문에서 선행사인 "증거하는 이(분)"가 남성주어이므로, 이를 받는 세 개의 주어도 남성이 되어야 한다. 수용원문과 킹 제임스 성경은 남성(Father, Word, Holy Ghost)으로 바르게 연결되어 있는 반면, 알렉산드리아 본문과 현대 역본들은 한결같이 중성주어(spirit, water, blood)로 연결되어 있어 모순을 일으키고 있다. 이 결정적 구절이 대부분의 사본에서 발견되지 않는 것은 아리우스파들의 소행 때문이었다. 다행히 변개되지 않은 사본 61(15세기, 더블린)과 코덱스 라비아누스(88과 629)가 발견되어 이 구절의 존재를 명백히 뒷받침해 주고 있다.

사본비평학자들은 킹 제임스 성경과 현대 역본들을 동일한 차원에서 인정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입장이 치우침이 없고 객관적인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그들의 결론은 완전한 성경이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킹 제임스 성경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성경 무오성을 부인해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킹 제임스 성경을 훌륭한 역본이라고 치켜세우는 것도 완전한 성경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다 맞다는 말은 뒤집으면 다 틀리다는 말이 된다. 동전의 앞뒤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킹 제임스 성경 옹호자들을 독선적인 고집쟁이들로 몰아세운다. 심지어는 위험한 광신으로 매도하다가 아예 이단시하기까지 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은밀히 성경 상대주의에 입각한 "세계공용성서"를 준비하고 있다. 그 에큐메니칼 성서가 나와서 공인되면, 킹 제임스 성경 옹호자들은 하나됨을 파괴하는 극단주의자와 이단으로 매도당할 것이다. 그와 같은 상황이 바로 성경이 예고하고 있는 배도(apostasy)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한글 개역성경을 통해서도 한국교회를 부흥시켜 왔지 않느냐고 반문하지만, 이는 논점에서 빗나간 말이다. 물론 하나님의 역사는 그 어떤 것에도 방해를 받지 않는다. 설사 인간들이 성경을 변개하였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으며, 심지어 성경이 없는 지역에서도 얼마든지 복음을 전할 수 있고 말씀을 가르칠 수 있다. 그러나 진리의 기준을 지키고 최종권위를 지키며, 성경 무오성을 지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시지만,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은 보존하여 주신 말씀을 신실하게 지키고 순종하는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한국교회의 양적 부흥은 주로 무속신앙과 혼합된 부흥회 운동을 통해서 이루어져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동안 외국의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줄기차게 복음과 진리를 전해주었기에 그나마 복음적이고 보수적인 면도 갖출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근본기초가 잘못된 상태에서 부흥 위주로 성장해 오다보니 대부분 수입신앙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마침내 거품투성이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동안은 하나님의 긍휼과 다른 나라 성도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지만, 이제는 근본 기초를 다시 다지고, 바른 말씀의 바위 위에 굳건히 서서, 하나님의 마지막 부르심에 응답해야 할 시대적 요청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긍휼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겸손히 하나님의 경고에 귀기울여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성경변개의 책임을 전적으로 인간들에게 묻고 계시는 이상, 가장 엄중하고 무서운 심판의 경고를(계시록 22:18,19)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회피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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