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란과 무정란
달걀에는 유정란과 무정란이 있다.
달걀의 구성을 보면 제일 겉에 알껍질이 있고 그 속에 흰자와 노른자가 있고 노른자 위에는 식물 씨앗의 배아에 해당하는 작은 점 씨눈이 붙어 있다.

그런데 유정란은 이 씨눈에 수탉의 씨가 들어간 것이고 무정란은 이 씨눈에 수탉의 씨가 들어간 적이 없는 달걀이다.

겉을 보아도 속을 보아도 우리 눈으로는 구별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 차이는 엄청나다. 하나는 생명의 씨가 있는 달걀이고 다른 하나는 생명이 없는 달걀이다.

어려서 농촌에서 자라서 어미닭이 알을 품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알을 품을 동안은 거의 먹이도 먹지않도 물도 먹지않고 알을 품는데 하루에 두어번 둥지에서 내려와서 먹이와 물을 먹을 뿐 종일 알를 품는다.
새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한 어미의 모정이란 눈물겹다.

그런데 알을 품는 동안 어미의 열기를 고르게 전달 하기위해 이따금 발로 알을 저어 놓는다.모든 달걀에 대한 어미닭의 사랑은 한결같이 공평하다
교회 성도 각자에 대한 주님의 사랑과도 같다.

품은지 21일이 되면 알껍질(육신의 껍질)을 깨트리고 어미닭을 닮은 귀여운 병아리가 나온다.
그런데 21을 품었어도 병아리가 나오지 않고 죽은 채 있는 닭걀도 있다.
이것은 한번 수탉의 씨가 들어간 적이 없는 무정란 이다.

수정된 달걀은 씨방(우리의 영)에 심겨진 겨자씨 같이 작은 주님의 생명이 잉태되어 자라는데 노른자와 흰자(우리의 자아.혼)을 흡수하여 점점 자아가 소모되고 사라지는 만큼 씨눈(주님의 생명)은 자라나 자아가 완전히 흡수되어 사라 질때 주님의 생명을 온전히 닮은 주님의 모습으로 변화해 어느날 주님 다시 오시는 날 알껍질(육신)을 깨트려 벗어버리고 주님의 형상을 입게 된다.

어미닭이 알을 품는 모습을 보면 주님(성령님)이 교회를 품고 있는 모습을 연상 할수 있다. 주님은 죄사함 받고 거듭난 유정란을 모아 교회라는 둥지에서 알을 품는다.
20일간 알을 품으면 21일째 알껍질을 깨고 어미닭을 닮은 병아리가 나오듯이

주님께서 2000년동안 교회둥지에서 알을 품으시고 어쩌면 2001년 다시 오실때 우리의 모습도 주님의 모습을 닮은 새로운 모습을 홀현히 입고 어미닭을 따라다니는 귀여운 병아리 처럼 주님을 따르게 되지 않을까?
즐거운 소망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주님은 무정란과 같이 생명이 없는 멸망할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고 울으셨다.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태23:37)
오늘도 주님은 탄식하고 울며 잃어 버린 모든 사람을 부르시고 기다리신다.
사마리아인(예수님)은 강도(사단) 만나 거의 죽게된 자를 불쌍히 여겨 그를 보고 이 땅에 오셔서 기름(성령)과 포도주(속죄의 보혈과 번제의 보혈)을 그 상처에 붓고 싸매어 주막(교회) 주인(성령)에게 두데나리온(이틀치 품싹.2000년동안 일할 권세)를 주고 돌보아 달라고 부탁하고 가셨습니다.
부비가 더 들면 돌아올때(영광중에 다시올때) 갚으리라 하셨으니 과연 다시 오실때 우리몸이 변화되는 값을 자신의 권세로 지불 하실 것입니다.
(눅10:30-37)

오늘도 주님은 교회라는 둥지에서 알을 품는 데 거기에는 무정란과 같이 주님의 생명을 받은 순간이 없는 무정란과 같은 사람이 섞여있다면 주님 다시 오실때 빈껍질만 남은 교회 둥지에 몸의 구속을 받지 못한 육신은 죽은채로 버려지게 될것이다.

지금이라도 나는 참으로 확실히 죄사함 받은 순간이 있었는가 확인 해 보고 믿음이 있는가 확증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영원한 나의 운명에 관한 것이기에 소홀히 할수 없는 중대한 일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씨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신 것이 생각나서 창가에 화분을 놓고 강낭콩을 심어 보았다.
물을 주며 새싹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며칠후에 흙을 떠들고 새싹이 솟아 나왔다.배아(싹)는 배젓에 싸인채 솟아 나왔는데 하루가 지나니까 배젓(떡잎)이 갈라지고 배아가 모습을 보였다. 배젓은 배아에 영양분을 공급해 준다.
한1주일후 떡잎은 영양분을 소모하고 말라가드니 며칠후 떨어져 나갔다.
이와같이 우리도 자아의 생명을 희생하고 영을 위해 소모하지 않으면 속사람인 영은 성장하지 못한다.이와 같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자는 점점 주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고 주님의 생명으로 혹 백배.혹 육십배.혹 삼십배 결실하여 주님께 영광 돌리게 된다.

주님은 이 알곡을 거둬 천국창고에 들이기 위해 다시 오신다.
그리스도의 삶은 자아를 부인하고 희생하며 주님을 따르는 생활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런 자에게는 열매가 있다. 이것이 주안에 있는 삶이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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