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5일 영상교제 말씀
창세기 41장 2절 보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정말 2절을 보면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너무너무 아름답고 풍요하고 평화로운 그런 장면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그 뒤에 흉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또 올라와서 살지고 아름다운 암소를 다 잡아먹었다., 그 다음에 아주 살지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있는데 다음에 파리한 이삭이 와서 살진 일곱 이삭을 다 잡아먹었다.” 그 이야기가 성경 창세기 41장에 바로 왕이 꾼 꿈속에서 나타나는 이야기거든요. 저는 이번에 연말을 맞으면서 이 말씀을 생각하면 내 마음에 한없이 감사한 거예요. 왜냐하면 어떤 사람 인생 속에서는 빼빼 마르고 흉악한 일곱 소가 살진 소를 잡아먹으니까 남는 건 뭐가 남습니까? 빼빼마른 일곱 소만 남는 거예요. 반대로 어떤 인생은 살지고 풍요로운 아름다운 일곱 소가 빼빼 마른 소를 다 잡아먹으니까 남는 건 살지고 풍성하고 아름다운 것만 남는 거예요. 여러분 이 이야기는 요셉이 애굽의 감옥에 있을 때 바로 왕이 꾼 꿈 이야기인데 그 꿈을 요셉이 해석하고 난 뒤에 요셉이 그 꿈을 어떻게 바꾸느냐 하면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있었고 그 파리한 소가 일곱 살진 소를 다 먹었는데 여전히 막 파리했다.” 그게 꿈의 내용이었어요. 그런데 요셉은 그 꿈을 뒤엎어버리는 거예요. 뒤엎어서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일곱 살진 소와 일곱 살진 이삭은 일곱 해 풍년을 말하고 다음에 빼빼 마르고 파리한 일곱 소와 메마른 일곱 이삭은 흉년을 말한다. 풍년이 오고 난 뒤에 흉년이 너무 심해서 흉년이 풍년을 다 잡아먹어서 이젠 그들이 흉년 속에서 땅이 멸망을 한다고 되어있는 거예요. 그런데 요셉이 말하기를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합시다. 관리를 두어서 창고를 짓고 그 살진 풍년 때 곡식을 모아놓으면 흉년이 와도 흉년이 되지 않는다는 거지요. 저는 이런 성경을 보면서 내가 뭘 느끼느냐 하면 요셉이 있으므로 구원자가 있으므로 분명히 7년이란 흉년이 너무 심해서 풍년을 기억하지 못하고 다 멸망을 당해야 하는데 요셉으로 말미암아 그게 뒤집어져서 풍년의 풍성함이 흉년을 이겨버리니까 흉년이 와도 흉년이 안되는 거예요. 저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라면 이런 이야기를 늘 하고 싶은 거예요. 여러분 사르밧 과부는 흉년이 와도 흉년이 아니었어요. 다른 집에는 다 흉년인데 왜? 엘리사가 그 집에 있었기 때문에. 여러분 제게 굉장히 많은 시련이 오고 고통이 오고 어려움이 왔는데 그게 전혀 어려움이 되지 않는 경우를 저는 많이 경험을 했거든요. 간음한 여자는 예수와 함께 있기 때문에 돌멩이가 왔지만 날라오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와 함께 있는 사람, 예수와 함께 사는 사람은 풍년이 흉년을 잡아먹어버린 거예요. 예수가 없는 사람들은 흉년이 풍년을 잡아먹는 거예요. 분명히 요셉이 이 바로왕의 꿈에는 보면 일곱 살진 암소가 있고 빼빼 파리한 일곱 암소가 나왔어요. “그 흉악하고 파리한 소가 그 아름답고 살진 소를 먹은지라.” 그 다음에 또 이야기하기를 “먹었지만 먹은 듯 하지도 않았다. 여전히 파리했다. 여전히 흉년이었다.” 그런데 이제 요셉은 풍년 때 곡식을 모아놓으니까 풍년이 흉년을 이겨버리니까 흉년이 왔는데도 흉년이 아니고 풍년이니까 풍년이 흉년을 이긴 거예요. 흉년이 왔는데 풍년이 없어지고 흉년으로 지어지면 흉년이 이긴 건데 흉년이 왔지만 풍년의 양식이 넉넉하니까 양식이 있으니까 흉년이 아닌 거지요. 그러니까 풍년이 흉년을 이긴 거예요. 예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이예요. 저는 제가 살면서 굉장히 많은 시련이 왔고 어려움이 왔고 문제가 왔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거기에 넘어지고 빠져본 적이 없고 여전히 풍년이었습니다. 고난이 와도 슬픔이 와도 문제가 와도 주님이 그걸 바꾸는 걸 보면서 제가 너무 너무 주님 앞에 감사하지요. 이번에 저희들 오리사의 일이나 문혜진 자매 일이나 이런 일 우리 다 슬퍼해야하고 고통하고 괴로워해야 하는데 우린 기뻐하잖아요. 찬송하잖아요. 감사하잖아요. 제가 지난 2차수양회를 하면서 제 친구가 구원받고 또 제가 한 부인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그 부인이 너무 고통 속에 거의 정신병자에 가까운 부인인데 잠을 하루에 15분 정도밖에 못 자는 부인인데 나는 이 부인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난 뒤에 하루에 3시간 잠을 잤다고 하면서 너무 평안하게 대하는 걸 봤습니다. 뭡니까? 주님이 계시면 고난이 고난이 아니고 흉년이 흉년이 아니며 고통이 고통이 아니란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여기 “보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예수님 안에 사는 사람은 늘 이런 삶입니다. 그러나 예수 밖에 있는 사람들은 흉년이 와서 풍년을 다 삼켰기 때문에 흉칙하고 빼빼마르고 다 죽어가는 그 속에 사는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 거지요.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귀하게 여깁니다. 주님이 오늘도 주님의 풍성함이 가난하고 연약한 흉년을 이겨내고 있기 때문에 흉년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고 풍년이 우리를 지배할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 아버지 앞에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Reply 윗 글에 대한 답글입니다.

3개월이 지난 글은 덧글 입력이 불가 합니다.
카카오톡 공유하기 URL 공유하기