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세례요한과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의 첫 사역의 메시지를 "회개하라"고 외쳤다. 사도바울은 본인의 사역을 마무리하는 늘그막에도 본인을 '죄인 중 괴수'라고 고백했다. 회개 없이는 아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음은 물론이고 구원도 없다. 주님을 믿는 순간, 영접하는 순간 모든 죄가 용서된다? 세상이 그렇게 살기 편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그것은 편의주의적인 발상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보자. 10년 동안 한 번도 씻지 않았다고 생각하자. 그러면 단 한 번의 목욕으로 때가 다 없어질까? 목욕하지 않은 만큼 더 열심히, 많이 씻어야 한다. 몸도 불려야 하고 비누칠도 해야 한다. 하나 더~ 팔에 철사를 한 쪽 방향으로 100바퀴 돌려 감아보라. 그것을 한 번에 풀 방법이 있나? 아니다. 그것을 풀어 내려면.. 철사를 반대 방향으로 다시 100바퀴 돌려야 한다. 주님의 보혈의 권능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구원도 공짜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피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의지가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보혈이 전능하시다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모든 죄를 완전히 없애주신다는 편의주의적 발상을 지지하는 신학이 아니라.. 죄를 인정하고 자복하고 자백하며 용서를 구할 때.. 그 죄가 어떤 죄라고 할지라도 용서해주실 수 있고, 죄로 인한 악한 영의 역사를 물리쳐주실 수 있다는 의미에서의 위대한 권능의 보혈을 지지하는 신학인 것이다. 구약 시대에는 죄를 지으면, 반드시 그 죄에 대한 한 번의 속죄제가 드려져야 했다. 100번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 속죄제를 100번 드려야 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메시야의 등장은 100번의 속죄제를 1번으로 축소시켜주시는 것이 아니다. 횟수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이 바로 공짜주의인 것이다. 메시야의 등장은 짐승을 잡고 반드시 그 피를 흘려야 했던 속죄의 절차에서... 그 피를 짐승의 피가 아닌 그리스도의 피로 대체하는 은혜를 주셨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리스도의 피에 권능이 있는 것은, 2000년 전에 흘리신 피이지만,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도 회개하며 나아갈 때에 그 피가 속죄의 제물로 드려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지을 때마다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이 단체 이름이 '기쁜소식선교회'이지만, 단언컨대..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에는 '어이없는소식망령회'임이 증명될 것이다. 그 때 가서 피눈물 흘리며 후회하기 전에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라. '혹시나'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든다면, 지금 바로 마음을 돌이키라. 그것이 바로 성령님의 감동이다. 이 글을 보고 반감이 든다면, 당신의 마음을 악한 영이 충동질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딱! 한 번... 속는셈 치고 속으로 이렇게 외쳐보기 바란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날 속이고 있는 구원파의 악령은 지금 즉시 내 생각과 마음을 떠나 주님의 십자가로 떠나가라!" 그러고 나서 인터넷에서 구원파가 왜 이단인지 밝히는 글을 찾아 읽어보기 바란다. 네이버에서 '구원파'라는 세 글자만 쳐도 수많은 자료들이 존재한다. 돈도 안 들고 좋지 않은가? 5분만 투자하면 된다. 주님의 사랑과 열정을 여러분에게 전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 부디.... 주님의 따뜻한 품으로 돌아와서.. 매일 회개하고 주님 앞에 자복하는 삶 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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