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1일 영상교제 말씀
룻기 4장 22절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제가 구원을 받고 난 뒤에 삶을 보면 나라는 이 박옥수라는 사람이 둘이 있으면 하나는 그냥 인생을 살고 하나는 믿음으로 인생을 살고 그러면 너무너무 내가 비교가 많이 될 것 같은 거예요. 사람들은 자기가 하나기 때문에 그런 걸 잘 몰라서 그렇지 저는 박옥수가 만일에 둘이라면 똑같은 박옥수를 하나는 믿음으로 사는 세계 속에 두고 하나는 자기 욕망을 따라 사는 세계에 둔다면 너무 차이가 날 거고 그래서 그 결과가 너무 분명해서 다 믿음으로 사는 걸 배울 텐데 그게 안 되니까 성경에서는 다윗의 삶과 사울의 삶, 똑같이 하나님 앞에 택함을 입었는데 자기 육신의 욕망을 따라간 사울의 삶과 다윗의 삶의 결과 그리고 야곱과 에서,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 이렇게 비교를 해서 성경은 많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쉽게 저화 비교할 수 있는 분이 저희 형님이신데 저희 형님은 저보다 키도 크시고 인물도 상당히 잘 나셨고 저보다 인품이 굉장히 크고 넓기 때문에 항상 저희 형님 곁에는 친구들이 많이 따랐고 사람들이 참 많이 따랐습니다. 제가 저희 형님의 삶하고 제 삶을 비교해보면 비교가 안 되는 거예요. 형님은 정말 훌륭하고 잘 될 수 있는데 형님이 하는 모든 일은 안 되고 나는 정말 안 되고 못난 사람인데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은혜롭게 되고 그걸 내가 비교해 보면서 정말 하나님 안에서 내가 남보다 충성되거나 열심히 하거나 그게 아니고 단 하나 내가 내 삶을 볼 때 내가 너무 악하고 더럽고 추한 인간이라서 ‘내 생각의 세계, 나를 믿고 살면 내가 망하겠다.’ 그 사실을 알고 내 마음을 버린 그것 하나 때문에 주님이 내 마음에 주인으로 와서 사시면서 내 삶 전부를 이끌어주시고 은혜와 복을 주셨다는 거죠. 이제 그런 이야기들을 성경에 찾아보면 너무너무 많은데 제가 이번에 뉴욕에서 룻기를 죽 읽으면서 룻기를 전하면서 그 부분이 제 마음에 진짜 크게 와 닿았습니다. 이제 오늘 룻기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을 읽었는데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여기 보면 이제 룻이 자기 남편이 죽고 애기 하나도 낳지 못하고 아무 것도 없는 다 망한 집이었는데 이제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옮겨가는 이야기가 룻기 1장에 나오는 거예요. 아주 단순한 이야기지요. 모압은 하나님 약속을 떠나 자기 인간이 좋아서 선택한 길이었습니다.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자마자 나오미가 모압으로 갔으니까 인간의 방법으로 인간의 생각으로 인간의 계획을 가지고 사는 삶이 모압의 삶이고 베들레헴은 이제 모압을 떠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 위하여 하나님의 긍휼을 입기 위해서 이제 인간의 생각의 세계를 떠나서 베들레헴으로 오는 그 이야기거든요.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그냥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 세상의 신앙인들 전부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세상의 신앙이 두 가지로 분명히 나눠지는데 하나는 구원을 받았든 안 받았든 이 모압의 자기 생각에 자기 보기에 좋은 대로 자기 계획에 좋은 대로 자기 보기에 편리한 대로 자기 원하는 길 그것이 모압에 서 있는 사람의 그림자고 이제 그 모압에서 떠나서 베들레헴 약속된 대로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긍휼을 입기 위해서 찾아나오는 그게 베들레헴의 삶인데 이 성경 룻기를 읽어보면 너무 너무 재미있는 것이 룻은 뭐 열심히 기도했다, 성경을 읽었다, 선한 일을 했다, 율법을 지켰다 그런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만 룻기에서 읽을 수 있는 건 단 하나 그가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떠나오는 이야기지요. 룻기 1장은 죽음으로 시작됩니다. 룻기 1장에 보면 짧은 1장 1절에서 6절까지 엘리멜렉이 죽고 말론이 죽고 기룐이 죽고 그 나오미 가정에 남자 셋이 다 멸망을 당하는 이야기로 룻기 1장이 이어집니다. 아마 그 1장이 계속되어 거기를 떠나지 않고 거기 더 있었더라면 더 죽음의 역사가 있어서 거긴 죽음이 역사하는 곳입니다. 쉽게 말하면 “내 생각의 세계는 죽음이 역사하는 장소다.” 내 생각을 따라하는 그 모든 것이 철저하게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들이 베들레헴에 돌아온 뒤에 룻기 제일 마지막에 보면 룻이 오벳을 낳는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보아스와 결혼해서. “베레스의 세계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았고 헤스론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아미나답을 낳았고...” 이제 룻기 1장에는 죽음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장례식이 이어지고 죽었고 슬펐고 10년 동안 세 사람이 죽으니까 한사람 죽고 잊을 만하면 또 하나 죽고 잊을 만하면 또 하나 죽고 이제 그런 가문이었는데 여기 베들레헴에 들어오니까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보아스는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그것이 룻기에서 보아스가 오벳을 낳는 게 아니고 예수의 족보에 이어오면서 그 이어진 족보 속에 이 사람들이 들어와버린 거예요. 예수님 족보 속에 들어오니까 그냥 이어서 “보아스는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그렇게 이어지는 거예요. 그래 제 삶은 너무너무 감사한 게 전 잘 하는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제가 어느 날 내가 살고 있는 것이 모압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내 생각의 세계를 따라 내 방법을 따라 내 원함을 따라 사는 이 삶이 악한 모압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 삶을 살면 망할 수밖에 없다는 걸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모압을 떠나서 베들레헴으로 오는 것처럼 나를 믿지 않고 내 생각의 세계에서 떠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세계 안으로 와서 내게 지금도 굉장히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고 굉장히 많은 주관들이 오고 방법들이 와도 예수님의 말씀 앞에 다 저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이 나를 다스리고 그 위에 오니까 하나님이 천 가지 만 가지 은혜와 복을 베푸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룻기가 가르치는 말씀이 이런 것입니다. 우리도 내 생각의 세계 속에 머물지 않고 예수님의 세계 속에 그 생각의 세계 속에 그 영역에 오면 생명에 참여해서 가만히 있어도 우리를 통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고 복된 삶이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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